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무엇인지를 검색하면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대통령소속 자문위원회’라고 나온다. 하지만 지방자치발전위가 8일 발표하고 9일 많은 언론에서 보도된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이란 것을 보면 이것이 과연 지방자치를 발전시키자는 제안인지 의구심이 든다.

종합계획의 핵심은 서울특별시와 광역시의 자치구의회 폐지, 광역시는 구청장‧군수 직선제 폐지(시장이 인사청문회 거쳐 임명하는 방안 제시, 폐지가 어렵다면 현행 유지),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 정당 공천 폐지, 제주도서 운영되는 자치경찰 전국 확대, 교육감 직선제 추후 국민적 협의를 통한 개선(하지만 법률에 배치되고 헌법에도 맞지 않는다는 언급으로 폐지가 옳은 길이라 시사) 등이다.
이렇게 일별만 해도 알 수 있듯이, 지방자치발전위가 짠 종합계획은 거의 모든 것을 ‘폐지’하자는 것 뿐이다. 물론 한국 사회의 실정에 맞는 지방자치를 위해 손보아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폐지된 것을 보충하는 대안없이 폐지 안으로만 점철된 계획을 ‘중앙정치 재집중화 계획’이나 ‘지방식민지화 계획’으로 불러야지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이라 부를 수 있을까.
▲ 9일자 경향신문 5면 기사
9일 <조선일보> 사설의 내용을 꼼꼼히 봐도 이 종합계획의 ‘무리수’가 보인다. <조선일보>는 사설에 <지방자치 20년, 이제 손볼 때도 됐다>란 제목을 붙여 ‘큰 틀에서는’ 지방자치발전위를 지지하는 듯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사설이 지방자치발전위의 핵심제안 중 받아들인 것은 ‘서울특별시와 광역시의 자치구의회 폐지’ 정도다. <조선일보> 사설은 이에 대해 “이 구·군의회들을 폐지하면 기초의원이 수백명 줄어들어 그만큼 예산을 절약하는 효과가 있다”라며 지지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사설은 구청장 직선제 폐지 안에 대해서는 “대도시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생활권(生活圈)이다. 이런 곳에서 굳이 구(區)마다 구청장을 직선으로 뽑아 구(區)별 행정을 펴는 것은 행정 효율성을 해칠 뿐 아니라 같은 시민들 사이에 행정 서비스의 차별을 가져오는 부작용이 있다. 한편으로는 구청장을 직선으로 뽑으면 서로 경쟁을 벌여 문화·복지·환경 등 지역 발전을 부추기는 효과도 있어 어떤 것이 나은지 속단하기는 힘들다”라며 장단점을 함께 열거했다.
또 <조선일보> 사설은 “전국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의 정당 공천제 폐지” 문제에 대해서도 “그동안 특정 정당 공천이 곧 당선인 영남과 호남에선 일부 시장·군수들이 정당 실력자나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사실상 돈을 바치고 '당선증(證)'을 산 뒤 공천 헌금을 벌충하려고 인허가권을 남용해 부패를 저지르는 일이 반복돼 왔다. 그러나 정당 공천이 폐지되면 지역 기반은 없지만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공천을 줘 공직에 봉사하도록 하는 게 어려워진다는 문제점도 있다. 정당 공천 폐지의 문제는 이런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에 결정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 지난 11월 21일자 한겨레 4면 기사
결국 지방자치발전위는 ‘대통령소속 자문위원회’의 취지를 최대한 존중하려 한 보수언론의 사설조차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 제안들로 가득 찬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더구나 최근 보육문제와 학교 급식 문제로 중앙정부, 지방정부, 교육청이 서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실정에 지방재정을 어떤 방식으로 확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선 제대로 답변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치경찰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심화라 생각할 지도 모르나 예산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그 역시 ‘행정 떠넘기기’의 우려를 벗어날 수 없다.
1995년 김영삼 정부 때 도입된 지방자치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방향이 ‘지방분권’을 향해야지 안 그래도 극심한 ‘중앙집중’ 사회의 ‘중앙재집중’으로 가서는 곤란하다. 일부 부분에서 실용적인 이유로 선거를 줄이는 방향으로 간다 해도 이렇듯 큰 틀에서 지방자치를 훼손하는 논의를 제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지방자치발전위가 제시한 제안들이 대부분 첨예한 것들이라 의회를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매양 민생을 말하면서도 실상은 민생과 큰 관련이 없는 여러 가지 정치적 쟁점을 야당이 수용하기 대단히 힘든 방식으로 던져놓고, 국회에서 갈등이 심화되면 국회를 ‘잉여’ 취급하고 본인들의 근면함을 과시하는 한심한 정치행위를 해왔다. 그 결과 국회는 신나게 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2년 동안 정부는 허송세월이었다.
▲ 9일자 한국일보 8면 기사
결국 이 문제도 박근혜 정부가 지금껏 보여준 것처럼 ‘큰 그림’ 예쁘게 그리는 사람 따로, ‘큰 그림’으로 통과시키고 싶은 제도는 따로(교육감 직선제 폐지?), 복안이 넘어가서 의회에서 벌어지는 아수라장은 또 따로인 ‘따로 국밥’의 정국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이석기 내란음모죄 및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국사 국정교과서 부활 논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한반도평화프로세스’ 등 말만 화려했지만 한발짝도 진전이 없는 대북안보정책 등이 그렇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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