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기괴한 축제, 수능이 다시 닥쳤다. 한국인의 교육열과 사교육 열풍의 이상함은 외국인들에 의해 여러 차례 지적됐었다. 심지어 우리보다는 느슨하지만, 어쨌든 대학서열체제가 있는 일본인들마저도 한국의 교육열을 이상한 풍경으로 지목한다. 그 이상한 교육열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수능이다.

바로 오늘을 위해 한국인의 상당수는 태어난 후부터 약 20여 년 동안 인간성을 반납하고 살아야 했다. 그 아이들을 낳은 부모들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입시전쟁의 보급부대로서, 전사인 자기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인생을 탕진해야 했다. 상당한 소득이 있는 중산층마저도 입시전쟁의 실탄인 교육비를 대느라 노후대비 저축을 하지 못한다. 바로 오늘의 승부를 위해서다.

<월스트리트저널>이 12일에 1면과 15면에 걸쳐 한국 수능에 대해 크게 보도했다고 한다. 기업이 수험생에게 방해되지 않기 위해 출근시간을 늦추고, 영어 듣기 평가 시간엔 이착륙이 금지되므로 비행기들이 고도 1만 피트 상공에서 대기해야 하고, 한국전력의 기술인력 4천 명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대기를 하고, 사찰과 교회 등에선 특별행사가 열린다며, ‘한국은 수능일에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한다‘는 내용이었다.

▲ 월스트리트저널 온라인판 수능 관련 기사 캡처.
실제로 온 나라 안이 수능일에 일제히 숨을 죽인다. 금융위기인 상황에서 금융시장도 1시간 늦게 개장한다. 지하철도 듣기 평가 시간대엔 서행한다. 코레일은 수능 대비 특별수송대책본부를 가동한다. 군도 동참한다. 합참은 전군 소음통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경찰도 수험생 수송 도우미가 된다. 가히 국민명절이다.

수능 대목만 즐기는 우리 언론

수능은 언론에도 대목이다. 수능을 보기 훨씬 전부터 수능 관련 보도가 봇물을 이룬다. 월드컵 특수를 맞아 미리부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구조와 같다. 수험생들의 승부를 보조하기 위한 집중력 향상 기법 안내, 막판 마무리 공부법 안내, 시험장 안에서 실수 줄이는 법, 영양관리법, 가족들이 수험생을 돕는 법, 유명인의 조언 등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시험당일 ‘긴장감 해소’가 중요…쉬는 시간 맑은 공기를’
‘수능 당일 점심 도시락 중요’
‘옷은 뭐 입을까?’
‘수능 시험 교시별 전략은?’
‘수능 D-1, 총정리 요령은?’
‘수능 D-1, ‘컨디션 조절’이 관건’
‘수험생에 부담 주는 지나친 관심은 꺼라’
‘수험생들, 저녁은 가볍게 잠은 충분히‘

수능이 끝난 후엔 후속 보도로 대목을 만끽한다. 시험 1교시가 끝나자마자 문제 난이도에 대한 보도가 나오며, 변별력에 대한 보도가 이어진다. 혹시나 부정 사태라도 터지면 ‘대박’이다. 수능일에 발생한 온갖 사건사고도 보도의 대상이 된다. 호떡집에 불난 형국이다.

수험생을 위한 이벤트도 다채롭다. 국제영화제라는 대목을 맞아 프로그램 안내하는 영화지처럼 수능이벤트를 경쟁적으로 소개한다. 백화점, 통신사, 한강유람선, 여행사, 항공사 등 이벤트는 무궁무진하다. 기사거리도 무궁무진하다.

더 본질적으로 따지자면,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생성되는 교육이슈, 교육기사들은 대부분 이 수능 이벤트의 하위 범주라 해도 무방하다. 공교육 붕괴든, 사교육 범람이든, 교육 격차든, 논술 문제든 모두 입시경쟁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최적의 상태로 우리 아이들을 경쟁시킬 것인가‘라는 차원에서 다뤄진다.

대학입시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은 이슈가 되지도 않고, 보도되지도 않는다. 왜 우리가 대학서열체제라는 야만적인 경쟁구조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다. 다만 그 속에서 애가 타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기사 장사를 할 뿐이다.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할 때

서북부유럽 학생들은 입시경쟁을 하지 않는다. 특히 북부유럽은 경쟁을 전혀 하지 않는 상태에서 학력경쟁력이 세계 1위 수준이다. 우리는 핀란드에 이어 만년 2위에 불과하다. 이것도 고등학교 때까지의 학력비교에서 그렇다. 대학생 이상이 되면 한국인의 학업성취도는 뚝 떨어진다. 당연하다. 수능일을 대비해서만 공부를 했으니, 결전의 날이 끝난 후 그 모든 것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언론이 아무리 시험 잘 보는 법을 알려주고, 심리를 안정시켜 주고, 영양상태를 좋게 만들어줘도 결과는 언제나 똑같다. 승자는 부잣집 자식들의 몫이다. 서울대 신입생의 80% 이상이 중상층이라고 답했다. 노동자, 도시서민, 강북민, 지방민은 들러리나 서는 괴상한 국민축제다.

이런 구조에서 언론이 할 일이 과연 축제 프로그램 안내하는 수준이어야 하는가? 수능일 에피소드 기사화해서 장사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에 부합하나? 왜 한국인은 수능일이 지난 후엔 모두 내다버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지식을 머리 속에 주입해야 하고, 부모들은 어차피 재산순으로 결판날 승부를 위해 고혈을 쥐어짜야 하나? 언론이라면 이런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한국의 대학서열체제는 극히 야만적이다. 미국의 서열체제도 우리 같지는 않다. 일본도 그렇다. 서북부 유럽 국가들엔 대학서열이 없다. 그래도 나라가 망하지 않고 선진국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왜 우리만 이렇게 극단적인 서열체제에서 극단적인 시험경쟁을 감당해야 하나?

우리 국민들은 대학서열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지도 못한다. 국가가 수능이벤트에 열광하고 언론이 그것을 확대재생산하는 보도만 내보내고 있으니, 국민이 대학서열체제와 입시경쟁을 불가항력의 자연법칙처럼 느끼게 된 것이다. 언론은 때때로 과도한 입시경쟁을 탓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수능보도에 열을 올리는 한 언론도 한국 입시지옥의 원인제공자일 수밖에 없다.

수능보도에 열을 올리며 한국인에게 입시경쟁을 운명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입시경쟁 자체를 끝장낼 수 있는 상상력의 개방이 필요하다. 하지만 언론이 한국인의 상상력을 철통같이 틀어막고 있다. 그러면서 교육 기사 장사, 학생 자살 기사 장사, 사교육비 폭등 기사 장사 등에만 안주하다간 후대의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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