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정배 의원 : 건물 관리자의 요청이 없어도 경찰을 투입힐 수 있다고 답변한 것 같은데…
= 이철성 영등포경찰서장 : 방송사 내부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이 있을 때 경찰서장이 판단해 경찰력을 들여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천 : 요청이나 허락이 없어도 경찰 스스로 판단해 들어갈 수 있다? 중대한 발언이다. 확신 있느냐?
= 이 : 자신 있다.
- 천 : 증인이 투입을 결정했고, 상부 지시는 없었는가?
= 이 : KBS에 들어가면서 보고했다. 상부에 보고하고 지시받을 시간이 없었다.

▲ 지난 8월8일 오전 정연주 사장 해임권고안 처리를 위한 KBS 임시이사회 개최를 앞두고, 경찰 수백명이 방송사 안에 들어가 회의장으로 통하는 길목을 차단한 채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윤희상
지난 13일 KBS에 대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오간 대화다. 지난 정권 법무부 장관을 지낸 국회의원과 ‘일개’ (그의 인격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공권력을 대표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경찰서장의 공방이 힘의 기울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팽팽하다.

경찰서장을 이처럼 당당할 수 있게 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의 말대로라면 ‘경찰관직무집행법 6조’다.

“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目前)에 행해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발하고, 그 행위로 인해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

이 조항은 경찰에게 ‘전가의 보도’다. 광화문 도로 한복판을 명박산성으로 완전히 차단할 때도, 경찰은 이 조항을 들이댔다. 지방의 농민이나 노동자들이 탄 관광버스를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가로막을 때도 마찬가지다. 집시법에 따라 무슨 집회든 불법으로 규정하고, 그 집회에 참가할 가능성조차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해지려고 하는 상황’으로 설명하면 그만이다.

물론 경찰의 자의적인 확대해석, 제 논에 물대기일 뿐이다. 제동이 걸리는 것도 당연하다. 모든 야간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무조건 경찰권을 발동하던 관행은 최근 법원에 의해 위헌심판이 제청됐고, 불법 상경집회를 예방한다며 전국에서 관광버스를 돌려세우던 스펙터클 액션은 위법이라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사실, 이런 행위가 합법이 되려면 경찰은 ‘천리안’에 ‘족집게 도사’여야 한다. 서울에서 한나절 뒤에 벌어질 일을 전남 해남에서 목전의(눈앞에서 지금 당장 벌어지는) 사태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도 경찰은 국감장에서까지 ‘경찰관직무집행법 6조’를 되뇐다.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경찰서장의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판단하는 건 뒤로 미루자. 지난 8월8일 아침 상황이 ‘KBS 사원행동 사람들이 KBS 이사들의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현저한 상황’이었다는 얘긴데,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강제 철거 현장에서 용역깡패들의 폭력이 벌어질 때나 사업장 안에서 구사대 폭력이 벌어질 때, (그토록 도와달라고 하는 폭력 피해자들의 호소를 싸늘히 외면하기만 했던 태도에서 환골탈태해) 얼마나 전광석화처럼 범죄 예방에 나설는지.

▲ 지난 8월 KBS본관에 경찰병력이 투입 됐을 당시 로비에서 경찰들이 한가롭게 TV를 시청하고 있다ⓒ윤희상
또한 지켜볼 일이다. 경찰이 국가기간방송시설을 휴게소처럼 드나들 앞으로의 나날들을. 대한민국 경찰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최첨단 범죄 예방 시스템 ‘프리크라임’보다 훨씬 뛰어난 천리안 족집게 실력으로, 잠재적 범죄 구역인 국가기간방송사에서 불철주야 범죄예방활동에 나설 테니까.

경찰력을 불러들여 그런 빌미를 제공한 유재천 이사장과 권혁부 이사를 비롯한 KBS이사회, 다른 사장이라면 경찰서장 문책이라도 요구했을 사태를 수수방관한 이병순 사장, 그리고 침묵으로 일관한 KBS노조는 앞으로 방송사 안에서 전경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도 타고, 즐겁게 커피도 나눠 마시고, 구내식당에서 식사도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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