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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랑스러워하던 동아일보였는데…”[인터뷰] 동아일보 앞 1인시위, 양한수 동아투위 위원
송선영 기자 | 승인 2008.11.03 14:47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 양한수(64) 위원은 1975년 해직 당시 <동아일보> 출판국에서 일하던 31살의 젊은 기자였다.

입사 5년차의 젊은 기자는 '역사적인 일을 한다'는 뜻을 품고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동참했고, 결국 회사로부터 해임됐다. 그리고 33년이 지난 2008년 10월 31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정부·동아일보는 75 강제해직을 사죄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 10월 31일 오후 1시 양한수 동아투위 위원이 동아일보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송선영  
지난달 29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74년 유신정권 당시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건'에 대해 중앙정보부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하루 뒤인 30일, 동아일보는 8면에 <광고탄압은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인권침해>라는 제목의 머릿기사로 당시 자신들의 피해에만 초점을 맞추고, <진실위 '광고 탄압-언론인 해임 연관' 결론 사실과 달라>라는 기사를 통해 "언론인 해임 등에 대해 진실위가 내린 결론은 충분한 조사를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것"이라며 "언론인 해임 관련 대목은 중요한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양한수 위원은 "동아일보가 권력이 언론과 야합해 굴복한 굴욕스러운 사건이라는 건 초등학생도 다 아는 사실"이라며 "'당시 정권 때문에 굴욕적으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인정하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동아일보 기자들은 예전 동아일보 기자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동아일보에는 기자들은 없고 사원들만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며 부끄럽기도하고, 서운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양한수 동아투위 위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위원회가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이 중앙정보부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라고 발표했다. 소감이 어떤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을 정부기관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인정한 거니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동아일보의 해명보도가 한편으로 괘씸하고, 계속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
정부 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는 일부러 동아투위의 손을 들어준 게 아니다. 이는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한 것으로, 여러 해 동안 조사됐다. 당시 중앙정보부 담당관도 이번 조사에서 '중앙정보부와 동아투위 사건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해직되고 나서 어떻게 지냈나?

31살에 동아일보에서 해직되고 나서 정권이 만든 블랙리스트에 올라 그 뒤 기자일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정권 바뀌면서부터 기자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그래서 동아투위 회원 상당수가 한겨레 창간을 주도했다. 다른 언론사로 돌아간 사람도 많았는데 나는 한 건설회사에 15년 있다가 문화일보 창간될 때 기자로 가 문화일보에서 7년 동안 있었다.

자유언론실천선언 당시 상황을 말해달라.

당시는 언론 통제가 심했던 암흑기였다. 74년 당시 동아일보에는 기자들의 단결을 중시하기 위해 노조가 결성됐다. 노조를 신고한 날, 결국 회사는 노조 결성을 주도한 13명을 해임했다. 그러나 전 언론사들이 다 들고 일어나 한 달 만에 복직됐다. 그러니까 나는 동아일보에서 두 번 해임된 셈이다. 무서웠던 시절이었지만 평기자들이 신문을 주도하는 분위기였다.
지금 일민미술관 3층이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이었다. 자유언론실천선언 당시 '우리가 역사적인 일을 한다'는 뿌듯한 마음이 있었다. 국민들, 독자들 반응이 대단했다. 각계에서 성금이 많이 들어와 해직된 사람들 몇 달 월급을 줄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버스 안내원까지도 돈을 모아서 성금을 주러 찾아오곤 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언론인들도 우리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나섰다. 어떻게 보면 겁나는 투쟁이기도 했지만 주변 호응이 뜨거웠기 때문에 자부심을 느꼈다.

당시 동아일보는 어떤 언론이었나?

박정희 정권 당시 정부가 가장 무서워했던 게 동아일보였다. 다른 언론은 전화 한 통이면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보도가) 가능했는데 동아일보는 외부의 압력이 통하지 않았다. 신문사 사주나 간부들이 신문 제작을 주도한 게 아니라 기자들이 주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동아일보는 어떤가?

동아일보는 60, 70년대 당시 국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영향력 있는 신문이었는데 지금은 삼류신문이 되어 버렸다. 지난 75년 사건 이후 훌륭한 기자들이 너무 많이 해직돼 신문의 질이 떨어진 것이다. 지금 동아일보를 보면 신문사에 근무를 하지 않는 사람도 '이렇게 형편없는 신문을 만드나' 하고 느낄 정도이다. 신문은 정권 앞잡이가 되어서는 안 되고 항상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의 앞잡이로 전락한 동아일보를 누가 보겠나.
동아일보가 그때 조금만 더 견뎠더라면 이렇게까지 삼류신문은 안됐다. 동아일보는 권력의 압력에 굴복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망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동아일보였는데 이런 삼류신문이 되어서 사실 창피하다. 그렇지만 동아일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있다. 사주가 그런 거지 동아일보란 제호의 신문은 별개니까.

   
  ▲ 동아일보 10월 30일치 8면  
 
그런데 정작 동아일보는 '언론인 해임 사실'을 정권 탄압이 아닌 '경영상 이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문사 사주가 권력과 타협해 광고를 푸는 조건으로, 문제를 일으킨 기자들을 해직시켰다는 것은 그간 과정을 살펴보면 초등학생이라도 다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재정 문제였다"면서 자기들만 부정하고 있다.광고 탄압을 '정권에 맞서 언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행위의 결과'로 강조하면서도, 언론인 해임을 묵살하고 있는 동아일보의 행위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권력이 언론과 야합해 굴복한 굴욕스러운 사건에 대해 인정하고 "당시 정권 때문에 굴욕적으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자유 언론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라고 하면 되는 거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 동아일보 기자들을 보면 예전 동아일보 기자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언론은 항상 정치 권력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데, 기자 정신이 많이 약화된 것 같다. 심지어 동아일보에는 기자들은 없고 사원들만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그렇다.

당시 동아투위 회원 중 가장 막내 기수로 해임됐던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이사회를 통해 KBS 사장에서 해임됐다. 지켜보면서 어떠했나?

정연주 전 KBS 사장은 동아투위에서 제일 막내였다. 정 전 사장은 대학교 2년 후배인 동시에 신문사 입사도 2년 후배다. 정 전 사장이 해임되었을 때 동아투위 회원들이 KBS 앞에 가서 시위도 했었다. 세월이 역주행하고 있는 것 같고 자꾸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정연주가 KBS 사장할 당시 KBS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병순 사장 취임 후 불과 한 달 사이에 뉴스가 상당히 달라졌다. 윗선에서 누군가가 지시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아서 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참 걱정스럽다. 젊은 언론인들이 용기가 부족한 것 같아 실망스럽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정책과 이명박 정권의 언론정책을 비교하면 어떤가?

오히려 지금이 박정희 정권의 언론 정책만도 못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동아일보의 경우 '할 말은 하는 신문'으로 용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권력 앞잡이가 되어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비판'인데 이걸 제대로 못하고 있다.
YTN사태도 결국 우리 같은 경우라고 본다. 정부 권력과 연관된 사람이 사장으로 와 결국 6명을 해직시킨 거 아닌가. 아무리 눈에 거슬리더라도 언론인을 해직시키려면 합법적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낙하산 사장을 반대한다고 해직하는 것은 부당하다. '자유 언론'이라는 게 누가 거저 갖다 주는 게 아니라 언론인 자신이 지키는 것이다.
후배 언론인들에게 우리를 알아달라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언론이 제 기능을 해야 하는데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영향력 있는 매체에 속한 기자일수록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데 그런 게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 74년 독자들의 격려광고가 실린 동아일보 지면(왼쪽)과 강제해직 뒤 동아일보사를 둘러싸고 항의하고 있는 기자들. ⓒEBS <지식채널e> '한겨레의 탄생' 캡쳐 화면.  
 
당시 31살의 젊은 기자는 어느새 나이가 들어 머리칼이 희끗거리고 주름살도 짙어졌다. 정부와 동아일보가 동아투위 사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사이 12명의 위원들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양한수 위원은 앞뒤로 연결된 대형 손팻말이 버거운지, 몇 번이고 어깨 근처를 만지작거렸다.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이어진 '1인 시위'를 마치자 "꽤 뻐근하네"라는 한 마디와 함께 다리를 훌훌 털었다.

인터뷰를 마치자, 주변에 있던 동아투위 위원들이 한참 후배 뻘인 기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이들에게 고마워야 할 대상은 정작 가만히 있는 지금, 쌀쌀한 가을 바람을 맞아가며 쓸쓸하게 동아일보 사옥 앞을 지키는 동아투위 위원들의 모습이 황량하다.

송선영 기자  sincerely@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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