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12일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 당사자인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의 단독인터뷰를 보도한 KBS가 MBN에 원본 영상을 넘겨, KBS에서도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 MBN을 통해 방송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기자들이 반발하자, MBN의 영상 협조 요청을 승인한 보도국 간부들은 결국 공개 사과를 하기로 결정했다.

▲ 12일자 KBS <뉴스9> 단독인터뷰

KBS <뉴스9>는 지난 12일 <[단독] ‘땅콩 회항’ 사무장 “욕설에 폭행…무릎까지 꿇었다”> 리포트를 통해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의 첫 육성 인터뷰를 보도했다. 박창진 사무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폭언을 들은 것은 물론 서비스 지침서 케이스 모서리로 손등을 수차례 찔러 상처가 났으며, 무릎 꿇린 채 모욕을 당했다고 밝혔다. 또한 회사 쪽에서 지속적으로 거짓진술을 할 것을 강요했다고 전했다.

땅콩 서비스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회항시켜 이미 거센 비난을 받았던 조현아 전 부사장의 ‘폭언’과 ‘폭행’ 사실이 추가로 드러난 탓에, KBS의 보도 후폭풍은 컸다. KBS의 단독인터뷰 내용은 삽시간에 많은 언론에 인용보도됐고, 이후 SBS 등 타사에서도 박창진 사무장 인터뷰를 보도했다.

그런데 KBS의 단독인터뷰 원본영상이 MBN에 통째로 넘어가는 일이 발생했다. MBN이 KBS에 영상협조가 가능한지 물었고, 보도영상국의 석종철 영상취재부장이 최재현 사회2부장에게 이를 문의한 결과 최재현 부장이 이를 승인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기자들 반발에 ‘공개사과’ 결정

더구나 이 과정에서 취재기자와의 접촉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독인터뷰를 보도한 기자는 박창진 사무장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방송 원본이 나간 사실을 알게 됐다. 박 사무장은 KBS와 한 인터뷰를 타사에 넘긴 것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고 한때 ‘앞으로 KBS 취재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까지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KBS 기자들의 반발은 컸다. “특종을 헐값 취급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등 사내 게시판에 이번 일을 성토하는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기자들은 보도 가치가 높은 단독인터뷰 영상이 촬영 원본 그대로 타사에 공유됐다는 점, 이 과정에서 취재기자의 의사가 무시됐다는 점, 취재원 보호 원칙을 지키지 못한 데다 취재원과의 관계도 틀어져 추후 단독보도의 기회까지 무산된 점 등을 거론하며 최재현 부장과 석종철 부장에게 자세한 경위 설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기자들의 문제제기가 지속되자, 17일 오후 KBS기자협회 김철민 협회장은 강선규 보도본부장, 정은창 보도국장을 면담했다. 김철민 협회장은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사내 게시판에서 기자들의 비판이 이어진 만큼, (두 부장이) 게시판에 경위 설명과 공개사과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한 “(영상 유출은) 1차적으로 저희들이 잘못한 것이기 때문에 담당 부장이 (박창진) 사무장에게 직접 사과를 드렸다. 편집본을 주기로 한 것인데 커뮤니케이션 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사과말씀을 드렸고 다행히 취재원과의 관계가 회복됐다”고 전했다. 이어, “대한항공 측에도 (KBS 인터뷰를 문제 삼아 박 사무장에게) 신분상의 불이익을 주는지 지켜보겠다는 입장도 전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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