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가카, 안녕하십니까! 요즘 참 힘드시죠? 저 역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가카가 낸 회고록을 두고 “회고록이 아니다”라는 혹평(손석희)도 있고, “각종 조사에 대비해 미리 쓴 조서”라는 비난도 쏟아집니다. 민주화 이후 대선에서 사상 최대의 득표 차이로 당선된 가카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 가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단지 꼼꼼할 뿐이라고!

저도 회고록을 읽었습니다. 편집국장이 “<대통령의 시간>에서 ‘언론’ 관련 이야기만 따로 모아 정리하라”고 지시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힘들었습니다. 비록 글이었지만 자꾸 가카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카가 당신의 ‘라디오 연설’을 평가하는 대목에서 가카 특유의 ‘쇳소리’가 돌비 5.1 서라운드로 들렸습니다. 무례한 말씀을 드린 게 아닙니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후기까지 786페이지. 내용이 방대하더군요. 자원외교와 4대강사업, 경제정책에 대한 회고와 평가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라 걱정에 단 하루도 편히 쉰 날이 없다”는 박근혜 현 대통령보다 더 깊이 국정을 고민하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한 평가는 여러 언론에서 다뤘으니, 넘어가겠습니다. 이 편지에는 ‘모든 언론이 비슷한 논조라서 오히려 지면과 전파가 아까웠다’는 평가만 남기겠습니다.

▲ 퇴임 후 4대강 자전거길을 달리시는 이명박 대통령 가카, 아니 X-가카 (사진=연합뉴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솔직히 조금 실망했습니다. 제가 못 찾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가카는 언론판 4대강 사업으로 불린 ‘종합편성채널’을 회고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가카 재임 당시, 정부여당은 종합편성채널사업자가 글로벌 방송사업자가 될 것이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중앙·동아일보와 매일경제가 신문과 방송을 겸영하게 됐습니다.

대한민국에 ‘정치수다’가 늘면서 가카와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큰 힘이 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종편을 회고하지 않으셨습니다. ‘special thanks to’에라도 이름이 있을지 알았는데 없더군요. 평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실 터이고, 혹시 2008년처럼 지금이 “언론 환경과 정치 환경 모두가 새 정부에 불리한 상황”이라 괜히 불똥이 튀어 더 두들겨 맞을까봐 건드리지 않으신 건가요?

가카의 ‘멘토’이자 종편 출범의 일등공신이고,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을 지낸 최시중씨에 대한 평가도 보이지 않더군요. 많은 추억을 쌓았을 텐데 한 줄 언급이 없다니 아마 굉장히 섭섭할 겁니다. 최시중씨는 얼마 전인 지난해 10월 한 기자와 만나 “3~4년 지나면 종편들이 제구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와 비교하면, 가카 특유의 ‘당당함’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국정에 협조해야 할 언론이 비난만 하자 가카는 섭섭했을 겁니다. 가카가 책에 쓰신 대로 언론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가카의 깊은 속을 헤아리지 못하고 ‘위기설’을 퍼뜨렸습니다. 4대강사업, 자원외교, 아프간 파병, 트리클다운 정책에도 부정적이었습니다. 심지어 국가 핵심시설인 ‘지하벙커’까지 비난했습니다. 가카는 언론이 당신의 고민과 정부의 성과를 외면했다고 했습니다.

▲ 가카가 2013년에서 2008년으로 회상하는 장면을 담은 이미지. 가카는 아직 할 말이 많다. 뒤를 돌아보며 웃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등장 분량으로 따지면 가카에게 가장 큰 실망을 안긴 언론사는 MBC로 보입니다. 정확히는 MBC <PD수첩> 제작진입니다. 이렇게 쓰셨습니다.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중략) 그 프로그램만 본다면 3억 미국인들과 우리 국민들은 식품이 아니라 독극물에 가까운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셈이었다.”

가카의 말씀대로라면 지금도 미국산 쇠고기를 꺼려하는 시민들은 모두 MBC에 놀아난 셈입니다. 가카는 이런 ‘괴담 유포’ 방송이 나온 배경을 이렇게 짚으셨습니다. “공기업과 공영방송 개혁 논의가 가시화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임직원들에게 쇠고기 수입 허용 조치는 정부에 저항하는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한 셈이었다.” 놀라운 분석입니다. 개혁이 싫은 언론인들이 선동 방송으로 저항했다!

가카가 4년5개월 간 109번의 라디오방송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런 언론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가카는 “국민과의 소통에 가장 목이 말랐던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대통령과 정부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그 의미가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전달되기 힘들었다”며 “앞뒤가 잘리어 본의 아닌 표현으로 왜곡되어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다”고도 회고했습니다.

왜 이렇게 가카의 마음을 몰라줬을까요. 왜 언론은 이제와서 자원외교 성과를 탐사보도하며 가카의 업적을 깎아내릴까요. 왜 당신이 만든 종합편성채널도 가카를 호의적으로 보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술자리 안주 마냥 잘근잘근 씹고 있습니다. 당신의 경제위기 극복을 “또 하나의 기적”이라고 한 조선일보도 이제는 돌아선 것 같습니다.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진짜 회고록을 써야 합니다.

‘가카 5년’은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책 한 권으로는 설명할 수 없겠지요. 내밀한 내용이 없어 실망했다는 기자들이 많습니다. 2007년 경선 당시 최태민 목사 의혹을 당당하게 제기했던 가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을 기다립니다. 타고난 CEO인 가카가 시장조사를 안 했을리 없습니다. 꼼꼼한 가카는 회고록 시즌2를 준비 중이겠죠.

가카, 기다리겠습니다. 항상 무탈하십시오.

참, 이 책 정가가 2만8천 원이더군요. 저를 포함해 출판을 고민 중인 수많은 글쟁이와 출판계 관계자들이 정가를 인상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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