“여러분은 아직 주민이 아니에요.”

5월 아침, 한 강의실에서 서울의 ‘마을공동체’에 대한 강의를 듣던 중에 저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가 ‘마을’에 대해 더 치열하게 이야기를 해야할까, 아니면 다른 언어가 필요한 순간이 온 것인가 잠시 고민했다. 서울 마을공동체 2기, 어떤 목표와 내용으로 정책과 사업이 구성되어있고, 어떤 쟁점을 우리는 보다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까? 제도화 된 부문운동은 사업과 운동의 경계에서의 균형이 필요하고, 그 균형을 만들어내는 토론이 중요하다. 그 토론을 버거워하게 된 순간, 제도화 된 언어는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박원순의 마을 맥락”과 같은 의미를 알기 힘든 단어가 현장에 등장했을 때, 그 맥락이라는 것이 고정불변의 원칙인지, 토론을 활발하게 하는 조건인지, 정확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마을공동체 사업 2기의 주요 과제와 전략에 대해

2011년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원순 시장의 임기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 된 마을공동체 사업이 2기 정책을 구상하고, 추진하는 시점이다.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의 설립과 마을넷이라는 민간 단위의 등장과 성장, 단체에서 주민모임으로 공모사업 지원 자격을 전환한 것과 실제로 예산 지원을 통해 활성화 된 다양한 크기와 분야의 마을 사업, 사업지기로 엮인 네트워크와 네트워크의 연결과 확대 등 마을공동체 사업은 작지 않은 성과를 남기며 지금껏 추진되어오고 있다.

서울의 마을공동체 사업 2기는 어떤 과제와 전략이 있을까? 서울시는 마을공동체 기본계획(2014.9)을 통해 아래와 같은 사항은 5개년 중장기 계획으로 설정하고 있다.

1.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계획 수립
2. 공동체 사업을 이끌어갈 마을활동가 양성
3. 10분 거리에 주민 커뮤니티 공간 구축
4. 주민이 주도하는 커뮤니티 활동 지원
5. 마을경제 활성화 지원

또한, 이 5개년 계획을 뒷받침하는 3대 전략과 10대 과제는 다음과 같다.

주민들이 직접 도시계획에 참여하는 ‘마을계획’과 마을지향 행정시스템의 한 축에서 고민되고 실행되어지는 ‘동복지허브’, 그리고 ‘마을경제’ 활성화에 대한 의지가 눈에 띈다. 서울의 마을공동체 정책은 주류화를 통한 보편적 확산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듯 하다.

마을계획, 누가 계획에 참여하는가?

이와 같은 과제와 전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쟁점은 결국 어떤 주체를 우리가 ‘마을사람’으로 호명하고, 역량 강화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나는 그중 단연 핵심 의제는 ‘소비자’가 아닌, ‘시민’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 시민은 미래 전망을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그 존재가 드러날 수 있다.

‘마을계획’이라는 소중한 기획에 있어서 계획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은 더욱 중요하다. 지금의 마을사업이 여러 가지 면에서 ‘당사자 운동’을 표방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때 호명되는 ‘당사자’가 갖는 한계적 지점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한다. 필요가 느껴지는 일상의 현장에서 시작하는 혁신과 변화라는 의미에서 ‘당사자’의 호출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때 당사자는 모든 갈등으로부터 완전무결한 존재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 당사자라는 조건이 사회적 토론에서 어떤 우위를 선점하는 이름표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당사자로서 어떤 과정에 참여하고, 참여의 동기로서 ‘당사자’ 정체성이라는 것은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조건일 수 있지만, 때로는 그 당사자라는 정체성이 토론을 방해한다. 이 때 토론은 이기고 져서 원하던 바를 쟁취하는 과정보다는 토론에 참여하는 여러 이해관계의 사람들이 서로 변화해서 더 나은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을 의미할 것이다. ‘마을계획’이라는 시스템을 장착하는 것과 함께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결국 그 시스템을 활용할 우리의 이웃과 시민, 그리고 친구들을 어떻게 만들고, 확대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토론 가능한 시민’으로 우리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에 대한 평가가 공공성을 고민하고 수행하는 공간과 주체로 ‘마을’을 지명한 것이라면, 우리는 똑같이 질문해야 한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어떻게 ‘시민’으로 거듭날 것인가?

특히, 서울과 같이 시스템적으로 풍성한 행정부를 갖고 있는 도시에서 이 질문은 소위 ‘마을활동가’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사람들에게 절실한 질문이 되었다. 주민참여예산, 생활권계획, 각종 위원회, 마을넷 등 우리는 수많은 참여의 현장을 만나고 있고, 이 참여의 현장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민 주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주민 주도의 현장에 참여한 한명의 주민으로 만족할 것인가? 나는 가끔 나라는 개인이 더 이상 어떤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어느새 참여의 현장에 쉽게 초대될 수 있는 어떤 경험과 위치를 갖게 된 것이다. 회의에 참여해서 개인으로 의견을 제출하는 것이 쌓이고 쌓일수록 공허하다. 스스로 조직하지 않는 주민주도는 ‘민원’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할 수 있다.

최근 신촌을 대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진행 중인 서대문구는 신촌동 도시재생시범사업 추진을 위한 주민협의체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주민 중심의 협의체를 구성하려는 행정의 변화의 정착된 시스템은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이 협의체의 운영과 관련된 모든 것이다. 당장 또 다른 주민참여의 공간인 생활권계획위원회와 이 주민협의체의 관계 설정은 어떨 것이며, 그 동안 도시의 주민으로 초대받지 못했던 비정주, 비소유 주민은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마을경제에 대한 의문

마을경제 활성화라는 과제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많다. 사회적기업도, 마을기업도, 협동조합도, 스타트업 정책은 수없이 접해왔지만, 평가와 실패사를 접한 기억은 거의 없다. 실패라는 단어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평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 언제나 좋지 않은 이야기는 뒤에서 만들어질 뿐, 그것이 공식화되어 평가의 근거가 되고 더 나은 방안을 찾는 자산이 되는 경험이 우리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 ‘마을’ 단위의 경제가 활성화 되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물론 가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도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이해와 상상력 내에서라면, 그것은 이른바 ‘대전환’이다. 함께 고민되어져야 할 것들이 대단히 많다. 적어도 이 난감한 경제위기 체제 내에서 같은 욕망과 같은 소비패턴을 유지한 상태로 ‘마을경제’라는 것을 활성화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애초에 자영업이 위기인 시대에 형태로서 존재하는 마을기업이 자립하고 생존할 가능성이란 매우 낮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무엇이 마을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미래가 이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을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아현역 사거리에 붙은 새누리당 현수막. 그 옆에 최근에 오픈한 북아현뉴타운의 한 아파트 단지 모델하우스는 분양을 알아보는 이들로 북적인다. (사진=이태영)

아현역 사거리에 가스비 인하를 스스로 공치사하는 새누리당의 현수막이 걸린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연금제도를 언급하는 또 다른 현수막을 걸었다. 새누리당의 현수막 감각은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해결책은 물론 토론의 여지가 많이 있지만, 적어도 그들이 언급하는 키워드는 이 도시와 이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잘 드러낸다. 마을공동체 사업계획이 언급하는 마을경제가 가스비라던지 국민연금과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존재할 수 없는 어떤 유토피아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사업화 된다면 그것은 주술적 언어에 불과하다. 어떤 정책과 비전이 주술화 되는 것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결국 이미 진행된 사업에 대한 정확한 평가다.

행복한 마을이 아니라, 행복한 삶에 대해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

내가 이렇게 정리되지 못한 질문과 의견을 쏟아내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마을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등장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는 절실한 판단이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변화의 움직임과 흐름이 제도화, 주류화 전략을 취하기 시작했을 때 충분한 토론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 해당 언어는 그 보편성을 상실하고, 우리는 그 언어를 사업계획서를 구성하는 키워드 정도로 전락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공유해야 하는 질문은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가 아니라, “도시에서 행복한 삶은 가능한가?”일 것이다. 어떤 마을이 행복한 마을인가가아니라, 어떤 삶과 사회를 우리는 만들어갈 것이며, 마을은 어떤 모습과 위치일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과정에서 정당과 같은 정치적 지향으로 결합한 정치 조직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마을’이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새로운 주체와 공간적 의미로 호출된 것이라면, 이 공간에서 우리는 정치적 지향으로 토론하는 경험을 충분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마을에는 진보와 보수가 없고, 좌와 우가 없어요.”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나는 그 말이 마을이라는 공간의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두렵다. 공공성은 고정된 어떤 것이 아니다. 나는 지역정당 논의에 대해서도 단순히 ‘지역vs전국’과 같은 구조로 지역 정당 논의가 만들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역정당은 이를테면, ‘서대문당’의 출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대문녹색당’, ‘마포노동당’과 같이 어떤 정치적 지향에 동의한 결사체가 지역단위에서 정치적 시민권을 공식적으로 얻는 의미로서 중요하다. 그게 지역사회에서 토론을 만들어내고, 그 토론이 사회변동의 힘이 된다. 가스비도, 국민연금도, 마을경제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들이 이른바 ‘마을’에 많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정당은 마을에서 만들어지는 정치적 토론과 성장의 경험 안에 결합하고, 그것으로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마을공동체 사업을 ‘선한 활동’ 정도로 이야기할 시점은 지난 듯 하다. 서울시 예산이 투입되는 시책사업이자, 사회 공공성을 확대하고자 하는 어떤 운동의 제도화 과정 차원에서 치열하게 토론되어야 한다. 지금을 놓치면, ‘마을’은 우리에게 그냥 지겹고 피로한 단어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스친다.

이태영 / 서울녹색당 정책위원장

30대 초반, 지역활동가이자, 녹색당원. 풀뿌리사회지기학교와 신촌민회, 체화당이 어우러진 신촌의 일터에서 활동하고 있고, 서울녹색당의 정책위원장으로 역할하고 있다.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을 조직한다.”는 목표로 2014년 지방선거에 녹색당 서대문구의원 후보로 출마, 낙선했다. 아직 그 목표는 유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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