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화당(나의 일터이자, 활동의 거점인 마을카페)에 앉아있는 지금, SNS로부터 접하는 시청광장의 소식이 뜨겁다. 노동절, 모든 것을 멈추고 지금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것들로부터 전환의 하루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 사회에 균열 낼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멈추지 못했다. 인근 초등학교는 올해부터 단기방학 제도를 시작했다. 어제부터 단기방학에 돌입한 초등학생과 엄마 몇 명이 체화당에서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사회가 돌봄을 책임지지 못하고, 게다가 OECD 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사회에서 봄과 가을에 등장한 단기방학은 아직 여러 가지 의미로 혼란을 야기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체화당에 온 초등학생 둘은 우유를 마시며 단기방학이 자신들의 1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방금 전, 한 동료에게서 SNS가 왔다. 연행 되었다고 했다. 혹시 모르니 각종 SNS 그룹방에서 탈퇴하는 중이고, 연락처를 지우고 있다고 했다.

아찔하다. 여전히 폭력적인 공권력과 이 사회의 거대한 모순들로부터 오는 아찔함과는 다른 아찔함인 것 같다. 직장에 다니는 한 친구는 지난 4월 16일 즈음, 자신의 SNS와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의 괴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한 세계라고 상상하기 힘든 그 괴리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노라 털어놓았다. 내가 느낀 아찔함은 아마 그 비슷한 아찔함인 듯 하다. 동시대, 동시간, 같은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다른 세계를 경험하면서 발생하는 울렁거림 같은 것. 나는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잘 모르겠다.

이미 예상된 멘붕

“이해할 수 없어”

이미 입에 붙어 입버릇이 되어버린 말이다. 마치 영혼없는 리액션 ‘헐’과 같이, 우리는 사회적 현상에 너무 쉽게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해버린다. 2012년 대선이 열린 12월 19일 저녁, 그리고 그 다음날과 다음다음날. 나의 SNS는 그야말로 ‘멘붕’이라는 단어로 접수되었다. 이 때는 SNS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멘붕’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아니, 어떻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지?”

얼마 전 진행된 보궐선거에서 그렇다. “아니, 어떻게 안상수가?”, “아니, 오신환이 어떤 사람인데?” 어디 보궐선거 뿐일까? “아니, 일본은 어떻게 그 사고가 나고 다시 원전을 돌릴 생각을 해?”, “아니 한국사람들은 바로 옆 나라에서 겪은 그 일을 보고서도 원전을 이렇게 늘리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거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는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 뿐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노라 선언하고, 멘붕에 빠진다. 하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그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침에 일어나 집을 나서, 다시 집에 돌아와 잠에 들기까지의 과정을 하나하나 뜯어 살펴보자. 우리 일상 중 어떤 부분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해버린 그 세계로부터 자유로운가?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고, SNS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한탄해도,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인가?

하나의 예로 2000년대 중반에 대학에 초국적자본의 프렌차이즈가 입점하면서 발생했던 논쟁이 기억난다. 10년이 지난 지금, 대학에 들어간 프렌차이즈는 전혀 이질감을 주는 어떤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매점으로 대기업 편의점이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생기고 있다. 그나마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발생하는 지역상권의 경우 대형자본의 거대마트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싸움이 여전히 의미있게 진행되고 있지만, 자신의 이해관계가 소비자 정체성으로 구체화되는 경우 우리는 대부분 익숙해진 대형자본과 초국적기업을 선택한다. 이미 다른 선택지도 많이 사라져버렸다. 우리의 생활세계에는 이미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해버린 ‘신자유주의’의 생활양식이 깊숙이 침투해버렸다. 그러니, 이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한수원의 에너지팜

종로 한복판에 서울YMCA 건물 1층, ‘에너지팜’이라는 공간이 들어섰다. 신개념 에너지 문화카페를 표방하는 ‘에너지팜’은 (주)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과 커피빈 코리아(이하 커피빈)가 함께 만든 문화공간으로 카페 한켠에 에너지 관련된 전시물들을 설치하고, 에너지 테이블 게임 등 간단한 놀이가 가능한 체험 섹션을 마련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을 독려하고, 에너지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설치물도 있다. 마치 좋은 교육시설이자, 시민들의 훌륭한 문화공간처럼 잘 꾸며놓았다. 크게 거부하는 마음 없이 커피 마시고, 사람 기다리러 들어왔다가 편한 마음으로 이런 저런 내용들을 보고 나갈 수 있게 되어있다. 누가 말을 거는 사람도 없어 부담스럽지 않고, 긍정적인 메시지 투성이라 마음도 불편하지 않다. 심지어 이 공간의 수익금은 서울YMCA에 청년발전기금으로 기부된다고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편한 마음으로 쉽게 ‘원자력 발전소’의 경제성과 안전성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접하게 된다.

▲ 종각역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한수원의 에너지팜. (사진=한국수력원자력 홈페이지)

에너지팜을 접하고, 제일 먼저 떠오른 공간은 바로 내가 10년 넘게 관계를 갖고, 지금은 주 활동공간으로 삼고 있는 나의 일터 체화당이다. 물론 체화당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단순히 손님이 많고, 수익 모델이 좋은 공간에서 찾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부분에 있어 체화당은 지금까지 한번도 ‘성공적’이질 못했다. 손님이 많은 시기는 거의 없었고, 늘 겨우겨우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상처 받기도 하고, 누군가는 힘에 겨워 이 공간을 떠난 적도 있다. 한 때 나는 이 동네의 특성이 어쩔 수 없다고 결론 내리기도 했다. 인구 수가 많지 않고, 정주성이 낮은 청년세대가 중심인 마을이라 카페가 잘 되지 못하는 것이리라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웬걸, 몇 년 전 체화당으로 올라오는 길목 아래 로터리에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스타벅스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로터리에 있는 스타벅스와 언덕 위에 있는 체화당이라는 비교 불가능한 조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동네에 커피를 찾고, 공간을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도 체화당이니까 드나드는 것이지, 자기 집 근처에 체화당 비슷한 카페가 있어도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선배도 자기 동네에 있는 마을카페에 왠지 들어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심지어 체화당 앞에 온 어떤 손님은 “여기, 카페 맞나요?”라고 묻기도 한다. 우리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기대하며 카페를 찾는다. 체화당은 그 기대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체화당과 같은 공간은 그 공간 나름의 방식으로 지속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민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종로 에너지팜에 놓여있는 ‘에너지 이야기’라는 브로셔와 체화당과 같은 공간들에 놓여있는 ‘밀양’, ‘세월호’에 대한 각종 브로셔들의 각기 다른 처지가 고민스러운 것이다.

광장을 넘어 가야할 곳

광장에 모인 우리들은 늘 청와대로 오르는 길목에서 경찰 차벽에 막힌다. 그리고 분노한다. 나도 진심으로 청와대가, 우리가 선출한 집행부의 권력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대답을 미루고, 변명하는 비겁함에 분노한다.

그런데, 광장을 나와 우리의 일상과 생활세계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일까? 경찰도 없고, 하물며 차벽은 당연히 없는 그 길을 무엇이 가로막고 있을까?

종로의 에너지팜을 보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즉자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제안하고, 그 세계의 삶의 방식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들을 일상의 지점들에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어떤 공간은 크게, 어떤 공간은 작게, 민간 자본을 활용해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공적 자본을 투입하는 정치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초대와 제안의 공간, 그리고 경험할 수 있는 대안적인 전환의 공간들을 만들어내야 할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경찰차벽은 없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선언해버린 그 세계로 들어서는 길목의 더 높은 벽을 해체하는 작업을 더 미룰 수 없다. 그 견고한 경찰차벽보다 수배는 더 완고해보이는 그 벽을 해체할 수 있는 실마리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이태영 / 서울녹색당 정책위원장

30대 초반, 지역활동가이자, 녹색당원. 풀뿌리사회지기학교와 신촌민회, 체화당이 어우러진 신촌의 일터에서 활동하고 있고, 서울녹색당의 정책위원장으로 역할하고 있다.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을 조직한다.”는 목표로 2014년 지방선거에 녹색당 서대문구의원 후보로 출마, 낙선했다. 아직 그 목표는 유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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