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세력과 종편에 의해 ‘종북 토크쇼’로 비난받은 '평양에 다녀온 그녀들의 통일이야기' 토크 콘서트가 백색테러에 의해 저지됐다.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은 10일 오후 7시부터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다. 콘서트 시작한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 익산의 한 고교 3학년 A(19)군이 황 등 인화물질을 양은 냄비에 담아 불을 붙이고 강연자들을 향했다. A군은 주변 사람들에게 제지당했고, 그 과정에서 인화물질이 바닥에 떨어져 폭발했다. 관객 200여명은 긴급 대피했고 행사 스태프 1명과 원광대 이재봉 교수 등이 화상을 입었다.
익산경찰서에 따르면, A군은 황, 질산칼륨, 정린, 설탕 등을 섞어 해당 폭발물을 직접 준비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당시 A군 옆에 앉아 있던 조상규 전북 농민회 의장이 “행사 중간에 한 성인 남성이 A군을 데리고 들어왔고, A군은 고량주를 마시는 등 술이 취한 상태였다"라고 증언하는 등 정확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 10일 오후 8시 20분께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씨의 토크 콘서트에서 고교 3년생 모군이 인화성 물질이 든 냄비를 가방 안에서 꺼내 불을 붙인 뒤 연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른 관객에 의해 제지됐다. 이 사고로 매캐한 연기가 나면서 관객 2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연합뉴스)
A군은 9일 오후 애니메이션 관련 커뮤니티 '네오아니메' 사이트에 <드디어 인생의 목표를 발견했다>는 제목의 게시글에서 "집 근처에 신은미 종북콘서트 여는데 신은미 폭사당했다고 들리면 난 줄 알아라"고 글을 남기고 사제 폭발물의 재료로 추정되는 약품 사진을 게재한 인물과 동일인으로 추정되며, A군의 학교 교사는 그가 ‘일베’ 활동을 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폭발물 투척으로 인한 테러라고 규정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19살 소년이 미래 따위를 떠올릴 수 없다는 느낌에 ‘증오’에서 ‘인생의 목표’를 발견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사회의 심연을 들여다봐야 한다. 소년이 만든 사제 폭발물은 지금 상태로서도 위험하나 성분을 조금만 바꿨다면 인명 살상에 더 유용한 것이 되었을 거라 한다. 만약 배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 적당한 수위로 조절된 테러로 이 사회에 무슨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는지 캐내야 한다.
하지만 종편 방송과 뉴스 전문 채널의 해당 사안에 대한 보도를 보면 그들이야말로 이 테러를 종용한 이들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MBN>과 <YTN>은 이 사건에 대해 ‘황산테러’와 ‘일베’라는 자극적인 키워드를 뽑아 기사를 양산한다. 이는 두 방송국의 목표는 선정성일 뿐 특정한 정치성의 강화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는 하다. <TV조선>은 이 사건에 대해 ‘폭죽 투척’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위에 묘사한 사건은 결코 ‘폭죽 투척’의 수위가 아니다. 그렇다고 ‘황산테러’라고 불리기는 과하다.
▲ 재미동포 신은미(왼쪽)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10일 오후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릴 토크 콘서트를 앞두고 "토크 콘서트는 통일운동의 하나"라며 항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언론들은 어땠을까. ‘종편 중 유일한 제정신’을 컨셉으로 잡는 <JTBC>는 ‘인화물질 테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역시 이번에도 그 컨셉을 실현했다. <연합뉴스TV>는 ‘인화물질 투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실 전달은 했지만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가치평가의 차원에서 다소 축소했다고 평할 수 있다.
<채널A>는 “연기 ‘펑’ ”이란 제목으로 이 사건을 전했다. <TV조선>과 <채널A>는 이 사건에 대한 기사 자체가 매우 적으며 오히려 검찰의 신은미씨 소환 기사나 신변위협으로 인한 토크쇼 취소 기사가 보였다. 두 방송사의 정신세계엔 ‘종북’을 때리는 건 폭행이 아니라 애국이라는 백색테러리스트들의 인식이 있거나, 그런 이들이 그들 방송의 주시청자란 인지가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두 방송국보다 덜 정치적이고 덜 막나가는 몇몇 방송국들은 이 사태의 책임을 ‘일베’로 돌리고 싶어 하는 듯하다. 혹은 ‘일베’를 경멸하는 다수의 입장에 서서 한 번 더 장사를 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이 사건이 벌어진 데엔 언론, 특히 최근 방송의 선정성을 주도하고 있는 종편방송과 뉴스채널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 10일 오후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릴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의 토크 콘서트를 앞두고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재미교포 신은미씨의 북한에 대한 발언은 순진무구하다고 봐야 할 것이고,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의 과거 행태에선 그의 사상을 의심하게 할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북한에 대한 미화가 있는 토크 콘서트가 범죄라고 볼 수도 없고, 체제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종편방송과 뉴스채널들은 전문가 패널이랍시고 떠드는 이들을 불러 모아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그래도 북한을 미화하는 건 안 된다”라고 떠들어대곤 했다.
그랬던 그들이 사건 기사 제목을 통해 이 사건을 ‘일베’ 탓으로 몰거나 안간힘을 다해 축소하려고 드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언론윤리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황당한 일이다. 그들의 태도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이 문제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볼 때 우리가 감내해야 할 사건들은 이게 다가 아닐 거라는 불길한 예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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