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폈다. 눈이 시리다. 1면에 입법예고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의 폐기와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로 항의방문을 가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사진 때문이다. 경찰에 막혀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로 가지 못한 채 건너편 푸르메 재단 앞에서 담요를 덮어 쓰고 쪼그려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엄마들, 깊이를 알 수 없는 허망한 표정으로 허공을 쳐다보던 그 눈빛이 떠올랐다.

다음 장을 넘겼다.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의 요구는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얼마나 보도됐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건 4월 29일 보선과 관련한 야당들의 주도권 경쟁 기사였다. 4월에는 세월호 참사 1주기도 있지만 선거도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고는 어느새 어깨가 내려앉는다. 작년 5월이 생각난다.

▲ 세월호 유가족들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청와대 행진'이 막힌 채 광화문 광장에 주저앉아 있다. 앞서 이들은 30일 오후 1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안 폐기 및 세월호 인양을 촉구했다. (사진=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작년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사과하고 세월호 특별법과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만들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약속했다. 6.4 지방선거가 있었기 때문에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참사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했다. 참사 발생 50일 만에 치르는 선거라 새누리당은 국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며 도와달라고 읍소하며 세월호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정부 여당이 내놓은 특별법안은 문제투성이었다. 그렇다고 새정치민주연합이라고 다른 것은 없었다. 17개 광역단체장을 기준으로 새누리당 8곳(부산·대구·인천·울산·경기·경북·경남·제주), 새정치민주연합 9곳(서울·광주·대전·세종·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으로 사실상 야당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7.30재보선도 15곳 중 4곳만이 의석을 차지할 정도로 연이어 참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은 마음이 급했는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비수를 꽂았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새누리당과 함께 야합에 가까운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려고 했었다.

신문을 덮었다. 정치의 계절이라는 선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정치가 삼켜버린 세월호 참사 피해가족들의 눈물, 그들의 삶이 내 목울대에 꺽~하고 걸린다. 유가족들의 울음과 닮은 꺼억 꺼억….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멈춰진 그들의 삶, 그들의 꿈을 잊게 될까 두렵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는 달라져야한다는 이웃으로서의 약속은 선거라는 좁은 의미의 정치로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확인시켜 준 우리의 정치적 책임은 부정의한 사회구조를 바꾸는 실천이다. 아이리스 영의 말처럼 공유된 책임은 그 책임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 함께 집단행동을 통해 사회와 구조적 과정을 변화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면제될 수 있다.

다른 정치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야 세상을 알게 됐다는 유가족들. 내 가족과 내 일만 생각하고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평탄하게 살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냐고 자문하는 유가족들이 이제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섰다. 간담회도 하고 북 콘서트도 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지금은 정부 덕에 다시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단원고 희생자 임세희 학생의 아빠 임종호 씨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21년 전 서해 페리호 침몰 현장에 있었어요. 21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전혀 없어요. 그때 저는 잠재적 유가족이었죠. 그때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21년이 지나고 유가족이 됐습니다. 나는 다른 분들이 더 이상 유가족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다닙니다. 세월호 참사는 유가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_임종호 씨

폐허가 된 삶에서도 피어나는 정치란 이런 것이 아닐까. 정부가 ‘순수 유족’ 운운하며 참사가 정치와 무관한 듯 덮으려 했지만 이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는가! 희생자들이 남긴 숙제를 풀고 있다는 유가족들로부터 다른 정치를 생각해본다. <비통한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파커 팔머가 말했듯이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비통함만큼 강력한 것은 없”으니까.

▲ 세월호 참사 한 달 후인 지난해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진상규명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명운을 걸겠다고 약속했다(사진=YTN뉴스 캡처)
팔머는 혹독한 곳에 서 있을 때 그곳에 오래 머문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고, 현실과 가능성 사이의 긴장을 참지 못해 우리를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냉소주의나 이상주의(환상의 세계)에 기울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희망을 가지고 견디며 행동하는 일이 가장 큰 도전이라고 했다. 유가족이라고 안 그랬을까. 얼마 전 제주에서 열린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 콘서트에서 지치고 힘들어서 그냥 회피하고 싶을 때는 없었는지, 시민이 물었다. 단원고 희생자 이창현 학생의 아버지 이남석 씨가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일어나고 3개월 정도 됐을 때 신문사가 개최하는 좌담회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싫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기사에는 실리지 않았지만요. 그랬더니 옆에 있던 김익환 교수가 그건 회피다. 왜 불의를 보고 싸우지 않고 당신만 떠나려고 하느냐, 그러면 여기 있는 사람은 불의에 짓밟히고 살라는 말이야, 그러시더라구요. 그때 제가 말을 잘못했구나, 나 혼자 편하려고 도망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안산이 싫어가지고 이사 가려고도 마음 많이 먹었습니다. 너무너무 괴롭고 힘들어서요. 지금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단원고에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이곳은 내 아이가 지냈던 곳이구요, 아직도 (아이는) 수학여행 중이구요. 불의에 회피하는 것이 아니고 끝까지 싸워서 이기고 싶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는 저희 가족들이 잘 싸워왔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가족들만의 힘으로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니고 여기에 같이 동참해준 시민들, 불의를 보고 함께 해준 국민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싸워오고 있습니다. 특별법이 미비하게 통과됐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밝혀진다면 그 책임자를 법대로 처벌하고 한 발짝 더 나아간 안전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_ 이남석 씨

그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안고 행동한다. 그리고 옆에는 그 마음에 공감하며 부정의에 맞서 싸우는 시민들이 있다. 그게 힘이라는 것을 세월호 가족들도 알고 우리도 안다. 비슷한 영혼에 둘러싸여 있음을 알게 될 때 용기와 상상력이 배가 되었던 경험이 한번쯤 있지 않은가. 다른 정치는 고통을 우회하지 않고 직면할 때, 고통이 다른 이들과 연결되었음을 깨닫고 정치의 주체로 나설 때 시작된다. “공유되는 비통함은 상호이해의 가교가 되어 서로를 향해 걸어가도록 해줄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것은 세월호 가족들의 고통과 신음이고 그들이 꿈꾸는 다른 세상이다. 이제 다른 정치를 위해 광화문으로, 청와대로, 팽목항으로 가자. 그곳을 비통한 자들의 정치로 물들이자.

그리고 우리의 정치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인 4월 6일을 지나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 아니 4월 29일 보선 이후에도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 강정해군기지 반대 주민, 밀양 송전탑 반대주민,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 등 다른 고통들과 만나 우리가 연루되어있음을 재확인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하더라고 더 과감하게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정치는 시간의 한계도, 공간의 한계도 뛰어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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