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점차 참여정부 시기의 성완종 전 회장 특별사면 논란으로 국면이 넘어가는 모양새다. 23일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실 소속 인사들이었던 인사들은 성완종 전 회장 사면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사면은 “탕평과 화합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여야의 인물을 아우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즉, 2007년 당시 성완종 전 회장이 사면을 받은 것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음에도 새누리당이 이에 눈감고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대한 ‘물타기’에 나서고 있다는 게 핵심 요지다.

여당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새누리당 권성동, 김도읍 의원은 당시 성완종 전 회장의 사면의 성격에 대해 “정권 마지막 사면은 보은적 성격의 사면”이라면서 이명박 당시 후보가 당선되기 전에 성완종 전 회장이 이미 사면 명단에 포함돼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법무부가 성완종 전 회장의 사면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성완종 전 회장 한 사람에 대한 사면을 재가했다고도 주장했다.

이렇게 참여정부 당시 성완종 전 회장 사면 과정에 대한 의혹이 일종의 ‘진실게임’ 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면서 ‘성완종 리스트’로부터 시작된 국면은 야당에 다소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4·29 재보궐선거를 일주일 남겨둔 상황에서 여당의 지역조직들이 성완종 전 회장 사건이 이렇게까지 확대된 책임을 야당에 뒤집어 씌울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하게 되기 때문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3일 국회 대표실에서 열린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팔을 걷어 붙이고 논리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권성동, 김도읍 의원의 주장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선 전 이미 성완종 전 회장의 사면이 결정돼있었다는 부분은 쉽게 반박이 가능한 지점이다. 첫째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야당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를 거의 600만표 차이로 이겼다. 따라서 성완종 전 회장이 상고를 포기하던 시기에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이를 통한 특별사면을 추진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둘째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선 여부와는 관계없이 당시 특별사면은 여야를 아울러 진행된 측면이 있으므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이를 요구했을 가능성 역시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싸움을 벌이더라도 결론은 쉽게 나지 않는다. 결국 마지막에 성완종 전 회장의 사면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가한 이상 이것이 야당의 요구를 반영한 것인지 청와대의 판단에 따른 것인지는 여전히 진실게임의 영역에 남게 되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과 문재인 대표가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이상득 전 의원 등의 ‘요구’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다면 쉽게 논란이 끝날 문제지만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는 부분에 새누리당이 죽자살자 달려들 것이기 때문에 논란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결국 이런 치고 받는 싸움을 시작하게 되면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억지논리를 펴더라도 종편의 지원사격을 받는 새누리당이 4월 29일까지 이득을 볼 여지가 충분히 생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문재인 대표는 이것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특별사면과 관련한 공세에 대응할 수 있는 두번째 방법은 논란 자체를 테이블 위에서 일단 치워버리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 논란은 언급이 되는 것 자체가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이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를 신중히 검토한다고 발언한 것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함정 자체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문재인 대표는 ‘성완종 리스트’ 문제가 박근혜 정권의 불법정치자금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야당을 함께 엮으려는 정권의 여러 시도에 경고를 날리고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특검 도입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간 보수언론은 ‘성완종 리스트’ 사건 발생 직후부터 이 사건을 정치권 전체의 부정부패사건으로 규정해왔다. 성완종 전 회장이 방만하게 기업을 운영했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정경유착을 통해 돌파했으며 나중에는 아예 자신이 직접 국회의원이 돼 자신의 회사를 ‘셀프지원’ 해왔으나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이것이 불가능해지자 ‘복수심’에 ‘금품 메모’를 작성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게 이들이 미는 시나리오다.

보수언론과 종편이 이런 상황을 전제한 온갖 보도를 감행하고 사건 자체를 정치권의 흙탕물 싸움으로 만들면서 절대적으로 야당에 유리했어야 할 이 국면은 오히려 여야가 공히 피해를 보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이 박근혜 정권 최대의 부정부패 스캔들이 충격적인 방식으로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4·29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후보들의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을 방증한다. 이런 판국에 앞서 언급한 참여정부의 성완종 전 회장 사면 논란은 ‘성완종 리스크’ 사건에 새정치민주연합을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가는 핵심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 진행이 심상찮아 보이는 것도 새정치민주연합에겐 불리한 부분이다. 그간 언론은 자원외교 관련 사정기획 자체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했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해왔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검찰의 수사가 성완종 전 회장의 ‘금품 메모’에 등장하는 정권 실세 8인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윗선’인 이들의 이러한 입장 때문에 검찰로서는 사건을 비정치적인 형태로 종결짓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리게 됐다. 검찰은 일단 경남기업의 핵심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수사에서 어떤 시나리오가 어떤 형식으로 제기될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을 못하는 것이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4.29 재보궐선거(관악을)에 출마하는 오신환 후보가 23일 오전 서울시 관악구 관악산휴먼시아 2단지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표가 굳이 ‘특검 도입’을 언급하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사 개입 중지를 촉구한 것은 이런 측면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단 야당이 특검을 언급하게 되면 검찰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이후에 진행될 특검에서 뒤집히는 경우 검찰 수뇌부에 대한 신뢰가 붕괴될 수밖에 없고 검찰은 ‘정권의 개’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문재인 대표의 입장 발표는 야당까지 엮으려는 검찰의 기획 수사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사건의 흐름을 다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자금 문제로 되돌려 놓으려 시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행보는 아직 느긋한 감이 있긴 하지만 시기나 메시지의 강도 등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일단은 4·29 재보궐선거 일정을 감안해서 남은 시간 동안 여당과 보수언론의 강공을 견뎌내야 한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하는 말도 있듯이 이를 잘하려면 현재의 수세적 처지를 공세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대표의 입장 표명은 이러한 전환점이 되기에는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참회록을 쓰라는 둥 상설특검과 별개의 새로운 특검을 거론하는 것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둥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보수언론과 종편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의혹을 날려버릴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하다. 그 한 방이 4월 29일 전에 나올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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