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작년까지 개막식장으로 활용하던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을 떠나 전주종합경기장 대운동장에서 행사의 막을 올렸다. (사진제공=전주국제영화제)

혼란 속에서 퇴보할 것인가, 아니면 어려움 속에서도 전진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30일에 개막한 제 16회 전주국제영화제(이하 JIFF)에 대한 느낌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영화제 외부적인 일은 물론 내부적인 난점까지 얽혀있는 상태에서 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영화제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몰아넣었던 것은 외부적 사안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알 수 없는 정책은 비단 JIFF 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영화제를 혼란으로 몰고 있다. 이전까지 일정한 조건만 만족하면 영화제/상영회에 오는 영화를 등급분류 심의 없이 상영을 자동으로 통과시켜 주었던 정책을 폐기하고 무조건 위원회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을 개정하려 했다. 또한 독립영화관 지원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정한 영화를 지정한 요일에 틀어야지만 지원금을 주는 식으로 바꾸겠다고 천명해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지프테크)를 운영하고 있는 JIFF의 가슴을 앓게 만들었다. 이후 JIFF를 포함한 영화제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면서 해당 정책들의 추진은 보류되었지만 여전히 JIFF의 앞날을 그리 밝지 못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비단 JIFF 외부에만 있지 않다. JIFF 내부의 상황이 외부의 문제와 더 해져 영화제의 앞날을 더욱 알 수 없게 만든다. 지난 13일, 영화제의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처장 안영수 씨가 갑작스럽게 영화제 개막을 2주 정도 남기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2012년 영화제의 프로그래머였던 유운성 씨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해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집행위원장 있던 민병록 동국대 명예교수는 물론 나머지 프로그래머들까지 줄줄이 사표를 제출했던 이후로 다시 영화제를 일궈온 중요한 스탭이 조직을 나가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무처장의 사퇴가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영화제를 단순히 지역 행사로 취급하는 분위기에 반발해 결산 기자회견에서 작정하고 비판했다가 그것이 눈엣가시가 되어 해임되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다시 벌어진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아직 정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JIFF의 조직이 그다지 안정적이지는 못하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올해 JIFF는 작년과 달리 '시민 친화'를 강조했지만, 정작 JIFF의 모습은 어정쩡하다. 작년의 JIFF는 올해처럼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기획했지만 영화제가 열리기 한 달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바람에 강연 프로그램 등 일부를 제외하고 모든 프로그램이 취소되어 의도치 않게 영화 위주의 행사가 되었다. 그리고 올해 JIFF는 다시 다양한 행사 프로그램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영화제가 무조건 영화 위주로 돌아가기 어려우며 JIFF를 포함한 한국의 영화제들이 지자체가 주도해서 연 특성상 지역 친화적인 특성을 마냥 배제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관련해 올해 JIFF는 예술 계간지 <GRAPHIC>과 협력해 영화 100개의 포스터를 100명의 예술가들이 재해석하는 프로젝트인 '100 Films 100 Posters'의 결과물을 '영화의 거리'에서 열거나,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공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등 노력을 한 부분이 없지 않다.

▲ 올해 JIFF는 작년과 달리 '영화의 거리', 개막식장과 야외 상영장으로 쓰이는 전주종합경기장, 그리고 기존 상영관 일부를 대체하는 CGV 전주효자에서 분산 개최된다. 그러면서 부스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은 늘어났지만, 그 공간의 대부분은 행사를 후원한 스폰서의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갑작스레 사라진 행사가 생겼다. 바로 세월호 참사로 JIFF가 몸을 움츠렸던 작년에도 열렸던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와 함께 기획하는 소출력 영화제 라디오 'JIFF FM'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JIFF FM은 전주시민미디어센터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미디어 운동가들이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영화제에 참여하는 관객,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행사로 기능했다. 그런 행사가 '시민 친화'를 강조한 올해의 JIFF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에 대해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측은 올해 JIFF가 분산 개최되기 때문에 부스를 설치할 수 있는 부지가 줄어 라디오 부스를 설치하기 어렵다고 영화제 측에서 통보했고, 센터 역시 이에 합의하면서 올해 JIFF FM은 시행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영화제의 이야기와 달리 정작 분산 개최되면서 쓸 수 있는 행사 공간의 부지는 이전보다 넓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개막식장과 야외 상영장으로 쓰이는 전주종합경기장은 공설운동장의 특성상 야외 부지가 넓기 때문에 작년까지 영화의 거리에 있던 관객 공간인 '지프 라운지'가 옮겨오는 등 충분히 JIFF FM을 설치하려면 설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늘어난 공간의 대부분은 행사를 후원한 스폰서의 것이 되었다. 올해 JIFF의 스폰서가 작년에 비해 줄어들었기 때문에 후원금을 지불한 스폰서에게 혜택을 지불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정작 '시민 친화'를 외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시민과 함께 해 온 행사를 중단하는 것은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일일 수 밖엔 없다.

이렇게 JIFF는 내외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첫 발을 내딛었다. 분명 올해 개막식이 열리는 전주종합경기장은 작년까지 개막식장 공간으로 쓰였던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보다 탁 트인 느낌을 들게 만들었고, 개막작으로 선정된 아리엘 클레이만의 장편 데뷔작 <소년 파르티잔>은 선정적인 장면을 절제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선사해 개막작으로 선정되기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이외에도 역대 최대 편수인 200편의 영화가 올해 JIFF로 소개되는 등 외형적, 작품적인 면에서는 다채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JIFF가 이전부터 쌓여왔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이러한 성과는 결국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늘어나고 만다. 과연 JIFF의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 제대로 된 한 발을 앞으로 내딛을 수 있을 것인가.

Review

개막작 <소년 파르티잔> : 폭력과 위선에 대한 잔혹한 우화

사회로부터 상처를 입고 은신처에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깥 세계와 격리된 공간에 살면서 자신들만의 낙원을 만들지만, 동시에 생활비를 벌고 사회에 복수를 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감정 없는 살인 기계로 기르는 일을 저지르고 있다. 또한 이 '낙원'의 모든 권력은 은신처를 만든 그레고리(뱅상 카셀)의 몫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은신처에 사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지금의 삶에 행복을 느끼고, 그레고리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던 소년 알렉산더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알게 시작하며 점점 자기 주변의 상황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고, 결국 낙원은 스스로의 모순을 보이며 붕괴하기 시작한다.

<소년 파르티잔>은 사회를 피해 만든 은신처가 또 다른 폭력의 모습을 강요하는 모습을 통해 폭력과 권력자의 위선을 폭로한다. 자애로운 권력자는 사실 거짓말을 일삼고 폭력을 아무도 모르게 저지르는 독재자였고, 자신들이 살던 낙원은 그들이 피하고 싶던 사회의 축소판이었을 따름이다.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계속 안정을 이유로 묵살당할 때, 결국 영화 막판의 파국은 예정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어두운 부분으로 가득찬 작품이지만 영화는 마냥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분명 아이들이 암살자로 길러져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설정은 충격적이지만, 작품은 살인의 장면을 강조하는 대신 이러한 불합리가 벌어지는 과정과 근본적인 원인을 추적한다. 이러한 절제는 영화에 담겨있는 메시지와 강렬함을 더욱 강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감독 아리엘 클레이만의 첫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은 첫 데뷔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내었다. 뱅상 카셀을 비롯한 성인 배우와 아역 배우들은 영화 내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고, 여기에 밝지만 어두운 분위기를 깔게 만드는 장소와 촬영이 더해지며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독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품의 리듬이 어떤 이들에게는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첫 작품부터 대부분의 관객들을 사로잡을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은 앞으로의 작품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비공식 개강총회> : 류덕환, 유쾌하고 씁쓸하게 ‘군기잡기’를 파헤치다

류덕환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배우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한편으로 2012년 <장준환을 기다리며>를 시작으로 단편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류덕환은 첫 작품을 만든지 4년 만에 다시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단편을 들고 영화제에 등장하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전작이 <화이>가 개봉하기 전 데뷔한지 10년 이상이 지나도록 <지구를 지켜라!> 밖에 개봉작이 없었던 장준환의 신작을 기다리던 영화학화 학생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 소극인 반면, 이번 작품은 배경은 동일하지만 좀 더 어두운 지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바로 예체능 학과에 여전히 존재하고 일부 학과에서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군기잡기’를 명목으로 내건 선후배 사이의 폭력이다.

주인공 종환은 영화학과에 늦깍이로 입학한 ‘신입생’인데, 우연히 학교에서 자신이 옛날에 군대 후임으로 만났던 ‘학교 선배’ 성훈을 만나게 된다. 혹시라도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종환은 성훈과 담배를 피면서 어떻게 잘 넘어가려 하지만, 그렇기 넘어가기엔 종환이 들어온 학과의 전통인 ‘비공식 학생총회’는 절대 만만치 않다. 학과 선후배가 모여 선배가 후배에게 ‘실습’을 명목으로 각종 폭력을 행사하는 장인 비공식 학생총회는 점차 후반으로 치닫고 결국 종환은 이러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큰 사고를 저지른다.

예전에 비하면 줄었지만 여전히 예체능 학과를 중심으로 선배가 후배에게 저지르는 폭력은 계속 존재하고, 그러하기에 이러한 소재는 주변에 뒷담화로 계속 퍼지거나 단편으로 심심치 않게 나오는 소재기도 했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뻔할 수 있는 소재이지만 류덕환은 단순히 폭력만을 날카롭게 강조하거나, 어설픈 화해로 마무리 짓지 않는다. 오히려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는 길로 서사를 이끌며 관객들을 방심시키다 막판에 판을 뒤집으면서 현실적이지만 마냥 답답하고 불편하지 않은 길을 제시하게 되었다. 또한 중간에 등장하는 ‘비공식 개강총회’의 묘사는 감독이 실제 졸업했던 학교인 중앙대학교가 실명으로 등장하는 동시에 생생하게 폭력의 행동이 묘사되어 있어 작품은 큰 리얼리티를 가지게 되었다. 아직 두 편의 단편 밖에 연출하지 않았지만, 그가 언젠가 만들 장편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건 이 작품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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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프렌디드 : 친구삭제> : SNS 시대의 새로운 호러는 어떤 것일까

이 작품은 영화제가 끝나면 개봉하는 이른바 수입이 이미 확정된 작품이고, 대다수의 영화제 매니아들은 그러기에 작품 감상을 꺼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품을 이미 시사회에서 감상한 관객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 개봉판에는 등급 분류를 낮추기 위해 일부 장면에 흐리게 처리된 부분이 있다니, 어찌보면 이번 JIFF 상영이 스크린을 통해 온전하게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비슷한 상황으로 놓였던 <무드 인디고>가 작년 JIFF로 한국에 처음 소개될 때도 개봉판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적이 있으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JIFF의 특징인 ‘실험적’인 특성과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이트 워치> - <데이 위치> 시리즈, 그리고 대다수의 관객들에겐 <원티드>와 <링컨 : 뱀파이어 헌터>로 잘 알려진 러시아 출신의 영화 감독 겸 제작자 티무르 베크맘베토프는 자신의 고향에서 활동하던 신인 감독과 함께 새로운 형식의 호러 영화를 만든 작품이 바로 <언프렌디드 : 친구삭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치부가 담긴 영상을 인터넷에 뿌리는 바람에 모멸감을 느끼고 친구가 자살한 지 1년, 죽은 친구와 가깝게 지냈던 이들은 스카이프로 단체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혀 모르는 인물이 통화에 끼어든다. 사람들은 이 인물을 통화에서 내쫓으려 하지만 되지 않고, 오히려 그의 프로필에 죽은 친구의 페이스북이 뜨는 것을 보고 점점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그 공포는 인터넷 선을 타고서 사람들의 방으로 찾아오고 만다.

영화는 시종일관 배우들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찍는 대신,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활용하는 페이스북이나 스카이프, 유튜브 같은 인터넷 서비스의 화면을 중심에 놓는다. 이는 이전까지 인터넷 서비스를 영화의 중심 소재로 놓았던 영화들도 잘 하지 않았던 일들이다. 산드라 블록이 출연했던 <네트>, 한석규와 전도연이 등장해 한국에 PC통신 채팅 붐을 낳았던 <접속> 등 영화 자체에 등장인물들이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는 모습이 비중있게 다뤄저도, 초점 대부분은 등장인물들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프렌디드>는 등장인물과 사용하는 서비스의 비중을 역으로 맞춰 연출하였다. 이러한 연출은 인터넷 서비스가 현재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상황이 놓인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실제 모니터로 이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느낌을 들게 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언프렌디드>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침체기에 빠져 있는 호러 영화라는 장르에 어떤 바람을 부를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JIFF에서는 깨끗한 버전으로 볼 수 있기나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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