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반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1월 21일 쌍용차와 쌍용차 기업노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해고자 복직’ 등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교섭 의제는 △해고자 복직 △손배가압류 △쌍용차 정상화 △26명 희생자 유가족 지원 대책 등 4가지로 정했다. ‘티볼리’ 출시에 맞춰 방한한 쌍용차 대주주 마힌드라의 회장과 쌍용차지부가 만나 물꼬를 텄고, 노노사 대표자들이 대승적으로 결정한 내용이었다. 당시 쌍용차 곽용섭 홍보팀장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분명 “노동조합과 대화를 통해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해 한 발 더 양보해 실무교섭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튿날인 22일 신문에는 “쌍용차 노사가 ‘해고자 복직’을 위한 교섭을 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2009년 옥쇄파업 이후 26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대법원이 “정리해고는 정당했다”는 판결을 내려 ‘교섭’만이 유일한 해법으로 남아 있던 터라 언론도 기대감을 갖고 이 소식을 다뤘다. 한겨레는 8면 머리기사로, 한국일보는 20면 머리기사로, 경향신문은 12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그리고 이날 신문에는 쌍용차와 관련한 다른 특별한 기사들이 실렸다. ‘티볼리’ 시승기다. 한국일보는 ‘노사 교섭’ 기사와 똑같은 크기로, 이 기사 바로 아래 <부드러운 주행감에 감각적인 외관… 티볼리, 경쟁력 충분하다>는 시승기를 실었다. 한겨레는 17면에 시승기를 실었는데 이례적으로 ‘복직’을 언급하며 “예약 상황은 목표보다 빠른 속도다. 디젤 차량 등이 6월 출시되면 판매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 정도면 쌍용차가 희망퇴직자 복직을 고려하겠다고 말한 공장 가동률을 달성한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2015년 1월 22일자 20면에는 노사 교섭 재개 소식과 티볼리 시승기가 함께 실렸다.

시승기와 노사 교섭 재개 소식이 함께 실린 지면을 보고 ‘교섭 재개 합의는 티볼리를 잘 팔아보려는 쌍용차의 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평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결국 안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을 죽이고 지켜볼 때”라는 생각이 앞섰다. 편집국 다른 기자도 “2009년 정리해고, 55일 간의 옥쇄파업, 강제진압 이후 6년 가까이 이어져온 쌍용차 사태를 해결하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고, 노사 교섭을 지켜봐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믿을 것은 여론과 교섭뿐이었다.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의 판단(2014년 11월) 이후 해고자인 이창근 김정욱 두 사람은 평택공장 안에 있는 70미터 높이 굴뚝에 올라 농성을 시작했고, 시민들은 다시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며 교섭을 촉구했다. 언론도 다시 붙어 쌍용차 문제를 재조명하기 시작했고, 교섭이 이루어졌다. 다들 숨죽이고 교섭을 지켜봤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2009년과 똑같았다. 노사는 지금까지 다섯 차례 교섭을 진행했으나 쌍용차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 쌍용차는 2차 교섭 때 ‘경영정상화 이후 희망퇴직자 복직→해고자 복직’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고, 나머지 의제에 대해서는 별 다른 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백억 원이 넘는 손배가압류 문제, 26명 희생자 가족에 대한 지원책은 다루지도 못했다.

5차 교섭도 마찬가지였다. 쌍용차지부에 따르면, 쌍용차는 4대 의제에 대해 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지부장 김득중)는 “다시 한 번 노노사 대표자들이 만나 교섭을 하자”고 제안했으나 쌍용차는 “이유일 사장이 (제네바 모터쇼에 가 있는 관계로) 없기 때문에 답을 줄 수 없다. 만남을 추진해보겠다”는 답변만 남겼다.

지금도 쌍용차지부의 요구는 첫 교섭 때와 같다. 쌍용차지부는 5일 5차 교섭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4대 의제 가운데 가장 우선적으로 26명 희생자에 대한 책임과 그 대책을 오늘 5차 교섭에서 묻고 듣겠다”며 “마한드라 아난드회장에게 사과와 유감표명을, 재발방지대책으로 정리해고 포함 구조조정 하지 않고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희생자 유가족 생활안정기금 포함 생계대책을, 희생자 재발방지를 위한 기관 운영을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한 발 더 양보하겠다”는 말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쌍용차가 해고자를 티볼리 마케팅에 활용했다’는 혐의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쌍용차는 2009년 정리해고 당시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고, 굴뚝농성장에 매일 백만 원을 매기고 있다. 어찌 보면 언론과 시민들 모두 전격 노사 교섭이라는 ‘감각적인 외관’에 언론과 여론을 다루는 ‘부드러운 주행감’까지 갖춘 쌍용차의 상술에 휘둘렸는지 모른다.

이제 다시 여론뿐이다. 교섭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세력관계다. 쌍용차는 여론을 지켜보며 시간을 질질 끌기 바랄 것이다. 2009년에 머물고 있는 쌍용차를 끌어당기고, 해고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날을 당길 수 있는 건 오직 여론이다. 쌍용차가 그깟 티볼리 한 대 더 팔기 위해 26명 희생자와 187명 해고자를 입밖으로 꺼냈다면 이 회사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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