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미디어스

Updated 2022.1.17 월 18:19
상단여백
HOME 뉴스 비평
‘조현아 행패, 땅콩 리턴’으로 들켜버린 한국 사회의 '민낯'전문직 ‘하인’ 취급하고, 서비스 노동 ‘하대’하는 나라
한윤형 기자 | 승인 2014.12.11 07:39

결국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사표를 제출했다. 대한항공은 조현아 부사장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조직에 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사표를 냈다고 밝혔다. 조 부사장은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 자리도 내놓을 예정이며 사표 수리 여부는 곧 결정될 거라고 한다. 조현아 부사장은 전날 보직에서 사퇴했으나 대한항공 부사장과 등기이사 자리는 유지하기로 해 '무늬만 사퇴'라는 비판을 받았다.

조현아 부사장의 사퇴 제출은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대한항공이 이 사건에 대한 내외신의 뜨거운 관심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 부사장에 대한 외신의 관심은 ‘역대급’이었다. 조 부사장은 며칠 만에 부정적인 측면에서 ‘강남스타일’의 싸이에 버금가는 국제적 지명도를 얻게 됐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선진국 언론이 조 부사장의 ‘행패적 기행’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세계시민의 관심도 드높았다. 미국 <뉴욕타임즈>에선 9일 많이 본 기사 5위에 올랐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선 큰 비중으로 다뤘다. <파이낸셜타임즈>는 기업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컴퍼니앤드마켓’ 섹션 1면에 조현아 부사장의 사진을 3단으로 실었으며, “한국 국민들은 갈수록 재벌그룹 일가가 누리는 사회·경제적 특권에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고 한다. 일본의 누리꾼들은 이 사건을 만화로 그려냈다.
 
   
▲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가 지난 9월 3일 오전 인천시 중구 그랜드 하얏트 인천 웨스트타워에서 열린 개관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10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은 "요즘 한국에는 '허니버터칩'이라는 과자가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에어아시아가 한국에서 허니버터칩을 많이 확보해 소주와 함께 기내 서비스로 제공하길 바란다"고 말한 후 "다만 허니버터칩은 봉지로 제공될 것이며, 접시에 담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조현아 부사장을 조롱했다. 
 
내외신의 뜨거운 관심의 배경엔 물론 이 사건의 희귀함이 해외토픽에 걸맞다는 점, 조회수 경쟁을 일삼는 한국의 언론환경, 그리고 재벌가 오너 세습경영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질 것을 우려한 각 기업 홍보팀의 전전긍긍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보도홍수를 단순히 그러한 가십에 대한 관심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내외신의 관심의 동력에는 ‘이젠 제법 유명해진 나라, 한국 사회가 작동하는 방법에 대한 호기심’과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분노’가 섞여 있다. 어쩌면 세계시민들은 조현아 부사장의 ‘행패’ 속에서 매우 독특한 방식의 선진공업국으로 자라난 한국 사회의 어떤 본질적인 부분을 보았다고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는 점은 참여연대의 대응을 봐도 알 수 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는 10일 오후 서울서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항공의 사과문을 정면 반박했다. 참여연대는 "내부 증언과 대한항공 노조 등에 따르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 부사장은 이미 상당히 흥분한 상태로 여성 승무원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고함을 퍼부었다"고 공개했다.
 
   
▲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오른쪽) 등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10일 '땅공 회항' 논란을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을 업무방해 및 항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서 참여연대는 "오너의 친딸이 화를 내자 다른 직원이 '죄송합니다, 저의 잘못입니다'라고 말을 했고, 그러자 이번에는 '너는 또 뭐냐'며 욕설과 고함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또 참여연대는 "대한항공은 사무장을 항공기에서 내리게 한 것이 기장과 협의한 행동이었다고 해명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면서, "일방적으로 사무장에게 '야 이 XX야, 빨리 기장한테 연락해서 후진하고 너 내려'라는 식이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6일 오후께 한국에 도착했는데 대한항공 측이 직원들에게 당일 밤 늦게까지 거짓 진술을 강요하고 경위서를 받았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당시에는 병가를 허용해주지도 않다가 8일 사과문을 발표한 뒤 사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이자 그때야 병가처리를 해줬다"고 주장하면서, "직원이 당시 기내에서 '큰 잘못'을 했고, 태블릿PC 암호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거짓말을 해 항공기에서 내리게 했다는 대한항공의 사과문은 100%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기자회견 후 항공법 위반·항공보안법 위반·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강요 등의 혐의로 조현아 부사장의 주소지인 용산구 이촌동 관할인 서부지검에 고발했다.   
 
한국에서 터져 나오는 기사들도 조현아 부사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의 행태를 고발하는 누리꾼들의 주장을 소개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반적인 이슈에 대한 보도처럼 내용 없는 누리꾼 반응을 거듭 소개하거나 지난 내용을 다시 짜깁기하는 기사는 아니다. 한 언론사 기자는 “오히려 매체비평지가 ‘조회수 경쟁’이란 틀로 언론을 바라보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 건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재벌가 오너 일가의 일탈을 하나하나 소개해주는 공익적인 측면이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9일 오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조 회장은 최근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사건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고객들에게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 모든 과정을 조사한 후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또한 이 건에 대해서는 인터넷 게시판의 반응을 소개하는 것조차 공익적인 측면이 있다. 기업주나 사용자들의 ‘갑질’을 언론사에 직접 제보하려는 ‘용기’는 한국 사회에서 수시로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언론사는 일반적인 취재로는 오히려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 차라리 ‘대나무숲’ 류의 발언들을 신빙성 있는 것들을 추려서 소개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세태’를 보여주는 일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평소와 같이 문제를 일으킨 한 두 명에 대해서 ‘마녀사냥’ 수준의 분개를 쏟아내는 것을 넘어, 이것이 우리 모두의 행위가 얽힌 구조적인 문제란 점을 스스로 성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슬로우뉴스>에 실린 “하와이안 항공의 추억”(링크) 에서 보이듯, 사람들은 단지 재벌가 오너의 인성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갑’들의 ‘갑질’의 ‘공굴리기’ 식 전가 속에서 우리도 그것에 동참하고 있고 거기에 지극히 익숙한 우리의 태도가 우리 모두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정부와 재계는 부가 아래로 내려온다는 ‘낙수효과'를 선전했지만, 아래로 내려오는 건 “손님은 왕이다” 류의 ’갑질‘ 뿐이었고, 이 체제에선 우리도 ’호구‘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걸 다시 내려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코미디 빅리그>의 ’갑과 을‘이 보여준 것도 그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한국 사회의 체제가 지극히 피곤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이제 일부 지식인이나 담론의 영역을 넘어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직감처럼 다가오는 일이다. 
 
이번에 우리는 “전문직들을 서비스업처럼(만) 대한다”고 푸념하는 우리 시대의 전문직들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안전’을 다루는 고도의 숙련노동자들을 ‘막 대하는’ 조현아 부사장의 태도는 비판받을 일이다. 그런 조 부사장이 ‘안전’과 ‘서비스’를 점검했다며 ‘안전’을 슬쩍 끼워넣는 변명을 대신 한 대한한공의 태도에서도 서글픔을 느낄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전문직들을 서비스업처럼 대한다”를 넘어 “서비스업도 그렇게 대해선 안 된다”는 합의가 가능한 사회를 꿈꾸고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윤형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우) 07238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인 : 안현우  |  개인정보책임자 : 안현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수현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 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안현우 02-734-9500 webmaster@mediaus.co.kr

미디어스 후원 계좌 안내 : 하나은행 777-910027-50604 안현우(미디어스)
Copyright © 2011-2022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