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출신으로 ‘역사편향’ 논란 속에 KBS 이사회의 수장에 오른 이인호 이사장의 군불 때기로 시작된 KBS <뿌리깊은 미래> ‘좌편향’ 논란이 결국, ‘중징계’ 제재로 귀결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통심의위)는 24일 광복 70주년 특집으로 제작된 KBS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 심의를 진행,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의 다수결에 따라 ‘경고’(벌점2점)를 의결했다. 방통심의위는 KBS <뿌리깊은 미래>에 대해 “한국전쟁 발발, 서울 수복 후 부역자 처벌, 미군의 흥남 철수 등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 맥락상 필요한 부분을 생략하거나 특정 장면의 부각, 사실과 다른 내용의 내레이션 등으로 왜곡된 역사 인식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방송했다”고 징계 사유를 밝혔다.

▲ 2월 7일 방영된 KBS '뿌리깊은 미래' 캡처

방통심의위는 그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봤다?

방통심의위는 <뿌리깊은 미래>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공정성)와 제14조(객관성)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아래의 내용들이다.

<광복 후 전쟁 발발 이전>

▲광복 직후 미군이 들어왔으며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나뉘어 미소 군정하에 들어갔다는 내용, ▲미 군정하에서 초등교육이 의무화되었고 우리말과 우리글을 배울 수 있게 되었으며, 일제의 잔재를 없애려는 노력도 계속되었다는 내용, ▲쌀의 자유거래가 허용되자 사람들이 매점매석해 쌀값이 폭등하게 되어, 미군정이 물가안정을 명목으로 일정량의 쌀을 강제로 거두기 시작하였고, ▲쌀을 사지 못해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이 시위를 벌였으나 미군정과 경찰에 의해 진압되었다는 내용, ▲이에 미국은 경제안정화를 위해 곡물, 의복, 비료 등의 원조물자를 지원하였다는 내용, ▲남과 북으로의 이동이 막힌 후, 38선 이남에서는 총선거가 실시되었다는 내용 등을 방송하고,

<전쟁 발발 이후>

▲1950년 6월 25일 전쟁 당시 “전쟁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총격전은 38선 부근에선 으레 있던 일이었다.”는 내레이션에 이어, “피난민들이 건너고 있던 한강다리가 폭파됐다. 그것은 군 관계자의 지시였다.”는 내용, ▲전쟁이 발발해 사람들은 피난 행렬에 나섰고, UN군이 참전하였다는 내용과 함께 “피난민들은 새로운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서마다 신분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남녘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야 했다.”는 내용, ▲수세에 몰려 있던 상황에서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여 UN군과 국군이 서울에 입성하였고, ▲이에 피난민들도 서울 집으로 돌아갔으나 일부 사람들은 도강증이 없어 한강을 건널 수 없었다는 내용에 이어, ▲“피난갔다 돌아온 이들이 한강다리가 파괴돼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이들을 찾아내 심문하기 시작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부역 혐의자에 대한 검거가 이루어지면서 죄명도 모른채 사형당한 사람도 있었다는 내용, ▲피난민들이 서울로 상경하여 무너진 도로·주택을 복구하고 학교 수업도 재개되는 등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전쟁 고아가 생겨나고 학생들이 전쟁에 동원되는 등 비참한 상황이 지속되었다는 내용,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유엔군은 흥남을 목적지로 삼아 철수를 시작하였고 민간인들도 따라 나섰다는 내용, ▲해상으로의 탈출을 결정한 UN군은 남은 기름, 탄약 등을 폭파했고, 미군은 떠나면서 부두를 폭파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에 이어, ▲“흥남엔 미군이 북에 원자폭탄을 투하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돌았다. 살고 싶으면 미국과 함께 떠나야 했다.”, “흥남에 남은 민간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등의 내레이션 내용,

▲매서운 추위의 겨울이 되어 사람들은 다시 남쪽으로 피난행렬에 나섰다는 내용에 이어, ▲“그것이 1951년 1월 우리의 모습이었다. 광복 후 홀로서기를 외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 외침은 전쟁이란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았다. 메마르나 뽑히지 않는 뿌리가 우리에게 있었다.”는 내레이션 내용 등을 방송함.


공식기록이 아니면 역사가 아닌가?

방통심의위는 KBS <뿌리깊은 미래>를 ‘좌편향’이라 공격한 극보수자들의 이념 시비를 그대로 따랐다. 한국전쟁과 관련해 다수의 국민들은 북한의 ‘남침’에 의한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남침이라고 왜 안 썼느냐”는 물음이 제기됐다. 작가가 잘못된 역사관을 가졌다는 사상검증 표현이 나오기도 했다.

▲ 2월 13일자 '동아일보' 사설

정부여당 추천 함귀용 심의위원은 지난 방송심의소위의 주장을 그대로 ‘부역 혐의자에 대한 검거가 이루어지면서 죄명도 모른채 사형당한 사람도 있었다’, ‘흥남에 남은 민간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등의 나래이션을 문제 삼았다. 함 심의위원은 ‘부역자 처벌’관련 나래이션과 관련해 “그런 식(죄명도 모른 채 사형)으로 처리된 적이 없다”며 “(서울이)수복되면서 부역자 처리에 대한 임시특례법이 만들어졌고 당대 최고라는 변호사들의 변론 속에 재판이 진행됐다. 이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군이 내려와 우리 국민들 8000여명을 학살한 것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라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흥남철수’와 관련해서도 “패전한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참전한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전쟁)물자를 버리더라도 적의 국민(피난 온 사람들) 한 명이라도 더 실리려고 했기 때문”이라며 “대한민국 공영방송 KBS가 그런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 없이 원자폭탄 떨어져 피난 온 것처럼 묘사하고 상당수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떠나자 미군이 (흥남을)폭파시켜버렸다는 식으로만 다뤘다”고 지적했다. ‘그 사람들(흥남에 남아있던)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폭파함으로서 죽은 것 같은 뉘앙스의 방송”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추천 장낙인 상임위원은 ‘죄명도 모른채 사형당한 사람도 있었다’라는 표현에 대한 함귀용 심의위원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공식기록에는 없는 개인적 형벌도 있었다”며 “(자료들을 찾아보면) 당시 권력을 남용해 부역자의 인권을 유린함으로써 국민들의 원성이 날로 높아졌다는 기록도 있다”고 제시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또한 “사원(사적원한) 설분을 피하자”라고 담화가 있었는데, 이 또한 개인적 형벌이 있었기 때문에 나온 담화로 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KBS 해당 나래이션은 ‘허위’라고 문제삼을 정도는 아니라는 지적이었는데 함귀용 심의위원은 “장 상임위원의 증거들이 오히려 당시 정부가 부역자 처리에 있어서 억울한 희생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동문서답했다.

장낙인 상임위원은 ‘흥남철수’에 대해서도 “한 재향군인이 당시 ‘배에 타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증언한 부분이 있다”며 “2010년 5월 25일 국민일보 기사 중에서도 소설가 이호철 씨의 ‘원자폭탄이 떨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해 무작정 피하고 보자’는 증언도 있었다”고 반문했다. 그는 “한국전쟁을 설명할 때 ‘남침’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당시 표현이었던)‘남녘’이라고 썼다고 해서 문제 삼는 것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장 상임위원은 KBS <뿌리깊은 미래>와 관련해 행정지도 중 가장 약한 ‘의견제시’ 제재 의견을 밝혔다. 박신서 심의위원도 이에 동조했다.

야당추천 운훈열 심의위원은 “한국전쟁이 ‘남침’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상식으로 통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남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고 남침한 이유가 사회주의 혁명을 시키려는 것이었음을 부정하는게 아니다. 다만, 다큐멘터리의 의도와 방향성, 맥락을 봐야지 지엽적으로 이런 내용이 안 들어갔다고 해서 심의를 받아선 안 된다는 얘기”라고 ‘문제없음’을 주장했다.

정부여당 심의위원들의 말말말…“나레이션 작가 잘못된 사관”

그러나 정부여당 추천심의위원들 지속적으로 ‘좌편향’ 시비를 제기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표현과 해석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문제 삼았다.

“모든 사실을 다 넣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너무 중요한 팩트를 빠뜨리고 넘어갔다. ‘전쟁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총격전은 38선 부근에선 으레 있던 일이었다’는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얘기는 뭐냐. 북한 군의 남침이다. 길지도 않다. 이 한마디 하면 되는 문제다.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야 남침이라고 알지만 젊은 세대들이 볼 때 전혀 그렇지 않다. 또, ‘피난민들이 건너고 있던 한강다리가 폭파됐다. 그것은 군 관계자의 지시였다’는 표현 또한 틀린 말은 아닌데 의도를 알 수 없지만 교묘하다. 그러면 군이 피난민들을 죽였다는 말이냐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간단한 중요한 멘트를 넣어 줘야 하는데 너무 많이 빠졌다”_고대석 심의위원

함귀용 심의위원은 ‘총격전은 38선 부근에선 으레 있던 일’이라는 표현에 대해 “한국전쟁이 북침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80년대 사관인데 이런 멘트가 나온 것은 의도적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함 심의위원은 또한 “내레이션 작가는 80년대 잘못된 사관으로 썼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역사는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다. 남침임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큐에서는 부역자 처리를 다루고 있는데, 그 이전에 부역자가 왜 발생했는가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때 당시 북한 추종하는 사회주의자들이 한국에는 상당히 많았다. 한 가지 사례만 들겠다. 해방 뒤 전국노동자평의회(전평)가 만들어진다. 그곳의 강령을 보면 ‘우리는 사회주의를 지향한다’였다. 이런 부역자들로 인해서 한국사회의 존망이 걸려 있을 때였다. 부역자 문제가 왜 발생했는가에 대해서 먼저 시작 하는게 다큐멘터리의 순서이다. …(중략)… 북한이 왜 남침했는가. 그 분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회주의를 한국에 심기위한 것이었다. 북한이 왜 남침을 왜했는지 부역자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_조영기 심의위원

박효종 위원장, “KBS가 목숨 걸고 싸웠던 사람들 폄훼” 주장

박효종 위원장은 KBS <뿌리깊은 미래>와 영화 <국제시장>을 비교해 “국제시장이 1400만 명의 관객을 불러일으켰고 눈물까지 자아냈다. 그것은 진실에 바탕을 뒀고 국민들 상당수가 공감할 정도로 (우리의)삶이 녹아 있기 때문”이라며 “KBS는 공감은 아니더라도 혼란 유발은 피했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피난길에 올랐던 많은 사람들은 자유를 찾아 결연한 심정으로 집을 떠난 것이다. 북한 공산치하 주민처럼 노예로 살아선 안 된다는 거였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별 탈이 없었다’라는 등의 표현은 모욕이다. 비굴한 평화보다는 비장하게 싸워야 할 대가 있다. 한국전쟁이 그랬다. 당시 목숨 걸고 싸웠는데 (왜 KBS는 그를)폄훼하는지 모르겠다. 소년병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학생들이 동원됐다’고 하는데 표현부터 틀렸다. 학도병이다. 그들은 동원되지 않았고 자원입대했다. 그런 그들은 (마치) IS를 연상시키는 말을 쓴 것이 가당키나 하나. ‘치열하게 살았다’고 이야기하지만 기회주의자처럼 피난가고 살기 위해 처신한 것이라는 생각(표현한 것 같은)을 지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감동해 눈물 흘렸던 사람들이 KBS 다큐를 보면서 불편해한 것이다”_박효종 위원장

또 다른 야당추천 하남신 심의위원은 KBS <뿌리깊은 미래>와 관련해 “이념적 문제로 받아들여 심의를 한 게 아닌가 싶다”며 “이 작품은 역사다큐가 아니다.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고난과 시련, 갈등을 극복하고 희망으로 가는 것을 주제로 기획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 부분적으로 한국전쟁을 소재로 다뤄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팩트를 소홀히 한 부분이 있었고 그러면서 이념적 오해를 받는 빌미가 제공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해당 심의를 이념적으로 구분하지 말고 합의하자”면서 절충점으로 법정제재 ‘주의’로 제안하기도 했다. 이념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과연 KBS <뿌리깊은 미래>가 법정제재를 받은 만한 정도로 팩트의 오류가 심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이날 방통심의위는 KBS <뿌리깊은 미래>와 관련해 ‘경고’ 5인(박효종·김성묵·함귀용·고대석·조영기)과 ‘주의’ 1인(하남신), ‘의견제시’ 2인(장낙인·박신서), ‘문제없음’ 1인(운휸열)으로 갈려 다수결에 따라 ‘경고’ 제재가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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