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파는 상인’이라는 말은 마약상·무기상 등을 일컫는 말이다. 그 이름도 꺼림칙한 이 표현이, 요즘 우리 문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 사건과 연결되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문화계의 한 축을 담당한 출판계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정도(正道)를 벗어난 일탈은 자제해 왔다. 하지만 지난 15일 개정증보판으로 출간된 고 최진실의 자서전 ‘그래, 오늘 하루도 진실하게 살자’는, 법적인 문제를 떠나 가슴을 스산하게 만든다.

# 최진실 마케팅의 실체는?

▲ 서울신문 10월 16일 10면.
도서출판 ‘책이 있는 마을’은 10년 전인 1998년 고인의 자서전을 출간해 3만부를 매진시켰다. 이 책은 당시 연예계 데뷔 10년차인 고인의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인간적인 고뇌와 함께 담았다. 출판사는 “판권은 우리 출판사에 있고, 출판계약의 경우 양자 어느 누구도 계약해지 의사를 밝히지 않았기에 자동 연장되는 것으로 봐야한다. 결국 판권에는 문제가 없다”며 출판을 강행했다.

지난 15일 초도 인쇄된 6000부가 서점에 깔렸다. 책 배본에 앞선 지난 14일 출판사 측은 취재에 나선 기자에게 최진실 자서전의 출하를 기정사실화했다. 단지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인세 문제였다. 출판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 부분은 고인의 동생인 최진영 등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우선 책을 출간한 후 다시 협의할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도의적인 부분은 아예 도외시된 모양새다.

이미 고인이 된 저자가 마치 엊그제 내용을 수정한 듯, 이날 나온 책에는 1998년 자서전의 “연예계 데뷔한 지 10년이 지났다…”는 부분이 “연예계 데뷔한 지 20년이 지났다…”로 수정됐다. 이 부분은 “고인이 죽음을 예견했다”는 오해를 자아내며 재출간일 안팎, 포털사이트 야후의 연예면 톱기사를 장식하기도 했다.

출판사 스스로도 민망한 구석이 있었던지, 해당 출판사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족 동의 없이 책 내용을 변경하고, 재출간 전 동의를 구하지 않는 데 대해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며 “유족이 책 판매 중지를 요구한다면 그렇게 할 용의도 있다”고 말했다. 수정된 원고에 대해서는 “애매한 구석이 있다”며 말을 아꼈다. 이는 그들 스스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고, 출간 역시 출판사 한쪽의 의지로만 진행됐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 “미안하다, 그러나 어쩌겠나?”

▲ 다음 아고라에서 10월 15일 시작된 '최진실 자서전 출판사 불매운동 청원'
이에 대해 고인의 소속사 측은 “이 말 역시 시간 벌기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진실 소속사 관계자는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 주 출판사 관계자를 만나, 고인 어머니의 뜻인 ‘자서전 회수’를 얘기했지만, 아직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다”며 “전화만 하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할 뿐, 계속 차일피일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며 허탈해 했다.

고 최진실 측을 더욱 당혹하게 만든 것은 ‘최진실 자서전 인기’라는 언론 플레이성 기사가 20일 포털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그 실체가 궁금해 교보문고에 문의한 결과, 난색을 표명하던 관계자는 “비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를 정도는 아니다”라는 말로 최진실 자서전의 판매 동향을 에둘러 표현했다. 한마디로 대박은 아니되, 나가기는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뜨뜻미지근한 사건의 진행 과정은 개정증보판을 내게 된 동기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번 최진실 자서전 출간에 관련이 있는 출판 관계자는 “고인의 자서전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판단한 대형 서점과 출판사 측의 사전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자서전의 개정증보판 출간이 장삿속일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쳤다.

저작권에 대해서도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다. 출판사의 주장과 달리 한 변호사는 “품절 이후 10년간 자서전의 재출간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출판 저작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최진실 자서전은 오늘도 서점 매대에서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최진실 측과 출판사 측의 엇박자는 쉽게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갑갑한 현실에 일부 네티즌은 최진실 자서전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다. 다음 아고라에서 ‘최진실 자서전 출판사 불매운동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서명운동이 그것. 이들은 최진실 마케팅이 결국 고인의 죽음을 파는 행위라 여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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