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과연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가? 진부할 정도로 낡은 물음에 대해 21세기 대한민국의 법은 뭐라고 대답할까? 21세기 권력의 양대 축인 정치계와 경제계에 든든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로펌이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점점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현실에서 법은 과연 만인 앞에 평등한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인 검사와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법과 정의, 그리고 진실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는 SBS 프리미엄드라마 <신의 저울>(유현미 극본, 홍창욱 연출)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법 앞에 상처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획된” <신의 저울>은 1980년대 말 어느 탈옥범이 외쳤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서글픈 절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일깨워주면서 21세기 대한민국의 법 체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드라마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던 한 가족이 우발적인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최소한의 법률적 서비스도 보장받지 못한 채 풍비박산되는 극적 상황에서 출발한 <신의 저울>은 지금까지의 한국드라마에서 보기 드물었던 ‘법조드라마’라 할 수 있다.

아버지처럼 강직한 검사가 되고 싶었던 ‘김우빈(이상윤 분)’은 사법시험에 합격한 날, 시험에 떨어진 선배를 위로하기 위해 선배가 이사 간 줄도 모르고 술에 취해 신림동 옥탑방을 찾아간다. 남자 친구의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옥탑방 주인집 아들에게 강간당할 뻔하던 여자는 술에 취해 문을 열고 들어온 김우빈을 강간범으로 오해하고 공격한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놀란 김우빈은 여자의 공격을 막고, 김우빈의 힘에 밀린 여자는 뒤로 넘어져 즉사한다. 여자의 죽음을 확인한 김우빈은 예비 법조인이기 전에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두려움에 떨며 도망친다. 그리고 사법시험 2차에서 떨어져 미안한 마음으로 여자 친구가 새로 마련했다는 신림동 옥탑방에 도착한 ‘장준하(송창의 분)’는 싸늘하게 죽어 있는 여자 친구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하지만 정신이상 장애를 겪고 있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옥탑방 주인의 간계 때문에 장준하가 용의자로 몰린다.

▲ SBS 프리미엄드라마 <신의 저울> ⓒSBS

공사판 노동자였던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야간 법대를 졸업하여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장준하가 여자 친구를 살해한 용의자로 몰리고, 진범이 잡히지 않은 채 형이 모든 혐의를 뒤집어쓰게 되자 장준하의 동생 ‘장용하(오태경 분)’는 형이 판검사가 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생각하여 자신이 범인이라고 허위 자백을 한다. 살인사건 담당 형사들은 장용하의 살인미수 전과 기록을 보고 그가 진범이이라고 확신하지만, 장준하는 절대 그럴 리 없다며 변호사를 찾지만 감당할 수 없는 수임료 때문에 좌절하고 만다. 둘째아들의 변호사 수임료를 마련하는 길은 보험료뿐이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사고를 가장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어머니의 목숨과 맞바꾼 보험료로도 동생을 구하지 못한 장준하는 검사가 되어 사건을 재수사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우발적 살인 사건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김우빈은 어머니의 권유로 사법연수원 입소를 연기하고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온다. 그리고 동생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주경야독하던 장준하는 마침내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운명의 장난처럼 사법연수원 동기가 된 장준하와 김우빈은 서로의 악연을 전혀 모른 채 절친한 친구가 된다. 연수원 공부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신림동 옥탑방 살인사건 자료를 모으고 검토하던 장준하는 김우빈의 아버지이자 강직한 검사 출신으로 현재 연수원 총괄교수직을 맡고 있는 ‘김혁재(문성근 분)’에게 동생 사건을 연수원 모의재판에 올려달라고 부탁한다. 평소 장준하의 강직한 성품을 눈여겨보던 김혁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모의재판이 열린다.

각기 변호사와 검사 역할을 맡은 장준하와 김우빈의 불꽃 튀는 변론과 반론 끝에 배심원들은 장용하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이렇게 처음부터 사건을 파헤치던 장준하는 김우빈이 자신의 여자 친구를 죽인 진범이라고 확신하고 김우빈과 친구 관계를 끊는다. 그리고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여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한편 자신의 목을 옭죄며 사건을 파헤치는 장준하에게 두려움을 느낀 김우빈은 대학 후배이자 사법연수원 동기인 ‘신영주(김유미 분)’가 결정적인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획적으로 결혼을 서두른다. 또한 김우빈은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신명’이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신명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여 아버지의 꿈이었던 검사를 포기하고 변호사의 길로 나서며 검사가 된 장준하와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

이처럼 동생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형의 고군분투와 법의 맹점을 이용한 로펌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교차시켜 나가는 이야기 구도는 자칫 진부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의 저울>은 역설적인 상황 설정을 통해 이야기 전개 과정의 상투성을 파괴하면서 극적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김혁재가 강직한 검사의 자질을 갖춘 장준하에게 호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도와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자기 아들인 김우빈을 위기에 빠지게 하거나,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검사로서의 임무에 충실하던 신영주가 신림동 옥탑방 살인 사건 재수사를 맡으면서 약혼자 김우빈을 궁지로 몰아가는 역설적인 상황은 선과 악의 단순한 이항대립적 구도에서 벗어나 엄격성을 생명으로 하는 법의 본질을 ‘핏줄’과 ‘사랑’으로 시험하게 만들면서 극적 긴장감을 유발시키면서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 SBS 프리미엄드라마 <신의 저울> ⓒSBS

<신의 저울>의 극적 긴장감은 결말에 이르러 ‘시적 정의(Poetic Justice)’의 세계가 구현되면서 해소된다. ‘시적 정의’의 세계란 착한 사람에게는 보답이 돌아가고 악한 사람에게는 처벌이 돌아감으로써 ‘도덕적 정의’가 구현되는 세계이다. 한마디로 권선징악의 원리가 작동하는 세계를 의미하는데, 진실과 정의마저 자본에 예속될 가능성이 높은 자본주의 현실에서 쉽게 구현되지 않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세계이기에 ‘시적 정의’의 세계로 불리는 것이다. 이처럼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드라마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드라마는 시적 정의의 세계를 지향한다.

<신의 저울> 역시 실제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법률적 정의가 드라마에서 실현되는 것은 허구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이어서다. 그래서 김우빈이 사람을 죽인 것은 분명하지만 법적으로 전혀 죄가 없다는 로펌 ‘신명’의 대표 변호사 ‘노주명(최용민 분)’의 논리는 ‘진실’과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된다. 그리고 마침내 신림동 옥탑방 살인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장준하와 장용하 형제의 억울함이 해소될 것이다. 객관적 증거에 근거한 법률적 판단의 엄격성도 중요하지만, 장준하의 표현처럼, 0.01%의 억울한 경우가 없는지 다시 한 번 재고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마음이기 때문이다.

장준하와 김우빈의 대립 구도 속에 펼쳐지는 다양한 법률 상황들은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21세기 대한민국의 법과 진실, 법과 정의의 상관성을 암시하면서 시청자를 긴장시킨다. 재경부와 금융감독원, 국세청과 관세청 등 고위 관료 출신들을 고문으로 거느린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회사를 연상시키는 ‘신명’, 외환은행이 국제 헤지펀드 론스타에게 헐값으로 매각되었다는 세간의 의혹을 연상시키는 대한은행 매각 사건,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 그룹 총수를 연상시키는 ‘황 회장(송재호 분)’이 비리를 저지르고도 구속되지 않고 오히려 사건을 담당했던 정의파 검사 ‘김혁재’가 좌천되는 극적 상황들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법 질서 확립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법 질서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공정한 법 집행일 것이다. 법의 맹점을 이용하여 개인의 이득을 챙기는 경우가 사라지지 않고, 때만 되면 기회다 싶어 ‘사면권’을 남용하여 법의 엄정성을 훼손하는 사례가 줄어들지 않는 한 ‘법 질서 확립’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드라마 <신의 저울>에서 구현된 시적 정의의 세계에는 정치와 경제 권력에 예속된 법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가 구현되는 세상을 만드는 도구로서의 법을 바라는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렇게 법 앞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드라마 <신의 저울>은 몇 가지 작위적인 상황 설정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시청을 권유하고 싶은 ‘법조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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