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전향서’라는 게 있었다. 기원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사상검사들이 독립운동가를 잡으면 전향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식민통치의 잔재는 해방 이후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더 악질화됐다. 이른바 ‘사상범’을 대상으로 국가가 헌법 권리인 사상의 자유를 포기하도록 집요하게 강요했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준법서약서’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논란 끝에 2003년 폐지됐다.

▲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미디어스
둘 다 수감자에게는 ‘선택’의 문제였다. 그러나 일제 때와 해방 이후 전향서는 이름만 같고 의미는 달랐다. 일제 때는 전향서가 석방의 조건이었다. 반면 이승만·박정희 정권 때는 전향서를 쓰지 않으면 석방되지 못 하는 게 아니라 행형법상의 모든 권리가 박탈됐다. 일제 때는 감옥에서 형기를 마칠 것인가, 황국신민이 되어 감옥밖으로 나올 것인가 선택하도록 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는 ‘자유대한’의 감옥 안에서 죽을 때까지 사느냐 아니면 그냥 죽느냐의, 매우 ‘햄릿스러운’ 문제였다.

전향서를 쓰지 않으면 형기를 마쳐도 ‘사회안전법’으로 다시 수감됐으니 살아도 감옥 안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사상전향은 폭력적으로 강요됐으며, 그 과정에서 생명에 위협이 가해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실제 죽임을 당하는 일도 잇따랐다. 남파공작원으로 체포된 최석기씨는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1974년 교도당국의 지시를 받은 일반죄수들로부터 폭행당해 숨졌다. 1969년 위동맥 출혈이었던 윤석만씨와 80년 폐결핵에 걸린 유재인씨, 탈장이 일어난 신창길씨 등은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수술과 치료를 거절당해 옥사했다.

이 과정에서 맹활약한 이들이 있으니, 그들의 이름은 듣기에도 겁나는 ‘떡봉이’다. 전향을 거부하는 사상범을 때려죽인 자들이다. 이들은 깡패 출신 강력범들 가운데 선발됐으며, 사상범을 많이 전향시키면 석방해준다는 약속을 받고 사상범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이들은 국가의 비호 속에 감옥 안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특권을 누렸으며, 교도관들처럼 사방 열쇠까지 차고 다니며 아무때나 사상범을 끌어내 ‘피떡’을 만들었다. 가히, 국가와 범죄자가 혼연일체였던 시대의 얘기다.

이제는 역사책의 한 귀퉁이(요즘 분위기로는 역사책에 실렸다가는 곧바로 삭제될지도 모르겠지만)에나 나올 법한 비극적인 얘기가 문득 떠오른 건 최근 YTN 보도국에서 벌어진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YTN 강철원 보도국장 직무대행이 구본홍 저지 투쟁 중인 기자들을 대상으로 성향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 직전에는 보도국 부·팀장들에게 “노조 입장에 동조하는 부·팀장은 인사에 반영하겠다”고 경고까지 했다고 하니, 기자 성향 조사 목적이 “기자들에게 협박을 가하고 전향을 요구하는 자료로 삼기 위한 것”이라는 노조 관계자의 분석은 합리적 의심에 들어맞아 보인다.

기자인 그가 후배 기자들의 성향을 조사했다는 얘길 듣고, 죄수가 죄수를 전향시키려 했던 어두운 근현대사를 떠올린 것이 억지스러운가. 그가 ‘떡봉이’ 배역을 맡았는지, 아니면 그의 지시를 받고 후배들을 ‘신문’한 부·팀장들이 그 악역을 떠안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때마침 5일치 <기자협회보>에는 지난 3일, 유난히 호텔을 애호하는 구본홍 사장과 한 호텔 객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뒷모습 사진이 실렸다. 그의 뒷모습에는 표정이 없다. 낙하산 타고 내려온 구 사장이 아직 착지를 못했다는 사실과, 착지 시도 과정에서 이미 심한 내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