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가 진짜 파업을 하려는가 보다. 우리 회사 온·오프라인 게시판과 계단 벽에도 파업찬반투표 공고와 포스터, 위원장 담화문, 파업 의제 등이 나붙었다.

▲ 우리 회사 계단 벽에 붙어있는 파업찬반투표 공고와 포스터, 담화문.

지난 13일 우리 회사 강당에서 열린 경남 블로그 강좌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런 게시물을 보고 물었다.

"언론노조 파업 진짜 할 건가요?"

"예, 이번엔 무늬만 파업이 아니라 진짜 타격을 주는 파업을 한다더군요."

"그런데 조·중·동 노조는 안 할 거잖아요."

"그건 그렇죠. 신문으로 보면 경향·한겨레, 그리고 경남도민일보 쯤이 되겠죠."

"그러면 오히려 조·중·동과 이명박 정권이 좋아할 파업 아닌가요?"

"……."

정색을 하고 나눈 대화는 아니었지만, 나는 이 얘기 속에 언론파업의 본질적인 딜레마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언론노조가 파업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 이명박 정권이 착착 진행하고 있는 방송장악 시나리오와 조·중·동 외 모든 신문 죽이기 정책(나는 이걸 '제2의 언론통폐합'이라 부르고 싶다.)을 보면 파업이 아니라 언론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켜도 시원찮을 판이다.

하지만, 싸움이란 승산이 있을 때 붙어야 하는 것이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이 "진짜 타격을 주는 파업을 하겠다"고 말했다지만, 파업으로 타격을 입을 상대가 과연 누구일지 따져봐야 한다.

▲ 파업 의제는 충분하다. 그러나 과연 타격효과나 승산은 있나.

방송이 파행을 빚고, 경향·한겨레나 경남도민일보 같은 신문이 단 며칠이라도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물론 '오죽했으면 신문·방송사 종사자들이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국민들의 관심과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효과 정도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 '타격'을 입을 상대는 신문제작이 중단된 해당 신문사다. 그야말로 '자해 파업'이다.

파업에 들어가지 않은 조·중·동과 여타 신문들은 쾌재를 부르며 언론노조 파업의 불법성을 부각하고, 의미를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보여준 태도를 보면 이명박 정권 역시 전혀 당황하지 않을 게 뻔하다. '좌파 언론인들의 준동' 운운하며 느긋하게 조·중·동과 찰떡궁합 여론전을 펼칠 것이다.

쉽게 하는 파업은 쉽게 실패한다

뿐만 아니다. 실제로 파업을 할 수 있는 신문·방송사가 얼마나 될지도 불투명하다. 물론 YTN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는 정말로 방송이 파행을 빚고 신문 제작이 중단될 만한 파업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내가 속해있는 경남도민일보도 마찬가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조합원들은 그동안 여러 번 파업찬반투표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다. 파업이 가결됐으나 실제 파업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더구나 본조 차원의 결정에 따른 총파업 내지는 연대파업의 경험도 전무하다. 언론노조뿐 아니다. 그동안 민주노총도 총파업 가결해놓고 나중에 지리멸렬하게 된 경우가 오죽 많았나.

그래서 파업찬반투표 공고가 붙어도 하나같이 무덤덤하다. 투표에서 가결되어도 실제 파업은 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투표 자체를 '뻥' 한 번 쳐보려는 행위로 인식한다.

▲ 위원장은 오직 파업투쟁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파업하면 막을 수 있을까.

또한 실제 파업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게 정권에 얼마나 타격을 줄 것인지, 파업의 효과에 대한 믿음도 없다. 승산은 더더욱 없다. 심지어 그런 데 대한 관심도, 토론도 없다. 이런 상황인데 제대로 파업이 되긴 하겠는가.

물론 투표를 하면 가결은 될 것이다. 그 찬성률만 믿고 실제 파업에 돌입할 태세와 역량이 됐다고 믿으면 오산이다. 그렇게 하여 또다시 가결만 해놓고 간부들끼리 모여 집회 한 번 하는 걸로 갈음한다면 다시 한 번 언론노조가 종이호랑이라는 걸 만천하에 보여주는 결과가 될 것이고, 조합원들에게는 또 한번의 학습효과를 심어주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제안한다.

예정된 찬반투표 날짜를 좀 연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파업의 구체적인 방식과 그걸로 얻어낼 성과와 승산에 대해 치열한 끝장토론을 벌이자는 것이다. 1박2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정밀한 몇 가지 방식을 놓고 밤샘토론을 하자. 또 그 결과를 놓고 지역별, 지부별로 전체 조합원 토론회를 하자.

그 결과 정말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나온다면 그땐 목숨 걸고 밀어붙여 보자. 예를 들어 전국의 모든 지부별로 이명박 정권의 '제2의 언론통폐합' 음모를 까발리는 노보를 각 신문부수만큼 제작하여 본지에 삽지 배달하는 투쟁을 벌인다든지, 그와 병행하여 전 지부 간부와 조합원들이 매일 100명씩 YTN에 모여 1박2일씩 릴레이 철야농성을 한 달간 계속한다든지 하는 보다 현실적인 투쟁방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내가 볼 땐 그게 훨씬 정권에 타격을 줄 것 같다.

그런 토론이나 노력조차 해보지 않은 채 이번에도 '뻥'만 치는 언론노조임이 확인된다면, 나는 미련없이 언론노조 조합원에서 탈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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