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에 발생해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월호 사건은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파장을 미쳤다. 사건을 수습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허술한 모습을 반복적으로 드러냈던 정부에 대한 비판이 가장 컸지만, 정부 못지 않게 비판 받은 대상은 ‘언론’이었다. 기사 조회수를 올리려 일부러 낚시성 기사를 게재하는 어뷰징 행위부터 충분한 확인 조사 없이 특종에 급급해 마구 남발되던 오보성 속보들, 그리고 사건이 어느 정도 수습된 이후에도 진상을 조사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총체적으로 질타를 받았다.

그 전부터 기자를 비하하던 말로 쓰이곤 했던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 ‘기레기’라는 표현은 세월호 참사 이후 기자를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이후 언론들은 각각 해명을 내면서 다시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다짐은 과연 잘 지켜지고 있었을까. 세월호 사건 1주기를 맞이하기까지 약 한 달이 남은 시점에서 터진 두 개의 보도는 그러한 약속이 공약(空約)에 그치고 있음을 드러내기에 너무나도 충분하다.

‘방송사고’로 처음 전해진 소식, 아무도 그 이상을 보지 않다

이주민 출신으로는 최초로 국회의원이 된 새누리당의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보도는 심각했다.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언론와 여론의 반응은 예전부터 좋지 않았다. 그녀가 처음 영화 <완득이>를 통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을 때는 그럭저럭 좋은 평을 들었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비례후보로 나온다는 말이 들려오자 여론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베’와 같은 보수적 지향의 커뮤니티에서 좋은 평을 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진보/보수 커뮤니티의 성향을 가리지 않고 모두 이자스민에 대해서 공통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바로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었다. 그녀가 본래 이주민 출신인 만큼 이주민의 권리를 위한 법안을 추진할 때도 사실 무근의 루머들이 마구 퍼져 그녀를 공격했다. 한국에서 사고를 치지 말고 하루 빨리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잇달았다.

▲ MBN의 방송사고 이후 언론들은 그야말로 이자스민의 과거 행적과 엮어 수많은 기사들을 잔뜩 양산하기 바빴다. 정작 이러한 기사들 중에서 사건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살펴보는 기사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지난 2일, MBN의 방송사고는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여론을 더욱 폭발시키고 말았다. 한동안 ‘새누리당 이 모 의원의 아들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담배를 절도했다’로 퍼졌던 사건은 MBN이 의견을 직접 듣겠다는 이유로 이자스민 의원의 실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처음으로 해당 의원의 신상명세가 언급되고 말았다. 이후 MBN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했지만 언론들은 그렇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 당시에 욕을 먹었던 각 언론사 산하의 ‘온라인뉴스팀’은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MBN이 정정했던 이야기는 아무런 확인 절차나 분석 없이 곧장 인터넷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SNS는 물론 한국의 거의 모든 커뮤니티가 이자스민을 비난했다. 그녀가 필리핀 출신이라는 점부터, 새누리당 의원이라는 점, 그리고 과거 강제로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들에 대한 기림비를 세우는 결의안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던 일, 그리고 근거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학력에 대한 시비까지 온갖 루머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한동안 부정적인 흐름은 끊기기 어려워보였다. 정작 그녀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할 때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렇게 이자스민은 자식교육을 잘못하는 어머니에, 위안부 할머니를 모욕하는 매국노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타오르던 언론과 여론의 모습과는 달리 사건 자체는 맥없이 끝나게 되었다. 애초에 이자스민 의원의 아들이 근무하던 편의점은 재고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던 편의점이었으며, CCTV와 같이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분명 편의점에서 담배가 사라진 것은 맞아도 그녀의 아들이 담배를 훔쳤다는 결정적인 단서는 애초부터 없었다고 세븐일레븐 측이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보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이자스민 의원의 아들이 담배를 훔친 것이 확정이라도 된 것처럼 온라인뉴스팀까지 돌리면서 사건을 확산시킨 언론은 정작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는 서로 약속이라도 하듯 침묵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사건이 불합리하게 커지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현상을 분석했던 언론은 거의 없었다. <미디어오늘>의 조윤호 기자가 작성한 3월 5일자 기사 <이자스민은 ‘너네 나라로 돌아갈 필리핀 여자’가 아니다> 정도만 사건과 여론의 맥락을 차분하게 짚었을 뿐이다.

‘테러’ ‘종북’ 이라는 수식어들 사이에서 갈피를 잃은 시선들

그나마 이자스민 의원에 얽힌 사건이 해프닝으로 마무리된 것에 비해, 최근 벌어진 운동단체 우리마당의 대표 김기종이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피습한 사건에 대한 보도는 사건 자체의 충격성과 겹쳐 그야말로 폭주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분명 김기종이 벌인 사건은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의 목적이 어떻든 간에 ‘테러’라는 수단은 그리 간단하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는 한국이 일제의 강점에 놓여있을 시절 일본 제국의 정부 요인을 암살했던 등의 활동을 예시로 들며 테러가 운동에 사용될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국가 자체가 식민지로 전락한 최악의 극단적인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특히 김기종, 그리고 그가 이끌던 단체 우리마당이 ‘평화 통일’을 기조로 내걸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선택한 테러라는 방법은 오히려 그의 신념과 충돌하는 씁쓸한 아이러니만 낳았을 따름이다.

하지만 언론은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해프닝 때와 마찬가지로 움직이고 있다. 그가 어떻게 리퍼트 대사가 강연을 하던 장소에 들어가 대사를 공격했는가에 대해서 매우 상세하게 소개한 기사는 그나마 양반에 속한다. 마치 그가 연예인이라도 되는 듯 과거에 저질렀던 사건들 하나하나가 맥락에서 서로 떨어져 그저 김기종이 과거에도 이런 대형 사건, 사고를 저질렀던 ‘불순분자’였다는 식의 보도가 지속되고 있다.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린 사건이자 한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이었던 1988년의 ‘우리마당 습격사건’ 조차도 단순히 그가 과거에 이런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에 머무를 뿐 왜 그가 사건을 저지르고, 정말로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는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대다수의 언론들은 정부 여당과 손을 발 맞춰 그가 평화 통일 운동을 했던 것과 여러 차례 방북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 그가 종북인지 아닌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했던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처음으로 언론에 등장했던 사건인 1998년의 ‘우리마당 습격사건’은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모순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저 김기종이 과거에 수많은 대형 사건에 얽혔다는 것을 제시하는 하나의 예시로 소비되고 있다.

김기종이 저지른 사건은 분명 크고 중대하지만, 그와 별개로 왜 그가 사건을 저지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짚어나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우리마당 습격사건’은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표면적인 민주화를 얻어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가 자유롭지 않음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 올림픽의 남북 공동 개최를 주장하던 우리마당의 사무실에 갑자기 괴한이 침입했고, 끔찍한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은 결국 끝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한 북파 공작원이 우리마당 사건을 자신들이 벌인 사건이라고 주장했지만, 여전히 진상은 미궁 속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는 이후 사건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분신을 하거나 더욱 과격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식으로 운동을 지속했다. 그의 활동 궤적이 결국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것으로 끝나는 씁쓸한 모습은 어떤 의미에선 한국 사회와 한국의 사회운동이 보이는 단면이라는 점에서, 좀 더 신중하고 엄밀한 보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자극적인 보도들과 ‘종북 논란’, 그리고 더욱 권위주의적 태세를 강화하자는 주문이었다. 그나마 법인이 왜 사건을 저질렀는지를 분석하는 심리학 기사 정도만 약간 유의미했을 따름이다.

언론들이 그대로 있는 사이에 맥락과 가치는 퇴색된다

대체 왜 이러한 보도들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인가. 물론 문제의 원인은 언론에만 있지 않다. 한국 사회의 인권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그리고 미디어를 소비하고 사유하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수준이 분명 예전에 비하면 나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또한 이미 자극적인 보도에 익숙해지고, 포털을 위주로 뉴스를 접하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뉴스 소비 방식이 언론을 더욱 선정적으로 만들도록 부추기는 점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결국 전체적인 틀을 고민하고 자신들의 상을 제시하는 것은 결국 언론의 몫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SNS와 같은 1인 미디어의 영향력이 뉴스와 같은 전통적인 매체의 영향력을 위협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안에서도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다시 언론이기 때문이다. 분명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여론 수준이 갈 길이 멀다 할지라도 그에 전적으로 편승해서 나가는 것은 다시 그러한 상황을 증폭시킬 뿐이다. 관성적인 보도를 양산하던 언론들은 결국 세월호 사건에 대한 보도가 큰 파장을 낳으면서 전례 없는 비난에 시달렸고,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그들은 결코 그렇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언론들의 대다수는 여전히 자신들이 저질렀던 오류를 수정하는 대신 예전부터 가져왔던 관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물론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해명은 존재할 것이다. 신문을 지배하는 이들과 데스크는 어떻게든 조회수가 높게 나와 광고 수익에 도움이 되는 기사를 원하고, 딱히 구독 수익이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높은 조회수에 대한 유혹은 계속 커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결국 무엇을 낳고 있는가. 정부에서 추진하는 다문화 관련 정책을 받아쓰기에 바쁘던 언론은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기사를 부랴부랴 내면서 이주민에 대한 인식을 낮추고 그들이 가지는 정당한 권리마저 침해하게 만들었다. 주한 미국대사 피습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는 단순히 이러한 사건들을 종북 세력을 선제 차단하는 것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끌고 있다. 진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보도가 양산되고 다시 사회에 퍼지는 사이에 인권, 평화와 같은 가치는 점점 빛을 잃고 있다. 지금 한국의 언론은 독자와 시청자로 하여금 무엇을 보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를 진중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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