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내에서 소통하고 싶어 하는 ‘갈증’이 팽배하게 퍼져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입사하고 이렇게 많은 사원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회사 이야기를 하는 이런 행사를 ‘회사 밖’에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회사가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 보직간부들은 한 명도 안 왔지만 고립돼 있던 우리들이 함께 모여서 그나마 좀 소통한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회사의 장소 대여 불허로 4년 만에 이루어진 사원총회 격의 <소통의 장> 행사는 사실상 외부 건물인 뉴스퀘어 2층 카페에서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5일 오후 7시 4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뉴스퀘어 2층 카페에서 YTN 젊은 사원들의 모임이 주최한 <소통 한마당> 행사가 열렸다. 젊은 사원들의 모임이 지난달 2일 ‘4년 만의 사원총회’를 제안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자리였다.

종편 탄생 이후 급격히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서 시청률 고전, 실적 악화, 불공정 보도 논란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YTN 내부 구성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컸다. 젊은 사원들은 “비전이 없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으면서 “모든 사람의 자발성을 끌어내 모두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는 2번이나 장소 대여를 거부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정체불명의 단체가 친목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총회를 열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첫 번째 거절의 이유였다. 두 번째 거절 당시에는 그나마 ‘이유’조차 없었다. 기수와 직종, 성별, 나이를 가리지 않고 모인 100여명의 사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YTN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각자 생각한 개선 방안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같은 제목의 기사가 다른 부서에서 동시에 나오는 비효율적인 업무 지시 및 처리 과정, 더 이상 이슈를 생산하지도 주도적으로 끌고 가지도 못하는 힘 빠진 보도국, 망가진 인사 철학, 기사와 관련해 송사가 발생해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 않는 회사의 무심함, 뉴스를 더 많은 시청자들에게 더 가까이 닿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 상황 등등…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는 YTN 사원들이 허심탄회하게 속 얘기를 꺼낸 <소통 한마당> 현장을 <미디어스>가 정리했다. 이날 논의된 내용은 취임을 앞둔 <소통 한마당>에 참석하지 못한 보직간부들과 조준희 YTN 사장 내정자에게도 문서 형태로 전달될 예정이다.

“저조차도 YTN 뉴스는 보지 않는다”

보도전문채널 YTN의 강점이자 자랑이었던 ‘보도’ 분야는 어느샌가 사원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가 돼 있었다. 자연히 보도국에서 느끼는 위험 신호에 대한 이야기가 속속 등장했다.

A 사원 최악의 오보는 침묵이라는 말을 들었다. 보도국이 어떤 식의 비겁함을 보이냐면 아예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민감한 이슈는 피해가고 싶은 거다. 이게 큰 문제다. 우리가 얘기 안한다고 해서 보도 안 되는 세상 아니다. 앉아서 물먹고 종편에서 떠들고 나서야 우리는 그걸 받아야 되는 무기력하고 비참한 상황이다”

B 사원 저조차도 우리 뉴스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민감한 이슈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YTN 보도국의 중점적 화두는 이슈 선정이었다. 오전에 이슈를 선정하면 오후에는 온 나라가 그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YTN이 만들어내는 이슈는 없다”

C 사원 우리가 치열함을 다시 회복해서 조금 더 현장 목소리를 안에 전달할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된다고 본다. 종편이 꼭 잘한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정치부는 아래에서의 발제싸움이 굉장히 치열하다. (…) 보도국 회의에 저희 발제가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D 사원 “이슈에 대한 기능이 너무 약하다. 아침회의에서 ‘오늘’을 준비하고 저녁회의에서 ‘내일’을 준비해야 되는데 이 부분이 너무 안 된다. (…) (인력 부족으로) 취재부서에서 (하루에) 리포트를 2개씩 쓴다는데 제 생각으로는 취재부서랑 협의해서 (편집부가) 아침에 리포트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도대체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회사에 대한 불만 토로 이어져

능력 위주가 아닌 간부들의 호불호나 성향에 좌우되는 인사, 채널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 모습, 법적 대응 과정에 휘말린 사원들을 지원하기보다 방관하는 법무팀의 행태 등 말 그대로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회사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나왔다.

▲ 5일 오후 열린 YTN 사원들의 <소통 한마당> 행사 모습 (사진=미디어스)

E 사원 “답답한 것 중 하나는 취재기자 입장에서 왜 이 기사는 나가야 되고 왜 이 기사는 이렇게 편향돼서 나가야 되는지에 대한 기준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주니어급들 기자들의 분발도 필요하겠지만 시니어급들이 고충을 더 귀 기울여 듣고 의견 제시해줬으면 좋겠다. (…)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주길 바란다. 아무도 얘기 안하면 계속 이런 구조로 가는 거고 악순환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F 사원 “사내 특종상은 보도국장 말을 잘 들었다는 이유로 상탄 경우도 있다. 외부 시상을 보면 누가 어떤 공로로 상을 받게 됐는지 적어도 심사평 정도는 존재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이 전혀 없고 결과만 나온다. 이런 문제에 대해 기자협회나 노조가 관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G 사원 “검색엔진에서 YTN이 자리를 제대로 못 잡았는지, 담당자 간 협력이 안 되는지 모르겠는데 영상 확보한 리포트보다 주로 텍스트 기사에만 댓글이 달린다. 우리가 가진 영상의 장점이 묻히는 것 같다. (…)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우리 뉴스는 거의 큐레이팅되지 않는다. 움짤이랄 것도 없고 사진이 감각적으로 편집돼서 올라오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좋은 화면을 확보해도 결정적 장면이 아니라 그냥 아무 장면이나 (썸네일로) 나와 있다 보니 홈페이지에서도 눈길을 끌지 못하고 ‘요약된 상태’로 SNS에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H 사원 “좋은 뉴스를 만들면 보지 않겠어?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좋은 보도를 생각함과 동시에 우리 시청률을 누가(어떤 시청자층이) 결정하고 우리가 어떤 채널인지 고민을 더 해 본 다음에야 우리가 나아갈 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low channel(낮은 채널번호)로 가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한다”

I 사원 “검찰청 보도자료로 쓴 기사가 있었는데 나중에 당사자가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한 적이 있다. 이 일로 법무팀장 면담을 3번이나 요구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 이게(법무팀의 지원) 없으면 기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테두리가 없다. 더 이상 이런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으쌰으쌰합시다”

녹록치 않은 회사 분위기 속에서 열정이 식어버린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나태해진 것은 아닌가 하며 자기반성을 내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시청률 하락, 보도 문제, 소통의 어려움 등 우울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 와중에도 서로에게 서로가 힘이 되는 사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사소한 것 하나라도 ‘긍정의 피드백’을 주자는 제안이 나와 큰 박수를 받았다. 또한 인물정보 업데이트 등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해 보자는 건의도 나왔다.

J 사원 여러 가지를 제작하고 있지만 사실 시청자나 스마트폰 유저, 네티즌들 통해서 제대로 소비가 안 되고 있다. (…) 우리 회사 각 분야에 전문가들이 있고 협업하면 훨씬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데 각자 맡은 일만 하니까… 개인의 두뇌가 집단지성을 이길 수는 없지 않나. 서로 도움을 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됐어야 했는데 지난 6년 동안 우리 스스로 나태해지고 기대를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K 사원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인물정보 업데이트가 끊겼다. 저는 무조건 취재현장 갔다 오면 전화번호, 특징, 적으라고 배웠다. 지금 경찰팀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걸 배운 적도 없고 지시도 안한다고 한다”

L 사원 “기계처럼 기사 써야 되지만 그 과정에서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소소한 노력은 항상 필요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서로 힘을 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관계인지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M 사원 “저는 이번 총회 통해서 저희부터 각성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저도 그렇지만 열정이 너무 많이 식은 것 같다. 종편은 (보도는) 이상하게 하는 부분이 있지만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있다. 최소한 야성이나 열정을 조금이라도 다시 지필 수 있다면 분명히 YTN은 설 자리가 있을 거라고 본다”

N 사원 “누구나 열심히 하는데 지적과 비판만 있다. (…) 서로 수고한 것이 보이면 관심을 갖고 잘했다고 말했으면 좋겠다. 그런 것 하나하나가 엔돌핀이 되고 에너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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