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무슨 무슨 날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물의 날, 문화의 날, 교정의 날…. 세상에 납세자의 날도 있다. 나처럼 세금 한 번 제대로 안내본 사람은 어쩌라구. 게다가 크리스마스니 석가탄신일이니 이런 종교적인 기운 충만한 날부터 해서 밸런타인데이니 빼빼로데이니 이런 소비지상주의 가득한 날까지. 온갖가지 ‘날’들이 판을 치는데 어지간하면 명함하나 내밀기도 힘들고 혹 들어는 봤어도 지나고 나면 언제인지 금방 까먹을 ‘날’들.

하지만 아주 일상적인 것도 특별한 경험을 통해서 오래가는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30년을 모르고 살아왔던, 하지만 앞으로 절대 잊을 것 같지 않은 ‘경찰의 날’처럼 말이다. 어쩌면 보통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10월21일이 무슨 날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더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매년 10월21일에는 경찰업계에 종사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끼리 자축하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8년 10월21일 ‘경찰의 날’ 아침에 들려온 소식은 아무것도 아닌 하루를 특별히 지독한 기억이 남는 날로 바꿔버렸다.

▲ 21일 오후 기륭전자 앞에서 경찰이 경찰특공대를 투입,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과 이상규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강제로 끌어 내렸다. 그 후 '골리앗'이 용역직원들에 의해 철거되었다ⓒ참세상

▲ ⓒ참세상

2008년 10월 21일 오전 10시30분. 나는 서대문역 근처의 경찰청 앞에 있었다. 전날(20일) 오랜기간 회사측과 싸워오고 있는 기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에 구사대와 용역들이 투입되어서 폭력을 휘두르는데 경찰이 수수방관하고, 오히려 불법연행한 사람들을 용역들에게 넘겨서 집단폭행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의 경찰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20일 기륭 농성장의 상황은 참담했다. 아무리 빠른 시간 안에 급하게 쓴 기자회견문이라고 해도, 그 당시의 처참한, 지옥과도 같은 아비규환이 문자를 타고 내 몸에 흘러들어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부상자의 눈 위 상처가 유난히도 붉게 도드라져 보였다.

그래, 사실은 새롭지도 않은 내용이다. 언제 경찰이 한 번이라도 없는 사람 편 들어준 적이 있었던가. 경찰이 용역들과 조직폭력배들과 서로 돕고 돕는 사이라는 거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달동네 강제 철거할 때, 깡패들이 주민들 죽도록 패는 거 경찰들이 벽을 싸서 다른 사람들 못보게 도와주는 거 한 두 번 겪어 본 것도 아니니 그따위의 경찰 행동에 서운할 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자꾸 꾸역 꾸역 치밀어 오는 높은 파동의 감정이 있었다. 마치 너무나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고 또 봐도, 다음 장면 다 알아도 언제나 재미있는 것처럼, 백번도 더 넘게 느꼈을 분노.

‘경찰의 날’이 어떤 날인지 찾아봤다. 세상에 잔칫날은 거지가 와도 박대하지 않는 법인데, 지네 잔치 전날 용역들 수발이나 들고 있고 힘없는 노동자들 쥐어 패고 있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올해가 63주년이라고 한다. 올해가 건국 60주년인데, 그럼 대한민국 경찰은 대한민국보다도 더 먼저 생겼다는 말인가? 국가보다 먼저 생긴 경찰이라니, 넌센스다.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경찰은 미군정 산하 경무국에 모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 미국이 좌익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국가행정조직에 몸담고 있던 친일파들을 그대로 이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친일파 중에서도 가장 악질들이 모여 있던 곳이 바로 경찰이었으니, 예전에 독립투사들 잡아들이는 실력으로 민주화운동 인사들 잡아들이고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지금까지 잡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연좌제는 나쁜 것인데, 지금의 경찰이 친일경찰의 모태를 두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친일했던 선배들의 과거를 뉘우치지 않고, 아니 오히려 선배들에게 뒤질까봐 더욱 악랄해지는 것이다. 독립투사 때리던 몽둥이가 민주화운동하는 사람들 잡고, 조직폭력배들과 술잔 나누던 손으로 박종철을 죽이고 강경대를 죽이고, 농사짓다가 고향땅에 묻혀야할 전용철 홍덕표 농민을 여의도 시꺼먼 아스팔트 위 귀신으로 만들어 버리고, 또 많은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그리고도 한 번 그 흔해빠진 형식적인 반성조차 하지 않는 조직이 경찰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은 경찰력을 통한 치안의 확보와 사법권을 통한 처벌의 작동을 핵심으로 하였다. 그래서 근대국가 초기, 경찰은 ‘우리 모두의 안정을 위한 담보자’ 혹은 ‘공익의 화신’으로 상징되었고, 외경(畏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무시무시한 폭력으로 인해 두려움의 대상이었을지언정 외경의 대상은 결코 아니었다. 일말의 존경심도 거기에는 포함될 수 없었다. 촛불집회를 겪으면서 경찰을 멋지게 조롱하는 방법까지 찾아낸 사람들에게 경찰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도 못 될 것이다. 하기사 회사에서 고용한 용역들 뒤치다꺼리하는 경찰조직을 두려워하기는 이쪽 편에서도 쫌 쪽팔릴 일이고, 스스로도 낯 부끄러울 일이다.(그 정도의 염치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애시당초 경찰이라는 조직에 일말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경찰의 본질은 국가권력을 위해 합법적으로 폭력을 보유한 집단이 아닌가. 국가권력의 이익이 언제나 개인의 삶과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면, 경찰의 몽둥이는 언젠가 나를 향해 날아올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최소한의 룰은 좀 지켰으면 싶기도 한다. 법 또한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만, 그마저도 안지키면 정말이지 대책이 안서니까.

대신에 경찰에서 근무하는 분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정말 그러고 싶냐고. 돈벌이 힘든 사회고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는 거 알지만 정말 그러고 싶냐고. 대체 얼마나 잘 벌어서 잘 살기 위해서 꼭 그래야만 하냐고. 힘없는 노동자들 때리던 손으로, 그래서 폭력에 찌들어 있는 그 손으로 집에 가서 당신들 자식 손잡을 거냐고. 항의하는 인권활동가들에게 욕설 퍼붓던 입으로, 그래서 짜증이 아로새겨진 그 입으로 애인을 만나서 사랑을 속삭이고 싶냐고.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당신이 용역깡패들을 도와주는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심정일지 생각해봤냐고. 우리 인간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괴물만은 되지 말아야하는 거 아니냐고.


애써 찾아가지 않았던 평화가 나에게로 왔다. 평화의 결과로 병역거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아가게 되었다. 현재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착하게 살다가 조용히 죽는 삶을 꿈꾸지만 버리지 못한 욕심이 심장에 붙어있어 떨쳐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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