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자 <동아일보>에 ‘광고주 협박, 자유민주와 시장에 대한 테러다’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촛불시위 당시 일부 누리꾼들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광고를 내지 말라고 협박한 것에 대해 법원이 적법한 광고계약에 따른 신문사의 권리를 침해한 위법행위라고 결정했다”며 “‘아고라’ 게시판에 광고주 목록과 광고 중단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가 삭제당한 6명이 낸 ‘게시물 복구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내린 결론”이라고 썼다. 앞서 동아일보는 전날 사회면에 머릿기사로 이와 관련한 스트레이트 기사를 내보냈다. 제목은 “메이저신문 상대 광고중단 운동 위법”이라고 달았고, 본문에는 “김모씨 등은 올해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메이저 신문 3사의 기사에 불만을 품고 다음 아고라 등에 광고주 상대 협박글 등을 올렸다”고 썼다.

▲ 11월 4일자 동아일보 14면.

기사와 사설 내용대로 사실을 재구성해보면 일단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낸 누리꾼들은 조중동 광고주를 협박하는 글을 썼다. 그리고 이번 판결은 그들에 대해 법원이 ‘유죄’를 인정한 셈이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게시물 복구 가처분 신청’ 사건에 대해 법원이 신청자의 유·무죄를 판단하다니? 법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가처분 신청에 대한 판결은 신청자가 정상적인 재판 절차를 밟으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만큼 시급한 위험에 놓여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더구나, 김씨가 복구를 요구한 삭제 글은 조중동 광고주를 협박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김씨는 자기 글이 삭제된 것도 모자라, 글에 들어 있지도 않은 내용 때문에 법원과 언론에 의해 큰 죄를 지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번 판결은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부터 석연치 않은 그 무언가가 있다. 누리꾼들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삭제권고 이후 삭제된 자신의 글을 복구해달라는 가처분신청 사건을 다루는 재판장에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 관계자들이 ‘보조참가인’이라는 이름으로 참석한 것이다. 이 사건에 두 신문이 끼어드는 순간 ‘네티즌-다음-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프레임은 ‘네티즌-조중동-광고주’의 문제로 바뀌었다. 두 신문이 끼어든 결과는 판결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A에 대해서 판결해달라는 누리꾼들의 요청에 법원은 엉뚱하게 B에 대해서 판결을 내렸다.

소송을 제기한 김씨는 다음 아고라에 “<한겨레> <경향신문>을 널리 알리는 스티커를 차량에 부착하고 두 신문을 구독하자”는 글을 올렸다 삭제당했다. 해당 글에는 조중동에 광고를 싣지 않겠다고 약속한 기업의 지도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다. 김씨와 함께 가처분 신청을 낸 이아무개씨는 “조중동 광고게재를 중단하지 않은 회사의 약을 자신의 처방전에서 빼달라고 의사를 설득하자”는 글을 올렸다가 역시 삭제당했다. 두 사람은 자신의 글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삭제 시정 요구’에 의해 부당하게 삭제당했다며 다음을 상대로 게시글 복구를 요청한 것이다. 실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삭제 시정 요구한 글은 58개였으나, 이와 함께 ‘유사사례’에 대한 자체 시정을 요구하면서 당시 600건이 넘는 글들이 일시에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김씨와 이씨의 글이 바로 ‘유사사례’에 포함된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김씨를 비롯한 누리꾼 6명은 소장을 통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대상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설치법에 규정돼 있으나 조중동 광고주 압박 운동 같은 것은 심의 대상 규정에 포함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시정요청을 하더라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행정기관으로서 법에 적합하고, 실현가능하며, 명확한 것이어야 하고 의견 제출의 기회를 제공하는 행정절차가 필요하지만 ‘유사사례’라는 시정요청은 명확성에도 부합되지 않고 의견 제출 기회도 제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누리꾼들은 이런 법리를 들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부당한 시정조치를 통해 다음에서 ‘삭제당한 글’을 복구해달라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방통통신심의위원회의 삭제권고는 “불법의 의심이 있는 정보에 대한 자발적인 시정을 촉구하는 권고적 성격”이라며 유사사례 역시 별도심의를 요청할 필요 없이 기존 심의사례를 참조하여 스스로 조치할 것을 당부한 것에 불과하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의 게시물로 인한 피신청인 보조참가자(동아일보, 조선일보)들의 권리 침해 여부’와 ‘게시 행위의 위법성 인정 여부’가 이 사건 삭제조치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덧붙였다. 어처구니없게도 재판부는 글 삭제의 부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대신 광고중단 압박 운동에 대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렇게 네티즌들의 게시글은 위법이 됐고,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다.

이번 사건은 내용상 조중동 광고주 압박 운동과 연관돼 있기는 하나, 별개의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언론 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이라는 단체의 운동 내용까지 끌어들여가며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것은 최근 일련의 판결을 통해 드러나는 사법부의 행보가 법리보다는 ‘현실의 힘’에 이끌리고 있다는 세간의 믿음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 특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보조참고인으로 등장한 이번 소송은 네티즌-다음-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소송 구도를 네티즌-조중동-광고주의 문제로 전환시키며 그 누구도 아닌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승리를 안겼고, 이들 신문은 맥락을 거두절미한 채 왜곡보도까지 하면서 전리품을 챙겼다.

늘 그랬듯, 이번에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끝내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남는다. 한겨레·경향신문을 구독하자는 제안은 어떠한 의미에서 위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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