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게 전 세계 어느 문화권이나 남자들이 자기보다 약간 계층적으로 밑에 있는 여자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의 최상위층과 남성의 최하위층이 결혼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결혼을 못한 남성들이 동남아나 외국에서 신부를 데려오는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아이들은 한국 국적을 가지게 되는데, 가정이 깨지면 애들은 엄마가 키우기 때문에 한국어를 못한다. 사회 불만 세력이 될 수 있다. ‘(이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굉장히 큰 문제가 되고 있다…(중략)…성매매특별법 같이 엄격한 법이 없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안 했을 텐데 결혼을 외국 신부를 데려오는 바람에 사회적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TV조선·채널A의 막장 토론시사프로그램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JTBC <썰전>에 출연 중인 강용석 변호사가 3월 26일 <성매매특별법> 위헌 여부 결정을 앞둔 방송에서 한 발언이다.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남자들은 자기보다 낮은 계층의 여자들과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의 취하위층은 (국내결혼을 못하고) 국제결혼을 한다-> 이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한국 국적을 가지는데 한국어가 서툴러 사회 불만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강 변호사는 이런 상황의 원인을 “성매매특별법 같이 엄격한 법이 없었다면 굳이 그렇게 까지 안됐을 것”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 3월 26일자 JTBC '썰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활동가는 “JTBC에서 나온 ‘남성들은 한 단계 낮은 계층의 여성과 결혼한다’는 결혼관부터 문제”라며 “강용석 변호사는 남성들이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동남아 등 국제결혼을 하게 된다고 이야기였고 그 자식들의 사회적 문제가 됐다고 덧붙였다. 결혼 이주민들이 분노해야할 방송”이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남녀불평등 및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을 여과 없이 내보낸 JTBC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JTBC, “돈 잘 버는 남자 찾아 결혼하는 여자들…틀린 말 아냐”

20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김성묵)는 JTBC <썰전>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1조(문화의 다양성 존중)는 “방송은 인류보편적 가치와 인류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해 특정 인종, 민족, 국가 등에 관한 편견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되며, 특히 타민족이나 타문화 등을 모독하거나 조롱하는 내용을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심의는 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JTBC 김수아 제작3팀 차장은 “(그 같은 시각이 옳다는 게 아니라)사회적으로 이 같은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며 “그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방송에서 나올 수 있는 발언”이라고 밝혔다.

JTBC 김수아 차장은 “(다문화 가정의 문제를)얘기하는 것 자체가 명예훼손이라기보다는 여러 시각으로 사안을 심층적으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강용석 변호사는 ‘국제결혼 많아진 이유 중 하나가 성매매특별법 있기 때문 아니냐’는 의견이었고 JTBC에서는 사견을 전제로 방송했다”고 밝혔다.

JTBC 김수아 차장은 ‘남자들이 낮은 계층의 여자들과 결혼한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돈 잘 버는 남자 찾아 결혼하는 여자들도 있다는 말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엄마가 키워 한국말을 못한다’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그런 예가 있다. 모든 다문화 가정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발언 자체가 해선 안 될 말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패널이)방송에서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을 PD가 임의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을 하고 삭제한다면 발언들이 (수위가)낮아지는 것은 물론 옳은 발언을 할 때에도 강도가 높으면 잘라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 3월 26일 JTBC '썰전'

강용석 변호사의 발언은 문제적이다. 이를 편집에서 걸러내지 못한 JTBC의 책임도 분명하다. JTBC 김수아 차장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드러낸 것이로 했지만, 강 변호사의 주장은 '소수자 인권'을 경시하는 태도를 그대로 드러냈단 점에서 심각한 인식의 결여를 보여줬다. JTBC 역시 강 변호사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제시하는 등 강 변호사의 말에 힘을 싣는 모습을 보였다.

“법정제재까지는…” 인권감수성 떨어지는 심의위들

그렇지만 이날 방송심의소위는 JTBC <썰전>에 대해 행정지도 ‘권고’ 조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정부여당 추천 김성묵 부위원장과 함귀용 심의위원만이 법정제재 ‘주의’를 주장했다. 야당추천 장낙인 상임위원·박신서 심의위원 그리고 정부여당 추천 고대석 심의위원이 참여한 다수결로 ‘권고’가 의결됐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사회가 어느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차별이 있을 수 있다”며 “한국의 다문화 가정들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사회가 다문화 가정을 보는 시각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강용석 변호사의 발언은 남성들이 성매매특별법으로 인해 성적 욕구를 풀지 못하니 외국인 신부를 데려왔다는 말밖에 더 되나.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방송됐다. 그런데, 담당PD가 ‘동의하지 않지만 방송에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나라들은 다 망했다. 다문화를 수용해야 문화가 융성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사회가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방송에서 (타 문화권의 여성을) 성적 욕구를 풀기 위한 도구로 여긴 것이다. 배웠다는 변호사 분(강용석)이 공개석상에서 그렇게 발언할 수 있다는 게 안타깝다. 다문화를 편견을 가지고 본다면 나라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_함귀용 심의위원

함귀용 심의위원은 이날 시종일관 “외국인 신부가가 (방송을 보고)받을 모멸감을 생각 안해 봤느냐”며 “검증된 얘기가 아니라 사견이라고 하더라도 문제”라고 JTBC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사회자 소수자’들에 대한 포용을 강조했다. JTBC <선암여고 탐정단> 동성키스 심의 과정에서 동성애와 관련해 “정신적 장애”라는 혐오발언을 쏟아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소수자 인권과 방송의 역할에 대해서 정확한 발언을 이어갔다. 함 심의위원은 해당 방송에 대해 방송사 재승인시 감점요인이 되는 법정제재 ‘주의’(벌점 1점)을 주장했다.

김성묵 부위원장 또한 “PD는 방송으로 인해 벌어질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며 JTBC가 문제의 강용석 변호사 발언을 그대로 내보낸 것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방임”이라고 꼬집었다. 김 부위원장은 “JTBC 의견진술자는 방송의 공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고 ‘주의’에 동조했다.

반면, 장낙인 상임위원은 “성매매특별법이라는 엄격한 법이 없었다면 다문화 가정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의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내용”이라며 “다문화 가정을 일종의 우려로 본 것 같은데, 법 이야기를 하다가 꼬인 것 같다”고 행정지도 ‘권고’ 의견을 밝혔다. 박신서·고대석 심의위원 또한 “다문화 가정을 비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법정제재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같이 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드러내는 발언이라는 점이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권고'가 내려졌다. 확정되었기 때문에 재고의 여지도 없다. 표현의 자유라 그대로 뒀다는 JTBC와 중제재할 사항은 아니라는 방통심의위. 한국사회의 인권감수성이 어디쯤 와있는지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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