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았다.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상대인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제기해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 측은 2, 3심 재판이 남았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면서 지금까지 추진해온 정책들을 계속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조선일보 24일자 사회면 기사.

그러나 보수언론들은 조희연 교육감의 입장에는 관심도 없다는듯 일제히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쏟아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회면 보도에서 “지난 7년간 직선제로 당선된 역대 서울시교육감 4명 가운데 3명이 임기 중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 하차하거나 하차할 위기에 놓이게 됐다”면서 “역대 교육감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잇따라 낙마하거나 재판을 받는 바람에 서울교육청이 제대로 추진한 정책이 하나도 없다”는 서울의 한 고교 교장의 발언을 인용했다.

▲ 조선일보 24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조희연 1심 당선무효형, 교육감 직선제 이대로 좋은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서도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1심 판결이 확정된다면 서울시의 수백만 유권자들은 교육감을 다시 뽑는 선거를 해야 한다. 교육 현장은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면서 “설령 나중에 2·3심에서 교육감직 유지 판결이 나오더라도 불안한 신분의 조 교육감이 교육청 조직을 제대로 이끌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교육감 직선제는 학교 운영위원끼리 교육감을 뽑는 간선제가 금권선거, 파벌선거라는 논란을 빚자 도입된 것이지만 극심한 정치 이념 대결 구도로 전개되면서 ‘진흙탕 싸움’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면서 “교육감 직선제의 폐해가 계속된다면 이 제도를 계속 가져갈 건지에 대한 의문이 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24일자 사설.

<동아일보>도 마찬가지다. <동아일보>는 이날 2면에 해당 소식을 다루면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정치적인 혼탁선거로 변해가는 교육감 선거의 폐해를 확인한 판결”이라는 입장을 그대로 전했다. 교총은 지난해 교육감 직선제가 위헌이라는 취지로 위헌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도 “2008년 교육감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정기 선거에서 당선된 서울시 교육감들이 모두 범죄에 연루됐다. 교육감선거는 정치적 중립을 위해 당 공천을 배제하고 있지만 정치색을 배제하기 어렵고 선거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음이 다시 확인됐다”면서 “교육감직선제를 더이상 놔두어서는 안 된다. 시도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하거나 시도지사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는 방식 등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이러한 주장은 그러나 논리적 허점을 갖고 있다. 첫 번째로 지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선거법 위반 사건이 반복된다는 사실이 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거의 모든 선거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상실된 의원직 등을 채우기 위해 재보궐선거를 4월과 10월에 실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누구도 국회의원 선거를 폐지하자거나 지방자치제도를 90년대 이전으로 되돌리자는 식의 주장을 내놓지는 않는다. 범위를 넓혀서 성완종 전 경남지사 회장의 ‘금품 메모’에 등장하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나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등이 결국 금품을 수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를 상정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교육’이라는 분야의 특수성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다른 분야 역시 중요한 것은 매한가지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해 대한민국의 법률을 만드는 입법기관이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흙탕물 선거’가 반복되고 있지만 양식있는 언론이라면 어디라도 국회의원 선거가 필요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광역자치단체장의 경우 역시 현행 지방자치제도 하에서 상당한 권한이 보장돼있음에도 늘상 문제가 일어난다. 실제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완전한 직선제를 시행하지 않던 시기도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장이야 그렇다 쳐도 국회의원 일부를 사실상 대통령이 지명했었다. 그 시기의 통치형태를 우리는 ‘독재’라고 부른다.

직선제 폐지론의 두 번째 맹점은 간선제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직선제에서 드러나는 ‘폐해’가 근본적 차원에서 시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언급하고 있는대로 기존 간선제에서는 금권선거, 파벌선거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논란 자체가 전부 ‘흙탕물 선거’이다. 다만 이 경우 따로 위탁관리를 의뢰하지 않는 이상 선출 절차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감시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있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논란과 갈등을 어떻게든 수습·봉합하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으로 교육감직을 상실하는 경우가 빈번하지 않은 것이다. 즉, 직선제는 없던 문제를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문제를 투명하게 드러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동아일보>가 현행 교육감 직선제의 대안처럼 거론하는 ‘시도지사 러닝메이트제’의 논리 역시 황당하다는 점은 다를바 없다. 직선제 폐지론자들은 직선제를 통해 교육감 선거가 과열되고 과잉정치화된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는데 러닝메이트제는 오히려 이런 경향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처럼 ‘성완종 리스트’ 등의 사건이 정치권 전체의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르는 경우 교육감 선거가 러닝메이트제로 치러진다면 ‘교육’과는 별 상관도 없는 이 문제의 영향력에서 교육감 후보들이 분리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오히려 ‘정쟁’에 열중하는 시도지사 후보들의 정치논리에 교육감 후보들이 종속될 확률이 훨씬 높다. 러닝메이트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이를 현행 교육감 직선제 폐지론과 함께 언급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오히려 ‘러닝메이트제’가 제기되는 건 정파적 논리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설득력있을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이 선출된 선거는 2014년 6·4 지방선거이다. 이 당시 스코어는 시도지사 선거에서 여야가 사실상 무승부를 이뤘는데, 교육감 선거에 있어서만은 ‘진보후보’가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이변을 연출했다. 당시 보수언론들은 이러한 상황에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며 일제히 직선제 폐지론과 러닝메이트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 2014년 6월 5일자 조선일보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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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친환경무상급식조례제정운동 등을 통해 만들어진 야권 성향의 시민단체 등의 연결고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반면 보수세력은 자기들끼리 후보단일화를 진행하지 못하고 사분오열하는 불행을 반복했다. 만일 시도지사 러닝메이트제를 시행했다면 보수성향의 교육감 후보들은 ‘여당’으로부터 사실상 공천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누가 ‘여당 후보’인지 명확해지면 세대결을 통해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들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게 보수세력의 계산이다.

보수언론이 직선제 폐지론이나 러닝메이트제를 반복 주장하는 것은 이런 사정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직선제를 폐지해도, 러닝메이트제를 시행해도 남는 것은 기득권에 유리하다는 것 뿐이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선거범죄’에 대해 보도하고 논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두고 이런 꼼수를 부려서야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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