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드라마를 여고생 딸을 둔 부모가 같이 볼 수 있겠나”
“동성애는 올바른 가치관이 아니다”
“동성애를 조장하는 측면이 크다”
“동성애는 키스가 아니더라도 다정하게 손을 잡는 장면이나 어깨를 두드리는 장면을 통해서도 표현할 수 있다”

‘동성키스’로 논란이 컸던 JTBC <선암여고 탐정단>에 대한 제재결정이 끝났다. 결과는 방송사 재승인시 감점이 되는 ‘경고’(벌점2점)였다.

이변은 없었다. 중징계 제재수위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심의 과정에서 내용이 좋지 않았다. 심의과정에서는 우려했던 대로 동성애 혐오성 발언들이 다시 쏟아져 나왔다. 심의위원들은 겉으로는 “성소수자는 보호해야 한다”, “다양성은 인정한다”고 말했지만 동성애를 다룬 것은 중한 제재를 해야 한다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굳이 키스가 아니더라도 다정하게 손을 잡는 장면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박효종 심의위원이 발언이 나왔을 때는, 방청객에서 헛웃음이 쏟아졌다.

SBS <상속자들> 이민호와 박신혜 키스신과 JTBC <선암여고 탐정단>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통심의위)는 24일 전체회의를 열어 JTBC <선암여고 탐정단>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심의 날짜가 다가오며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과 동성애 혐오자들이 동시에 방통심의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방청투쟁’을 하겠다는 등 종일 전운이 감돌았다. 방통심의위는 충돌을 우려해 방청실을 따로 마련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 하지만 동성애 혐오론자들이 19층 직접 방청석을 모두 차지하면서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 SBS '상속자들' 키스장면

방통심의위 회의장에선 본격적인 심의에 앞서 ‘키스신 동영상’부터 상영됐다. 먼저, SBS <상속자들> 이민호(김탄)와 박신혜(차은상) 키스신 장면이 'on air'됐다. ‘옥상’에서의 키스신에서부터 은밀한 장소인 ‘창고’에서의 키스신까지 그대로 상영됐다. 해당 장면은 ‘19금 키스’로 화제가 됐던 만큼 농도가 진했다. 또한 Mnet <몬스타> 용준형(윤설찬)과 하연수(민세이) 키스신도 등장했다. 두 드라마 모두 커플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농도 진한 키스신이 등장했다.

그리곤 곧바로 JTBC <선암여고 탐정단> 김소혜(수연)와 강성아(은빈) 키스신이 상영됐다. 극 중에서 김소혜의 몸캠 사진이 유출돼 곤욕을 치르는 과정에서 커플이 이별 위기를 맞이한 장면에서 등장한 키스신이었다. 드라마에선 매우 슬픈 장면이었다.

▲ JTBC '선암여고 탐정단' 키스장면

다른 건 단 한 가지, ‘이성커플’이었느냐 ‘동성커플’이었느냐의 차이였다. 야당추천 장낙인 상임위원은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의 심의에 앞서 ‘유사심의 사례’로 SBS <상속자들>과 Mnet <몬스타> 키스영상을 보여주며, 동성애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면 제재수위는 앞선 심의의 형평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SBS <상속자들>은 ‘권고’ 그리고 Mnet <몬스타>는 ‘의견제시’라는 행정지도 제재를 받았다. 모두 고등학생이라는 설정에서 키스신을 장시간 한 것이 문제가 돼 제재를 받았던 프로그램들이었다. 물론, 이날 이 같은 주장을 한 사람은 장낙인 심의위원밖에 없었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같은 사례로 볼 수 없다”며 “이성이든 동성이든 성표현이 아름다울 수 있고, 선정적이거나 혐오스럽다거나 할 수 있다. 이번 안건은 여고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1분 동안 키스를 하고 클로즈업한 것이 굉장히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해서 민원이 들어온 것이고 저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심의 시작부터 이성애(키스신)와 동성애(키스신)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성애 혐오’ 발언들이 쏟아졌다.

“동성애는 올바른 가치관이 아니다”

“난 동성애를 찬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보호되어야 한다. 앞서 본 SBS <상속자들>은 이성간 이야기이다. 그것도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법정 제재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해 ‘권고’ 제재했던 것이다. 저는 표현 부분을 주로 봤다. 동성애에 부정적 견해를 가졌다고 해서 법정제재 하자는게 아니다. 해당 드라마는 15세 시청가드라마로 주 타깃층이 고등학생이다. 거기에서 교복을 입고 명찰을 달고 서점에서 1분에 걸쳐 키스한 것은 수용할 수준은 넘었다. 다양성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떠나서 올바른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봐야 한다. 그 같은 인식이 없어지기 시작하면 사회적 혼란이 온다. 소수자들의 성적 권리를 인정해주되, (그것이)우리의 올바른 가치관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나쁜 영향 미치는 파장이 있다. 아직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이 보고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 방송에서 저렇게 까지 진한 (키스)장면을 보여주면서까지 동성애를 다뤘어야 했나”_함귀용 심의위원

함귀용 심의위원은 “동성애자들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발언을 듣다보면 ‘인권’의 가치 알기는 한 사람인가는 의문이 드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동성애는 올바른 가치관이 아니”라는 그의 소신은 동성애차별을 그대로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그는 동성애를 찬반의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반 인권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동성애, 키스말고 다정하게 손을 잡는 장면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박효종 위원장의 발언은 더 심란했다. 가히 실소를 감출 수 없는 발언들이 나왔다. 박 위원장은 “동성애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리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동성애에 대한 애정행각은 다정하게 손을 잡는 장면만 넣어야 한다는 말했다.

“제 입장은 동성애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려는 입장이다. 이것은 마치 육식을 하는 사람이 채식주의자를 이해하려는 것과 같다. 교회에 다니지만 무교자들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1분간 긴 시간 여고생 간 키스를 클로즈업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동성애 담론을 제기하고자 했다면 잘못 접근했다. 동성애, 키스가 아니더라도 우아하고 품위있는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다정하게 손을 잡는 장면이나 어깨를 두드리는 장면들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장면으로도 다정한 부부애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다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라. 우리 위원회는 이번 결정에서 성소수자 권리 판단은 유보한다. 이는 보다 폭넓은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할 사항이다. 얼마 전 있었던 간통죄 헌재 판결에서 보듯 숙려기간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지 한 두 편의 TV프로그램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부분에서 소녀들의 긴 시간 키스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선정적 표현방식, 노이즈 마케팅에 불과하다. (이 같은 인식은)청소년 뿐 아니라 학부모들의 보편 인식과 같다. 방송은 시청자를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청자를 불편하게 했다”_ 박효종 위원장

“여고생 딸을 둔 부모가 같이 볼 수 있겠나…채널 돌렸을 것”

SBS 출신 하남신 심의위원은 좀 다를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심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 또한 겉으로는 “소수자 인권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성애, 소수자 인권 보호하고 권리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인습이 인정은 하되 권장하진 않는다. 동성애자들도 ‘커밍아웃’이라고 쓴다. 왜 하나. 자랑스럽고 거리낌 없고 거칠 것 없으면 뭣 때문에 커밍아웃을 하느냐. 현실은 아직도 은밀하고 터부시하고 금기하는 사회적 인습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드라마에서 여과없이 표현된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 드라마 소재로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고등학생들의 애정)표현수위도 문제 있지만 동성애 또한 (심의할 때)고려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SBS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도 미성년자들이 키스도 하고 그런다. 그러나 (시청자들이)웃으며 보는 드라마가 됐다. 공감이다. 여고생들 키스는 이성간 키스와는 다른 느낌과 자극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런 표현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봐야 한다. 저 드라마를 여고생 딸을 둔 부모가 같이 볼 수 있겠나. 얼마나 불편하겠나. TV라는 게 뭔가. 15세관람가는 부모가 같이 보는 것을 방송해주는 것이 사회 통념이고 방송사가 해야 할 일이다. 아니면 인터넷접속해서 성인사이트 들어가서 봐야지. 전파를 타고 불특정 다수에게 건전한 가정 기풍에 영향을 줘야 하는데…. (딸 가진 부모는 보다가)채널 돌릴 것이다.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_하남신 심의위원

‘SBS <상속자들> 키스신 또한 부모와 같이 못 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에 하남신 심의위원의 답은 “그건 (전) 참으면서 봤다”면서 “어느 부모가 동성애 좋다고 부추기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 심의위원은 “동성애 자체를 심의대상에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분명히 ‘차별’이다.

▲ JTBC '선암여고 탐정단' 홈페이지 캡처
“PD가 사회적 책임 회피했기에 중징계…동성애 조장 내용”

김성묵 부위원장은 더 나갔다. JTBC <선암여고 탐정단> ‘제작진의 태도’를 문제삼으면서 중징계를 요청했다.

“우리 사회는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굉장히 많다. 이런 주제를 방송할 때에는 책임 문제가 결부된다. (동성 키스장면으로)청소년들의 성 정체성에 혼란 줬다고 본다. 제작진들은 문제여부는 시청자들이 판단해야한다고 본 것 같은데, 방송은 사회적 공기이다. 그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제작자의 태도이다. MBN과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드라마가 나가고 난 뒤 여운혁 PD는 동성애 키스신이 성소수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자 제작됐고 옳고 그름은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방송소위 진술에서 여운혁는 ‘(그 같은 인터뷰를)기억 못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책임 회피이다”_김성묵 부위원장

또 다른 정부여당 추천 조영기 심의위원 또한 “성소수자 권리는 보호되어야하지만 권장하는 것은 매우 문제가 있지 않는가”라면서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이 “이성간 교제가 아니라 동성간 교제를 어떤 측면에서 조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밝혔다. 고대석 심의위원(MBC출신) 또한 “의견이 거의 같다”고 입장을 같이 했다.

야당추천 심의위원들의 수준…“중요한 클로즈업에서 길게 표현한 것 도 지나쳐”

동성애 소재 방송프로그램 심의에 있어서는 여야 추천위원들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MBC 출신으로 야당이 추천한 박신서 심의위원은 “JTBC <선암여고 탐정단>에 나오는 동성애 관련 내용은 성적 지향성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선택의 문제라고 봐서 별 문제 삼지 않았다”며 “다만, 프로그램에 나오는 키스신을 비롯한 표현의 수위를 문제 삼았다. 특히, 표현에 있어서 엔딩신에서 중요한 클로즈업과 길게 표현한 것은 도가 지나치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법정제재 ‘주의’(감점1점) 의견을 냈다. 역시, 야당 추천인 윤훈열 심의위원은 “(표현)수위와 15세 이상 프로그램에서의 끼칠 수 있는 영향은 문제가 있다”고 ‘주의’ 입장에 동조했다.

JTBC <선암여고 탐정담>은 이날 정부여당 추천 박효종 위원장을 비롯한 김성묵 부위원장, 함귀용·하남신·고대석·조영기 심의위원 다수결에 따라 ‘경고’가 결정됐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유지)와 제43조(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를 위반했다는 결론이다. 장낙인 상임위원은 ‘권고’ 소수의견으로 남았다.

이날 심의에 앞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은 방통심의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키스’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들은 JTBC <선암여고 탐정단> 심의는 방통심의위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의 보여준 수준은 그대로 동성애 혐오였다. 동성애자들도 이성애자들과 같은 사랑을 한다. 사회적 관습과 인습을 고려해 TV에서 이성간 키스신은 괜찮지만 동성 간 키스는 안 된다는 것은 과연 옳을까. 함께 심의를 지켜본 언론개혁시민연대 김동찬 사무국장은 “방통심의위는 폐지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며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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