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수능 대목이다. 관련 뉴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일종의 연환계(連環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교육 뉴스 창고 대방출이라고 해야 할까. 미디어가 다루는 전통적 물품인 '수능 시험지 배달 사진'은 기본 아이템이요, 오늘 아침에는 강남 사교육 시장을 누비던 김아무개 일당이 검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일당은 학력을 위조(혹은 날조)하여 족집게 고액 과외를 했던 일당이었다. 아마도 이번 검거가 그런 일당들의 일망타진은 아닐 것이다. 강남 학원 강사의 학력은 초특급 대외비에 속하는 것이 업계 관행이다. 꿈의 학력 공장인 대치동이 역설적으로 학력이 가장 불투명한 동네라는 농담이 있다. 시장을 그냥 내버려 두어라, 무질서 속에서 질서가 유지될지니. 대치동은 경쟁력으로 작동하는 자유시장만의 특별한 원리를 정확히 보여준다.

학생이 상품이라는 진리만 변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성립된다. 상품 유통자가 고졸이건 서울대 출신이건 상관없다. 언론의 정파성 따위와도 무관하다. 수능이 오면 무조건 학생을 팔수 있다. 대목 시장을 맞이한 언론의 설렘은 사진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날'을 앞두고 분주한 언론의 표정을 몇 개 감상해보자.

한국일보, 기쁜 마음에 에버랜드를 찾아 갔어요

귀여운 곰이 들어간 첫번째 사진은 한국일보의 작품이다. 에버랜드 제공으로 작품명은 '비나이다 곰'이다. 동굴에서 마늘을 100일간 먹으면 언제라도 사람이 될 수 있는 잠재력으로 갖고 있는 곰의 영특함을 배경으로 곰이 앞발을 모으는 행위와 기도를 연결시킨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나이다 곰'이 주로 출몰하는 자리에 고득점을 기원하는 돌탑과 장승이 건설되는 개가가 있었다고 하니, 원소스(수능) 멀티유즈의 성공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다만, 이런 연출 사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버스 안의 승객들 배치에 좀 더 세심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버스 승객으로 교복을 입고 심드렁히 곰을 째려보는 학생과 등산복(혹은 골프 티셔츠 정도) 차림으로 정성스레 곰의 신묘함에 탄복하는 어머니들을 태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수능 대목에서 한국일보의 활약은 단연 돋보인다. 내친 김에 한국일보의 사진을 한 장 더 보자

오늘(11/11) 한국일보 1면 우측 상단에 큼지막하게 들어간 사진이다. 이 사진은 국제중 설립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아무 문제의식 없이 국제중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영훈초등학교 입학=기쁨'의 문법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 사진은 한국일보의 복고주의 경향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복고주의'라고 하는 미학적 개념이 나왔으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한 장 더 감상해보자.

어제 소년 한국일보에 '두근두근… 사립 초등 추첨'이란 제목으로 실린 사진이다. 이제 좀 이해가 되시는가? 명문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부모들의 치열한 눈치싸움, 좌우앞뒤 오와 열을 맞춰 입시 요강을 경청하는 부모들. 당첨의 환희와 탈락의 비애. 뱅뱅이로 뒤바뀌는 운명의 잔임함. 바로, 비평준화의 풍경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획일적 입시가 시작되던 근대적 경쟁의 풍경이다.

한국일보는 이번 수능을 맞이하며 수능과 학력고사가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적극적으로 폭로하며, 고3만 상품화하던 근래의 수세적 태도를 버리고, 다시 7살까지로 상품의 영역을 확대하는 복고주의 전략을 선택했다. 교육감이 교장들을 불러 모아 교과서 택일을 강권하고, 초등학교 영어 수업이 확대되는 천재일우의 상황에 적합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탁월한 입시 보도술이라 하겠다.

경향신문, 수능을 계기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고민합니다.

두 번째 사진은 시험의 보편 아이템인 엿을 내세운 경향신문의 작품이다. 사진은 아마도 이마트에서 협찬 받은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사진에 비해 참신성은 많이 떨어지지만, 작품에 직접적으로 '이마트'를 연결시키는 대담한 비즈니스 감각이 탁월하다. 이는 아마도 때때로 정치사회면은 개혁적으로 경제면은 영업적으로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경향신문만의 독특한 감각이 아닐까 사료된다.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모든 엿은 민속적일 뿐인데, 굳이 '진주'와 '공주'라는 지역명을 부각시켜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려고 하는 선한 의도를 숨기지 않은 점도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지면 관계상 몇 장의 사진밖에 읊어보지 못했다. 언급되지 않은 언론들이 항의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 학생을 위하는 척 하면서 실은 학생을 상품화하는 장사에 우리도 고민이 많다'고 말이다. 우선, 죄송하다. 그런데 [특별비평]하는 입장의 애로사항을 좀 알아주시라. 모든 언론들이 너무 비슷비슷한 장사를 하고 있어서 딱히 더 할 말도 없다.

수능이 이틀 앞이다. 언론에게 수능은 무엇인가? 그냥 대목일 뿐인가. 어쩔 수 없는 구조인가.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제도인가. 한 가지만 부탁하자. 수능이 끝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서울대’ 정문. 그 이상야릇한 문양을 성공의 징표로 활용하는 짓거리만은 말아 달라. 입시와 관련하여 문제의식조차 스스로 설정해내지 못하는 언론의 방임 속에 전국 900만의 아이들의 꿈은 수십 년째 교실에 쾌쾌히 유배되어 있다. 모든 수험생이 제 실력에 부족함 없는 성취를 이루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작자 미상의 시를 읊겠다.


고3의 사랑 노래

원작 신경림

고3이라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공부가 끝나 돌아오는
가로등 밝힌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고3이라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성적표 오는 소리 매미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고3이라고 해서 재미를 버렸겠는가
컴퓨터 하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복합 상영관에 한 관 남았을
보고 싶던 영화도 그려보지만.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고3이라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고3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이해와 감상
한 고3 청소년의 삶을 소재로 수능시험을 치는 이들에 대한 따뜻함 즉, 휴머니즘적인 작가의 태도가 잘 드러난 시이다. '공부하는 기계'라는 자들이지만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움과 사랑을 가진 한 인간임을 시인은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수능 때문에 이러한 인간적 감정들이 묻혀버리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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