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합의하면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높이기로 한 것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엇갈린다. 아쉽지만 개혁의 첫 걸음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으나 보수언론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애초 보수언론이 제기한 ‘공무원연금 대 국민연금’의 구도 자체가 문제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향신문>은 4일 1면 톱에 여야의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 사실을 전하면서 “진통 끝에 합의를 이뤄냈지만 ‘환영’보다는 ‘미완의 개혁’ 등 찜찜해하는 목소리들이 앞선다”고 평가했다. 또, <경향신문>은 청와대와 정부가 여야의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에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이 포함된 것에 대해 불편한 반응을 보인 것 등과 관련해 “정부가 조급한 개혁 성과 만들기에만 집착한 후과(後果)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이어지는 2, 3면 기사에서도 이번 합의안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전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논의에서 기금 고갈 대책이나 보험료 인상에 대한 반발 등이 논란이 될 수 있고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의 경우 ‘구조개혁’이 아닌 ‘모수개혁’에 그쳐 미완의 개혁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경향신문 4일자 사설.

그러나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보험료를 얼마나 더 많이 걷고 연금을 얼마나 덜 지급하는 것이 적정한가에 대해 이해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답은 없는 셈”이라면서 “공무원연금개혁은 이제 막 첫발을 뗐을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사설의 앞 부분에서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의 문제점들을 다시 지적했고 공무원노조가 반발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도 <경향신문>이 글의 말미에 이와 같은 평가를 내놓는 것은 현재 합의안이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정 부분 상황을 진전시키는 성격의 것이라는 점을 평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경향신문>보다 여야 합의안에 좀 더 우호적이다. <한겨레>는 3면에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한 여야 합의에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안이 포함된 것에 대해 “온 국민의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는 중요한 합의지만, 당장 국민연금 기여율(매달 월급에서 내는 돈)을 올릴지 여부와 국가재정(세금) 투입 여부 등 여야가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할 사항이 많아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현실화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관점이다.

▲ 한겨레 4일자 사설.

<한겨레>는 사설에서도 “정치권과 이해당사자들이 오랜 진통 끝에 ‘대타협’의 모양새를 띠게 됐다는 점은 일단 다행스럽다”라면서 “재정절감 효과가 애초 정부·여당안에 미치지 못하고 국민연금과의 형평성도 근본적으로 이뤄내지 못했다고 해서 ‘시늉만 냈다’, ‘안 하느니만도 못한 개혁’ 따위로 무조건 폄훼할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태도를 종합하면 국내 언론 중 진보적 성향인 것으로 분류되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이번 여야 합의에 대한 나름의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평가는 정반대다. <동아일보>는 이날 1면 톱에 <배보다 배꼽 더 키운 연금담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배’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통한 재정절감액이고 ‘배꼽’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 합의로 인한 추가 부담액을 말한다. 즉,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에 합의한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동아일보>는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올리기 위해 향후 45년간 약 1300조 원의 추가 국민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여야가 당파적, 정략적 이익만 좇느라 공무원연금 개혁의 원칙은 훼손되고 더 큰 숙제만 국민에게 지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담합’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3면, 4면, 5면, 6면 전체를 여야 합의안을 비판하는데 할애했다. 청와대가 구체안을 협의하지 않고 시한만 압박해 여당이 졸속으로 합의에 나서게 돼 애초부터 국민연금과의 연계를 고려했던 야당과 공무원연금 구조개혁을 반대한 공무원노조 등에 휘말렸고, 국민소득 명목소득대체율을 50%까지 높일 경우 월 보험료를 현행보다 2배는 더 내야 해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수 있다는 것 등이 핵심 내용이다. 이 정도면 거의 ‘융단폭격’이라 할만한 수준이다.

▲ 동아일보 4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도 여야 합의안에 대한 격렬한 반응을 쏟아냈다. <동아일보>는 이날 <하라는 공무원연금 개혁은 안 하고 국민연금만 거덜내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기금 고갈로 해마다 수조 원을 쏟아붓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라고 했더니 여야 정치인들은 2007년 4월 국회가 힘겹게 이룬 국민연금 개혁마저 후퇴시켰다. 이대로 시행되면 공무원연금과 더불어 국민연금이 국가재정 파탄의 또 다른 뇌관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라면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빚 폭탄을 떠넘길 수 없다고 시작한 일이 정치인들의 무책임과 포퓰리즘으로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동아일보>는 이날 <나라 망치는 데 한술 더 뜨는 새누리당> 제하의 사설을 통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 여당 지도부에 대한 그야마롤 격한 비판을 쏟아냈다.

▲ 중앙일보 4일자 1면 기사.

<중앙일보> 역시 이 문제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기는 마찬가지였다. <중앙일보>는 1면 톱에 <333조 혹 떼려다 1669조 혹 붙인 연금개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중앙일보>는 3면에서 여야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에 합의한 것은 ‘월권’이라는 청와대의 주장에 힘을 실었고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2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실망과 우려를 전달했지만 김 대표는 실무기구의 합의를 밀어 붙였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이어지는 4면, 5면에서도 위의 <동아일보>와 거의 같은 내용의 비판을 내놓았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도 여야 합의안을 문제점을 반복 지적하며 “여야 합의안이 문제투성이지만 너무 많이 진행돼 전부를 되돌리기는 힘든 상황이다. 다만 본회의 통과 이전에라도 가능하다면 손을 봐서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부분을 손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보수언론의 ‘큰 형님’ 격인 <조선일보>는 이날 1면 기사에서 여야합의안을 비판하면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한 ‘공론화’가 없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선일보>는 3면, 4면, 5면, 6면에서 여야 합의안의 문제 등을 다루면서 앞의 두 신문 보다는 다소 침착한 목소리를 냈다.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을 위해서는 보험료가 2배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은 것과 여야 합의가 김무성·문재인 양당 대표의 ‘대권 카르텔’이라는 정도가 자극적인 내용의 보도다.

▲ 조선일보 4일자 사설.

특이한 것은 <조선일보>가 이날 두 개의 사설을 통해 청와대와 여야를 모두 비난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청와대가 외교와 공공부문 개혁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앞으로 여당 지도부에 끌려다니기만 하게 생겼다면서 제대로 된 총리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조선일보>는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에 여야가 합의한 것에 대해 “내년 총선을 겨냥해 퇴직 공무원과 현직 공무원 140만명 표만 의식했을 뿐, 2000만 국민연금 가입자를 우습게 보았다”, “여야가 정치결단을 가장해 야합한 것”, “여야는 국민과 기업에 새 부담을 안기고서도 자기들이 큰 복지 혜택이라도 새로 준 것처럼 꾸며대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이날 사설만 보면 <조선일보>의 ‘멘붕’이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이 공무원연금 개혁의 당위를 주장하면서 그간 꾸준히 국민연금을 끌어들여온 탓도 있다. 보수언론은 그간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기계적으로 비교하면서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고쳐서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애초에 공무원연금 개혁의 쟁점에는 인상이 사실상 유예된 임금의 사후보전 성격이 있다는 반론과 공무원의 노동권 제한 등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 반영된 것이라는 주장 등이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즉, 직역연금인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과 단순비교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 그렇게 비교하려거든 차라리 국민연금의 수준을 높여 ‘상향평준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야권과 공무원노조 등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보수언론이 반발하고 있는 형태의 합의로 이어지게 됐다. 그러니 보수언론들은 이제와서 남 탓을 할 게 아니라 스스로의 오류를 되돌아보면서 반성을 하는 게 먼저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날 심각한 고통 속에서 업무에 복귀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연금의 명목소득대체율 인상과 관련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조선일보>의 논리가 그대로 반복된 것이다. 이에 우쭐한 보수언론이 반성 따위는 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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