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2004년 전교조 등 교원단체와 맺은 단체협약 가운데 ‘어린이신문 학습자료 강제 활용 금지’ 조항을 최근 해지하기로 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조치로 앞으로는 어린이나 학부모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학교장 재량으로 특정 어린이신문을 학습교재로 채택해 집단 구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어린이신문을 발행하고 있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겠지만 특혜논란과 함께 과거의 여러 부작용이 재연될 가능성이 켜졌다.

과거 이들 신문들은 더 많은 학교에 자사 신문을 집단 구독시키기 위해 학교에 기부금을 제공하는 등 온갖 불법과 탈법을 자행해 왔다. 지난 2004년 국정감사에서 교육부가 최재성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2004년 9월1일 현재)에 따르면, 서울지역 510개 초등학교 70만9045명중 429개 학교 35만5720명의 어린이가 <소년조선> <어린이동아> <소년한국> 등 3대 어린이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3대 어린이신문은 2003년에만도 24억5696만원을 이들 학교에 기부금 명목으로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자 정부는 2006년 5월에 ‘학교 구독 어린이신문 가정 구독 전환’, ‘학생 부담에 의한 특정신문 학습자료 활용금지’, ‘신문 구독 관련 학교발전기금 접수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공문을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 내려 보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금지됐던 것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시행 2년만인 지난 4월 폐지되면서 일선 초등학교에는 가정통신문을 통한 특정 어린이신문의 구독강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 특정 어린이신문 구독을 강요하는 학교장 명의의 가정통신문

불과 2년 전 어린이신문 집단 구독으로 일어났던 폐단을 인지하고 금지조치를 단행했던 교육부가 돌연 폐지에 이르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혹 이들 신문사들의 입김이나 압력이 있어서는 아닐까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지난 2007년 9월17일자 동아일보는 <‘어린이신문 읽기’ 교육 효과 크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교육부의 어린이신문 집단구독 금지조치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 신문은 서울시초등교장회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인용해 “어린이신문이 어린이 문화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응답이 97%나 됐다”며 “교육부는 당장 이 문제에서 손을 떼고 학교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선일보도 지난 4월16일자 신문 <어린이신문 ‘단체구독 금지’도 풀려>라는 기사를 통해 "(노무현)정권에 비판적인 조선·동아일보가 어린이신문을 발행하는 것을 겨냥한 조치였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이어서 “당시 교사·학부모들은 ‘교육적 활용가치가 높은 어린이신문 구독을 금지시킨 것은 학교 자율성과 학생의 선택권 침해’라며 반발했으나 (참여)정부는 그대로 밀어 붙였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이 두 신문사는 어린이신문 집단 구독 금치조치가 단행된 이후 기사를 통해 끊임없이 교육부와 교육청을 압박해 왔다. 전문가들은 어린이신문 시장이 거대하고 이윤 역시 높기 때문에 이들 신문사들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 어린이신문 3사 매출액은 서울지역만도 한 해 100억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4월 교육과학기술부의 폐지조치에 이어서 이제 서울시교육청과 교원단체 간에 맺은 ‘어린이신문 학습자료 강제 활용 금지’ 협약마저 해지된다면 특정 어린이신문을 집단으로 구독시키려는 자들에게 걸림돌은 완전히 사라지는 셈이다. 이에 따른 어린이신문 시장 규모도 500억원대에서 1천억원대로 확대될 전망이다. 그야말로 어린이신문 시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2004년의 경우처럼 신문사간의 물밑 거래, 불법 리베이트, 어린이신문 독과점 현상, 어린이신문 강매 등의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신문사간의 나눠 먹기식 물밑 거래로, 학교별 또는 학년별로 특정 어린이신문으로 독과점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6월10일자 소년조선일보 만화 ‘뚱딴지’
신문이 학습 보조 자료로서 활용 가치와 교육적 효과가 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신문사들의 물밑거래로 인해 선택의 기회가 박탈당한 상태에서 특정 어린이신문을 학교 전체가 집단으로 구독해야 한다는 것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광우병 파문이 한창이던 지난 6월10일자 <소년조선일보>에 실린 만화가 수많은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를 봤다는 한 네티즌은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에게 이러한 편파적인 어린이신문을 읽게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 네티즌의 지적처럼 이들 신문사들은 어린이신문에까지 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사를 실어 순수하기 짝이 없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편파·왜곡보도를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편향적인 어린이신문을 학생 스스로나 학부모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신문간의 물밑거래를 통해 선정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록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에 의한 제재는 사라졌지만 일선 교육현장에서 미래의 인재를 키워내고 있는 선생님들이 앞장서서 이러한 문제가 벌어지지 않도록 막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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