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의 시즌 초반 예측은 적중한 적이 별로 없어 사실 신통치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그런 전문가들의 시즌 예측에서 기아 타이거즈는 올 시즌 하위권에 포함됐다. 해태시절부터 쌓아온 야구명가의 자존심이 구겨질 상황이기는 하지만, 딱히 반박할 근거가 없다는 점이 올 시즌을 맞은 기아의 속앓이라 할 것이다.

그런 기아가 개막전부터 놀라운 행보를 거듭하고 있어 야구팬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광주에서 열린 개막 2연전에서 작년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던 엘지를 상대로 연승을 거두더니 그 기세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4월 1일 인천 행복드림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도 기아는 3 대 0 완승을 거두었다. 그것도 SK의 에이스 김광현을 상대로 거둔 승리라 더욱 값지다고 할 수 있다.

▲ 1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승리한 KIA 선수들이 서로 격려하며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3회까지 기아 타선은 김광현의 완벽투에 막혀서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완벽한 투구를 이어가던 김광현을 일거에 무너뜨리며 승기를 기아로 끌어온 선수가 있었다. 바로 기아 2루수 최용규다. 최용구는 김광현의 공을 빠르게 받아쳐 2루타를 뽑아냈고, 이어 포수 정상호가 볼을 험블한 잠시의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3루를 훔쳐냈다. 가뜩이나 낯선 선수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심기가 불편했던 김광현을 더욱 곤란하게 만든 멋진 주루플레이였다.

그리고 개막전 이후 기아의 승리를 강력하게 견인하고 있는 브렛 필의 좌전 짧은 안타에 최용규는 선취득점에 성공했고, 이는 그대로 승리득점이 됐다. 이쯤 되니 야구팬들은 이 선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었다. 최용규는 지난 광주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데뷔 8년 만에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 자체로도 감격할 일이었지만 이 경기에서 최용규는 3루타를 기록해 팬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 1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4회초 KIA 공격 1사 상황에서 최용규가 좌익수 왼쪽 2루타를 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시즌을 끝으로 동시에 군입대를 선택한 기아의 키스톤콤비 안치홍, 김선빈의 빈자리를 잊게 만든 이 선수 최용규는 비록 이름은 낯설지만 2008년에 입단한 중고참이다. 대학시절 타격왕에 오를 정도로 기대를 모았지만 막상 프로에 와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심지어 병역조차 야구 특기를 살린 상무나 경찰청이 아니라 일반 현역입대를 해야만 했었다.

그런 최용규에게 안치홍의 군입대는 생각지도 못한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시즌 전까지만 해도 기아의 센터라인이 큰 걱정거리였다. 이대형까지 KT로 이적한 상황에서 2루수와 중견수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 마땅한 대안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아직 기아의 센터라인이 확정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근 개막 3경기에서 보인 최용규의 안정적인 수비와 공격에서의 활약은 안치홍을 대신할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개막전 한화 대 넥센의 경기. 연장 12회 말 1사 때 넥센 서건창이 끝내기 홈런을 치고 있다. ⓒ 연합뉴스
144 경기 중 고작 3경기만을 치렀을 뿐이지만 이런 최용규에게 거는 기대는 또 다른 기적이다. 지난 시즌 프로야구는 서건창이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서건창 역시 최용구처럼 조건을 채우지 못해 일반 현역입대를 했다가 주전 김민성의 부상으로 인한 백업선수로 출장했다가 결국 지난 시즌 최다안타, 타격왕, 득점왕 등을 휩쓸며 MVP의 주인공이 됐다. 지금 당장 최용규에게 그것이 보인다고 한다면 터무니없는 것이겠지만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이 부럽지 않은 프로야구의 나라다. 그런 만큼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하고, 지난 시즌의 서건창이 딱 프로야구에 필요한 기적의 사나이였다. 기나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는 우리들에게 서건창은 하면 될 수 있다는 꿈에 젖을 수 있게 했다. 올 시즌도 많은 신인들이 스타의 꿈을 품고 리그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지만 그들을 포함해서 새로운 얼굴들의 활약이 펼쳐질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이 서른에 기회를 잡은 최용규에게서 또 다른 미생 신화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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