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주요 동맹국인 미국의 대사가 피습당한 사건의 여파가 일파만파다.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강연장에서 얼굴과 팔 등을 흉기에 찔린 다음날인 6일, 대다수의 일간지들은 최대한의 지면을 할애해 이 사건을 보도했다. 보수언론들은 한미동맹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이 사건을 ‘종북세력에 의한 테러’로 규정해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 한겨레 6일자 1면 기사.

<한겨레>는 이날 1면톱에 이 사건의 내용을 전하는 기사를 싣고 <미국대사 피습…흉기가 된 ‘극단적 민족주의’>라는 제목을 붙였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정확힌 범행 동기는 경찰이 수사중이지만, 그가 이날 피습 현장에 들고 간 유인물, 검거 뒤 발언, 과거 행적 등을 볼 때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돌출적 범행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2, 3, 4, 5면에 걸쳐 사건 당시 정황과 범인의 평소 행적, 외신 분위기 등을 다각적으로 다루고 사설에서는 한미관계의 훼손에 대한 우려를 표현했다. <한겨레>의 이와 같은 보도는 이날 나온 다른 신문들의 보도와 비교하면 가장 정상적인 수준의 것으로 볼 수 있다.

▲ 한국일보 6일자 4면 기사.

<한국일보>는 1면톱 기사 제목을 <한미 혈맹, 핏빛 테러 당했다>로 달았다. 사실관계에 충실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한겨레>에 비하면 다소 정치적 맥락을 강화한 듯한 모양새다. <한국일보>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과거사 발언을 계기로 한미관계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테러까지 발생함에 따라 한미관계의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우려가 상당하다”면서 “외교전문가들은 미국에서 반한감정이 증폭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일보>는 2, 3, 4, 5면과 12면 기사에서 이 사건의 전반적 문제를 다루면서 특히 5면에서는 경찰이 돌발상황에 무방비한 상태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경찰의 “리퍼트 대사는 경찰의 주요 경호 대상이 아니었다”는 발언을 두고 “경호 책임 자체가 미국 대사관에 있다는 것으로 이번 사건이 경찰의 경호 부실과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라며 “하지만 최근 여론의 동향에 경찰이 조금만 촉각을 곤두세웠다면 피습 개연성을 염두에 둔 사전 대처가 가능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는데, 이러한 지적 역시 건강한 언론이 제기할 수 있는 의문으로서 적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청와대와 정부는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역량을 총동원해 파생되는 문제점에 대비하고 수습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국민들도 테러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폭력적인 방식의 의견표출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확고히 가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 날 보수언론의 태도는 <한국일보>의 우려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것이어서 우려가 크다.

▲ 중앙일보 6일자 1면 기사.

이날 <중앙일보>는 1면톱에 <한·미 동맹이 테러당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의 소제목에서 “범인은 방북 8회 김기종”이라고 적시했는데, 맥락을 연결지어보면 결국 ‘종북인사’에 의해 ‘한미동맹’이 ‘테러’를 당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서술이다. <중앙일보>는 3, 4, 5, 6, 7면에 이 사건 관련 기사들을 배치했고 이와 관련된 사설은 2개를 썼다. <중앙일보>는 이 중 <미 대사 테러는 대한민국에 대한 테러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미국의 대사가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반인륜적 범죄의 표적이 된 데 대해 국민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미연에 테러를 방지하지 못한 것이나 사고 이후의 미숙한 대응에도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감출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 사설에서 <중앙일보>는 “검찰은 김씨가 테러를 저지르는 과정에 종북 좌파의 개입이 있었는지 샅샅이 수사해야 할 것”이라면서 “한·미관계를 뒤흔들려는 불순한 의도를 사전에 꺾기 위해서도 철저한 진상조사와 만반의 대비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6일자 1면.

마치 ‘종북세력’이 계획적으로 한미관계를 파탄내기 위해 벌인 일일 수 있다는식의 시각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두 신문은 각각 <한미동맹 찌른 종북테러>, <종북, 한미동맹을 테러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톱에 배치하고 있다. 두 신문의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조선일보>는 2면에서 범인의 이력을 자세히 전하면서 “김씨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민족화합운동연합’이라는 단체 소속으로 8차례 방북했다”, “방북 이후부터 김씨의 활동은 극단으로 흘렀다”는 등의 설명을 내놨다. 또, <조선일보>는 범인이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시도하거나 김정일 분향소 설치를 시도했다고도 강조했다. <동아일보> 역시 2, 3, 4, 5, 12, 18, 20면에 걸쳐 이 사건 관련 배치하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북한이 공격을 지지하는 논평을 냈다는 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번 사태를 극단적 이념대립에 의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면서 <동아일보>는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시민운동가의 과도한 이념성이 곪아 터진 결과라고 분석했다”면서 “김 씨는 시민사회 영역이 우리 사회의 극단적 이념 대립을 걸러내지 못하면서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6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두 개의 사설을 배치했는데 하나에서는 한미동맹에 대한 문제를 다뤘고 다른 하나에서는 ‘종북’문제를 다뤘다. <동아일보>는 <뛰는 종북, 못 따라가는 법>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종북 관련 활동이 주춤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종북주의 세력과 종북주의 행태는 계속되고 있다”면서 “종북 세력은 ‘자유’라는 보호막 뒤에 숨거나 법의 허점을 틈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전형적인 매카시즘적 논리로 사상의 자유보다 ‘종북척결’을 더 우선시하는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역시 이날 사설에서 “김(범인)이 이날 테러 현장에서 외친 구호는 북의 주장과 판박이”라면서 “이번 사건이 김의 단독 범행인지, 아니면 북을 비롯한 배후 세력이 존재하는지 등을 낱낱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조선일보>는 해당 사설에서 “동맹국 외교관에 대한 테러라는 충격을 딛고 한·미관계가 진전하기 위해서라도 한·미동맹의 단호한 결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또다른 사설에서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의 한국소개문구가 최근 대폭 축소 개편된데 대한 비판을 싣기도 했는데, 이 날 <조선일보>의 이러한 편집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는 거부감을 보이면서 한미동맹 강화에는 열을 올리는 박근혜 정부 특유의 외교적 스탠스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조선일보 6일자 사설.

그런데 언론이 범인을 ‘종북인사’로 규정하고 배후에 ‘종북세력’이 있다는 점을 기정사실화 하면 할수록 한미관계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자유라는 허울 뒤에 숨어 법의 사각지대에서 암약하는 종북세력이 그렇게 많다면 우리나라는 친미국가가 아니라 반미국가일 것이다. 한미관계는 리퍼트 대사가 어느 한 개인의 일탈에 의해 공격을 받았을 때보다 ‘종북세력’이나 북한의 사주를 받은 ‘종북인사’가 조직적 결의를 통해 테러를 가한 경우 더 어려울 수 있고 이런 조건 때문에 우리 정부는 필요 이상으로 수비적인 외교적 입장을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수언론도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지속 염원과 종북세력에 대한 비난을 동시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이런 포지션은 국내정치적 상황에 대한 언론의 정파적 개입과 이를 통한 진실의 왜곡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지만 전국민적 죄의식을 조장해 우리 정부의 외교적 위상을 깎아내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문제다. 언론이 언론답기 위해서는 정황을 정치적 선입견에 끼워맞추는 것이 아니라 진실 그 자체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을 이들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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