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날 서울 테헤란로에서 ‘군대폐지 누드시위’를 펼쳤던 강의석씨가 “서해교전 전사자는 개죽음을 당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써서 다시 논란의 한 가운데 섰다.

13일 밤 미니홈피에 게시한 논란의 글은 ‘“서해교전에서 전사하신 분들도 개죽음 당한 것이냐”고 묻기에 “응. 개죽음 당한 거야” 라고 답했다’고 시작된다. 게시판을 통해 진행돼오던 네티즌과의 논쟁에 대한 강씨의 반박글인 셈이다.

▲ 미니홈피 게시글 화면 캡쳐

강씨는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해 ‘김영삼 정권 당시 이양호 국방장관은 “NLL은 어선 보호를 위해 우리가 그어놓은 것으로 (북한측이 넘어와도)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다’라고 했고, 미국 국무성도 서해를 분쟁해역 또는 공동해역이라 얘기한다. NLL은 53년 유엔사령관이 남한 배가 북쪽을 더 이상 넘지 못하게 임의로 설정한 선인데, 남한이 사실을 왜곡해서 자기 바다라고 주장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며 ‘불필요한 죽음’의 근거를 댔다.

또한 당시 상황을 ‘연평대첩’이라며 추켜세웠던 조중동을 비판하기도 한다. 강씨는 “1999년 1차 서해교전에서 30명이 넘는 북한 병사가 죽고 2척의 배가 침몰되자, 조중동은 이를 ‘연평대첩’이라며 자랑했다. 남한의 피해가 컸던 2차 서해교전에선 언론은 군 고위층과 북한 욕을 해댔다”며 “남북한 구별없이 그 병사들은 왜 죽어야 했나? 또 언론은 뭘 잘했다고 떠들어대는가”라고 반문했다.

강씨의 글은 ‘서해교전’이라는 구체적인 사건보다는, “군대가 꼭 필요해?”라는 평소 자신의 평화주의 운동 주장과 논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남미 코스타리카에는 군대가 없다. 1949년 제정된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는 ‘항구 제도로서의 군대는 폐지한다’고 말한다. 유럽 룩셈부르크를 포함해 27개 나라도 군대를 없앴지만, 다른 나라가 함부로 침략하지 못한다. ‘우리는 휴전 상황인데 그 나라랑 우리랑 같냐?’는 목소리가 들린다. 물론 다르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다만 ‘군대 없는 나라가 가능하느냐?’는 확신에 찬 질문에 대답하기 위함이다. 그래, 군대 폐지가 한국 현실에서 이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개혁은 항상 이상을 따라가지 않았나? 노예제 폐지, 호주제 폐지, 여성 대통령.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라며 군대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라는 소신을 펼쳤다.

또한 “만약 미국, 북한, 중국, 일본이 쳐들어온다면, 또는 한국이 외국을 침략하거나 자국민을 죽인다면, 나는 옷을 벗고 완전 비무장으로 탱크 앞에 서서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외치겠다"며 평화주의 운동에 결의를 밝히기도 했다.

현재 강의석씨는 미니홈피에 올라온 수십여개의 반박글에 일일이 재반박하는 등 토론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다음은 강의석씨의 게시글 전문이다.

서해교전 전사자는 개죽음을 당했는가

개죽음: 아무 보람 없이 죽는 죽음.
"서해교전에서 전사하신분들도 개죽음 당한 것이냐고" 묻기에 "응. 개죽음 당한 거야." 답했다.

1999년 1차 서해교전에서 30명이 넘는 북한 병사가 죽고 2척의 배가 침몰되자, 조중동은 이를 <연평대첩>이라며 자랑했다. 남한의 피해가 컸던 2차 서해교전에선 언론은 군 고위층과 북한 욕을 해댔다.

남북한 구별없이 그 병사들은 왜 죽어야 했나? 또 언론은 뭘 잘했다고 떠들어 대는가.

북방한계선(NLL)은 군사분계선도, 영해선도 아니다. 그저 남한이 이를 '불법무단' 점거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니 우리가 '독도 관광'을 시작했듯이, 북한도 매년 NLL을 넘어옴으로써 남한의 땅따먹기를 막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김영삼 정권 당시 이양호 국방장관은 "NLL은 어선 보호를 위해 우리가 그어놓은 것으로 (북한측이 넘어와도)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했고, 미국 국무성도 서해를 분쟁해역 또는 공동 해역이라 얘기한다. NLL은 53년 유엔사령관이 남한 배가 북쪽을 더 이상 넘지 못하게 임의로 설정한 선인데, 남한이 사실을 왜곡해서 자기 바다라고 주장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해마다 꽃게잡이 철이 되면 NLL 위에선 남북 어선이 서로 많이 잡기 위해 뒤엉킨다. 남북한 군인들은 남북한 어선들을 위협하고, 1, 2차 서해교전도 그 과정에서 생겼다. 참사의 희생자들은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생각으로 전투에 임했겠지만, 그들의 행위는 '애국'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상대 또한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전쟁의 위험이란 결과를 만들었을 뿐이다. 누군가 그들의 죽음이 '개죽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들은 아무 보람 없이 죽었다, 즉 개죽음 당했다고 말하겠다. 슬픈 일이다. 그러나 불편하고 냉혹한 진실이다. 그리고 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군대가 꼭 필요해?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군대를 없애면 누가 나라를 지키냐?"는 질문이 들린다. 만약 당신이 평화를 위해 군대와 전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내가 살기 위해 우리 가족을 다 총으로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당신은 어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누군가 평화주의자라고 주장하면, 사람들은 대개 "누가 널 때리면 어떻게 하겠냐?"고 질문한다. 이 질문에 평화주의자는 대개 "맞겠다"고 대답했고, 그 이후엔 숙연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당황한 사람들은 "누가 네 여동생을 강간한다면?"이라는 새로운 질문을 만들었고, 어떤 대답이 나오든지 평화주의가 강간이나 폭력을 옹호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런 질문들은 논의를 하자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함정이다.

'현실'을 강조하며 평화를 '꿈'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군대가 없으면 안보가 불가능하며, 군대가 사회의 안전을 지킨다고 말하지만, 대체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머릿속 얘기도, 홉스의 책을 근거로 하는 얘기도 아닌, 역사의 기록에 있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지 듣고 싶다(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국민은 스스로 원하지 않는 한 전투에 참여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생각해 보자. 군대 왜 생겼을까? '왕권 강화'를 위해 군대가 만들어졌다. 상비군과 중상주의가 중세 왕권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이라는 거 세계사 시간에 다 배웠을 거다. 군대는 시민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권력을 위해 존재했다. 군대의 존재 이유는 '전쟁 없애기'가 아니라 '왕권강화'였고, 다른 게 아니라 군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유럽에서는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우리는 이미 국가 재정 전부를 국방비에 투자해도 중국의 군사력을 넘어서지 못한다. "군대를 없애면 누가 나라를 지키냐?"는 논리대로라면 우린 오래 전에 이미 중국이나 러시아의 속국이 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것은 물리적인 국방력의 대소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 군대가 있든 없든 전쟁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만약, 미국, 북한, 중국, 일본이 쳐들어 온다면, 또는 한국이 외국을 침략하거나 자국민을 죽인다면, 나는 옷을 벗고 완전 비무장으로 탱크 앞에 서서 "나를 밟고 지나가라" 외치겠다. 지난 국군의 날처럼 나 혼자 '평화' 누드를 한다면 개죽음 당할 게 분명하다. 바로 당신의 선택과 행동이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이라크 침략을 반대하는 캠페인에 전 세계에서 3,000만 명이 참여했다. 우리는 길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세계 시민 모두가 행복과 평화를 원하고 서로에 대해 방어할 필요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군대' 때문에, '애국심'과 '국익' 때문에, 그리고 3,000만 명을 제외한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이라크는 망했다. 군대는 우리를 이웃국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공격의 위험을 만들어내고 있고, 이웃나라를 침략하며, 우리의 삶조차 위협한다. 전쟁을 없애 버리는 길은 단 한가지다. 우리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군대에 가지 않는다면 결코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 평화는 선택이다.

남미 코스타리카에는 군대가 없다. 1949년 제정된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는 "항구 제도로서의 군대는 폐지한다"고 말한다. 유럽 룩셈부르크를 포함해 27개 나라도 군대를 없앴지만, 다른 나라가 함부로 침략하지 못한다. "우리는 휴전 상황인데 그 나라랑 우리랑 같냐?"는 목소리가 들린다. 물론 다르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다만 "군대 없는 나라가 가능하느냐?"는 확신에 찬 질문에 대답하기 위함이다. 그래, 군대 폐지가 한국 현실에서 이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개혁은 항상 이상을 따라가지 않았나? 노예제 폐지, 호주제 폐지, 여성 대통령.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만약 전쟁의 목적이 오로지 미국 자본주의를 위한 것처럼 발표되면,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득이 되지 않는 일임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따라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걸 강조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외교부의 기밀 문서 내용이다. 이처럼 전쟁은 언제나 명분을 만든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려, 세계를 대량살상무기 위협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9년에 걸쳐 32만 명을 파병했고 그 대가로 10억 달러를 받았던 베트남전쟁은 어떤가.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여 자기 잘못을 교과서에서 지웠듯이, 미국도 한국도 침략의 역사를 지우고 평화의 가면을 쓴다.

미국은 전체 예산의 51.6%를 국방비로 사용한다. 1년에 400조 원, 1분에 12억 원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 돈이면 영양실조에 걸린 50만 명의 어린이에게 1년 동안 하루 세 끼를 줄 수 있고, 집 없는 67,000명이 집주인이 될 수 있다. 한국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 한 해 국방비로 17조 원을 쓰고 있고, 북한은 2조, 중국은 20조, 일본은 40조를 사용한다. 경제학자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굶주림과 병을 치료하려면 1년에 15조 원이 필요하다. 세계는 군대 유지를 위해 매년 1,100조 원을 버리고 있다. 무기로 죽어간 사람들의 피로 자기 배를 채우는 무기 상인과 정치인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이 현실을 선택했다.

강남 테헤란로를 행진하는 탱크를 아기에게 보여주며 박수 치는 엄마. '나쁜 놈' '교활한 놈' 비열한 놈'이라 북한을 욕하며 3배 많은 간첩을 보내는 남한. 다른 국적을 선택했다고 입국 거부 조치 당한 연예인과 욕하느라 정신 없는 네티즌. 군 가산점제 비판하는 여대생을 강간하겠다는 글과 박수치는 댓글. 나는 미친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 당신도 죽으라고 강요하지는 않겠다. 다만,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전쟁중독과 평화. 무엇을 고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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