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_ 여자 나이 서른 셋 그리고 백수. 미혼이다. 본인 스스로를 ‘무중력의 일상’을 살아가는 여행자라고 소개하는 昇微(승미)님은 그러나 한때 가장 치열한 정치 현장을 취재하는 경제지 기자였다. 글 쓰며 밥벌이 할 수 있는 사람을 꿈꾸며 기자가 되었지만, 4년 3개월 만에 불면증을 얻고, 퇴사했다고 한다. 궁금했다. 만만치 않은 글 솜씨를 지닌, 하지만 만만한 듯 만만한 나이가 아닌 이 언니는 대체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것일까. 찬란하게 도전하고 번번이 실패하는 청춘들에게 고한다. 기꺼이 실패했던 그러나 아직도 찬란하고 싶은 ‘언니’가 나근나근 건네는 ‘진담’ 말이다.

글이 나간 뒤에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봤다. 특히 주변의 20대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너희한테 조언해준다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긴 머리 여대생의 대답은 이랬다. “아무래도 취업이 안 되니깐요, 어떤 곳에 취업을 하면 좋을까요. 제가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 그걸 어떻게 알고 싶을까. 그런거요.” 곱슬머리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글 잘 쓰는 법이요. ” 해사한 아이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낭비하지 않는 방법이요. 백수로 잘 지내는 법이요.”

여러가지 질문들이 뒤섞이면서 고민이 커졌다. 이 글은 취업을 앞둔 청년들에게 해주는 조언 같은 것인가, 아니면 고민 해결 상담소인가. 생각해보니 나 역시 놀고 있는 터라 취업에 큰 도움은 안되겠다. 그리고 누군가의 고민이라니 내 인생의 고민도 해결하지 못한 마당에 누가 누구한테 조언을 할까. 살아보더니 이렇더라. 내가 그때 이런 걸 알았더라면 한결 쉬울 수 있겠다. 그게 적합하다 싶겠다.

내가 얼마나 놀았나 되새겨 보니 어학연수 1년을 다녀왔고, 4학년 1학기 때 3월 한 달 다니다가 바로 다시 휴학하고,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2007년 8월 졸업과 동시에 백수신분으로 2010년 7월에 합격했으니 무려 3년 걸렸다.

기자준비는 2006년 12월에 입반했으니 실로 따지면 3년 6개월 + 1년 6개월, 5년이 걸렸다. 소설반 창작 수업에서 권여선 선생님이 32살에 장편 내고 40세 두번째 단편집 낼때까지 노셨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만만치 않게 놀았다. 권여선 선생님이야 자기가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나는 무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른 1년 6개월에. 하고 싶어도 번번이 낙방하는 3년 6개월은 지옥 같았다.

각설하고 백수로 잘 노는 법 잘 사는 법에 대해서 알려주겠다.

일단, 백수는 다이어리부터 마련하자. 먼저 2개의 다이어리를 사라. 하나는 좀 큰 거로 하나는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작은 거로. 큰 거에는 일주일 동안 무엇을 할지 적자. 오늘 해야할 일을 중요도 순서대로 적자.

예를 들어 방 청소하기, 은행 다녀오기, 아르바이트 하기. 친구와 점심, 자소서 마감. 이렇게 하루 계획을 세우면 자연스레 일주일 계획에 세워진다. 그러면 뒤늦게 달력을 보면서, “앗 자소서 마감 놓쳤는데.” 이런 일은 없어진다.

다이어리를 통해 일주일 계획을 세우기를 네 번 한다면 한 달 계획이 세워진다. 작은 다이어리에 일주일 계획을 다시 옮겨 적고, 목표만큼 이뤄졌는지를 다시 한번 점검하면 된다. 물론 핸드폰 앱도 좋고, 구글 앱도 좋지만. 앱은 연필을 쥐고 쓰는 시간 동안 생각이 정리되는 시간을 가질 수는 없다. 다이어리를 두 개 쓰는 이유도 그래서다.

두 번째, 즐거운 일들로 스케줄을 채워넣자. 스스로 스케줄을 만들면 된다. 자소서나 면접 등 주요 일정을 빼면 백수는 그야말로 시간부자다. 책상 앞 취업뽀개기 스터디에만 집착하지 말자. 인터넷이 있어서 세상은 넓고 공짜는 많다.

백수가 언제라도 볼 수 있는 조조 영화는 6천원이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무료 강연도 많다. 도서관에서 하는 인문학 강좌가 대표적이다. 가볼만 한 카페도 있다. 동네 도서관이 지겨우면 저멀리 정독도서관을 아니면 여행하는 느낌으로 인천 차이나타운의 도서관을 가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관은 최고다.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데 심지어 이쁘기까지 하다. 밥도 커피도 맛있다. 늘 그렇듯이 손가락마저 마른 미술 평론가들은 미식가다.

국회도 알짜배기다. 각종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 ‘강살리기, 원전의 미래, 전통주의 미래’ 등등 당신이 관심갖고 일하고 싶은 모든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온다. 국회 강연을 듣고 가서 전문가의 명함도 받고, 그러면 1석 2조다. 아울러 국회 도서관과 의원회관의 밥은 싸고 맛있다. 국회도서관에서 신간은 빌릴 수 없지만 온갖 책신문 다 있다. 심지어 컴퓨터, 복사도 출력 다할 수 있다. 국회 도서관이 장수생에게 강추받는 이유는 그래서다.

셋째로 백수로서 잘 버티려면 체력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하루에 운동 1시간은 해야한다. 한국 축구가 유럽 강호를 꺽을 때 마다 언론에서 정신력의 승리를 운운하는데 그때마다 코웃음이 나온다. 축구 게임 전반 45분 후반 45분, 총 90분을 쉬지 않고 뛸 체력이 있어야 승리를 할 수 있다.

백수로서 오래 버틸려면 운동해야 한다. 일상 생활 속 운동을 추천한다. 걷기도 좋고 자전거도 좋다. 아니면 동네 스포츠센터에 등록해서 수영이나 헬스도 좋다. 괜히 헬스클럽 다닌다면서 엄마아빠한테 손벌리지 말고.

네 번째로 백수라도 늦게 일어나지는 말자. 하고 싶은 일에 나의 사이클을 맞춰야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을 보면 가택연금 기간을 당하는 동안 매일 아침 의관 정제를 하고 집무실에 가서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그런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샤워하고 나갈 채비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생활 리듬을 만들자.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일들은 예외적이지 않으면 9시에 시작한다. 시험 준비중인 백수나 회사에 취직하기 위한 백수라면, 일단 9시에는 집중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자. 시험이 시작하는 시간에 최장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자.

어른들이 장기 취업 준비생들을 꺼려하는 이유는 적이 없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게을러져있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실제로 매일 9시에 일어나던 나는 새벽 6시까지 출근하는 석간신문에 취직해 한 두 달을 내리 아팠다. 몸이 갑자기 적응하려니 무리가 갔다.

그리고 늘 놀다가 갑자기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회사에서 꼼짝 안 하려니 좀이 쑤셨다. 오후 3시쯤이면 곰 세마리가 양 어깨에 앉고 집에 가자고 나를 꼬셨다. 대학생의 12시간과 직장인의 12시간이 다르다. 물론 백수의 12시간에도.

다섯 번째 신문을 읽자. 신문을 읽자. 경제 신문 1개, 보수 신문 1개, 진보 신문 1개 정도. 물론 기자 지망생이라면 아침에 꼼꼼히 신문은 5-6개는 다 읽으면서 같은 사인에 대한 논조 분석을 해야겠지만. 취업준비생이면 적어도 세상 돌아가는 건 알아야 시사 면접에 대비할 수 있다. 물론 공연 소식, 전시회 소식도 신문에서 얻을 수 있다.

여섯 번째, 뭐든지 기록하자. 당신이 회사원이 되든 연구원이 되든 록커가 되든 결국 글은 써야한다. 제안서든 보고서든 가사든 그건 결국 당신의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게 될 것이다. 평상시 기록하는 습관이 당신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모른다. 대부분 드라마작가나 예능 피디, 감독들도 잡지나, 신문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일곱 번째로 책상에서만 공부한다는 마음을 버리자. 고등학교 시절까지 그렇게 살아왔지만 그런 공부방법은 버려도 된다. 어른들을 만나서 좋은 이야기를 듣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 또한 공부다. 조선시대 유생들을 생각해봐라. 매일 같이 깜지쓰듯이 한자 외우고 상식을 외우지 않았다. 스승과 대화를 하며, 같이 책을 읽으며 모르는 구절에 대해 묻고 답했다.

논어와 같은 고전을 봐도 ‘공자에게 물었다’ 라고 글이 시작된다. 물론 글쟁이가 되고 싶은 이들은 글을 써야한다. 아직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학생이라면 뭐가 되고 싶고 왜 되고 싶은지만을 생각하자. 잘 모르겠다면 현업에 활동하는 전문가들에게 메일을 보내보자.

세상은 넓고 인터넷이 우리를 연결해주니. 모르면 메일이나 카톡 보내고 물어보자. 물론 다짜고짜 저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요. 혹은 ‘오늘 뭐하고 놀아야 돼요?’라고 물어보지 말자. 그건 ‘아무생각 없는 바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길이다.

그러니깐. 아직까지 누군가 밥상을 차려주고 떠먹여 줘야하는 어린아이라고 생각하면 당신을 도와주지는않는다. 설령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극성맞은 엄마나 아빠라면, 그건 당신을 망치는 길이다.

그러니 스스로의 힘으로 잘 놀고 잘 살자. 행복하게. 이 시간들이 당신의 자양분이 될 테니. 무작정 즐겁게 놀아서 그래서 나중에도 죽을 때까지 즐겁게 살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일들이 당신의 삶을 구원할 테니. 어디 회사를 취업하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그것이 만약 이뤄지지 않는다면 당신이 불행해진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내 직업으로 삼겠다는 마음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 즐거운 일을 찾는 것이 바로 백수생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놀아보자. 노는 게 어디 쇼핑하고 클럽에만 가는 거냐.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미드도 보고 만화책도 보고 팬질도 게임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놀아요. 신나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내일이 세상의 종말일 것처럼. 그런 일들이 당신의 다이어리에 가득차 있기를 기원한다.

여행자 昇微 _ 글 쓰며 밥벌이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다. 그러다 수많은 낙방 끝에 통장 하나 없는 주제에 경제지 기자가 됐다. 그리고 과천을 거쳐 야당 출입으로 총대선을 치르고 산업부 재계를 거친 4년 3개월. 불면증을 얻고 퇴사했다. 현재는 무중력의 세계를 여행하는 가난한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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