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이름과 설정에 이끌려, 다니엘 래드클리프 주연의 <혼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프랑스 출신의 알렉산드르 아야는 국내에서도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 화제였던 <엑스텐션>을 시작으로 줄곧 공포영화를 연출했습니다. 그것도 리메이크 위주로 탐닉했습니다. 웨스 크레이븐의 영화를 리메이크했던 <힐즈 아이즈>, 우리나라의 <거울 속으로>를 할리우드에서 리메리크했던 <미러>, 조 단테의 영화를 리메이크했던 <피라냐>까지, 일련의 공포영화에서 그는 인간의 추악하고 흉칙한 -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 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 와중에 알렉산드르 아야는 고집스레 B급 영화의 감성을 투영했으니 <혼스>도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스틸 사진만 봐도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나요? <혼스>는 여자친구가 죽자 용의자로 몰린 이그의 이마에 뿔이 돋아나는 것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악마의 상징이랄 수 있는 뿔이 난 이그를 보고도 마을사람들은 전혀 놀라지 않습니다. 놀라긴커녕 내면에 은밀하게 간직하고 있던 증오, 분노, 실망, 의심, 욕망, 질투 등의 사악한 감정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습니다. 이 판국에 오히려 당황한 건 이그였으나 이내 이 점을 십분 활용해서 진범이 누군지를 밝히려고 합니다.

<혼스>는 원작을 쓴 사람이 다름 아닌 스티븐 킹의 아들인 만큼 참신한 설정을 가진 영화입니다. 악마처럼 이마에 뿔이 난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혼스>는 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도입부에서부터 "그녀는 나의 에덴동산"이라고 하거나 "악마는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천사가 타락한 것이다"라는 대사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애틋하게 누워 있는 두 사람을 지나서 아래로 향하는 카메라는 이내 마룻바닥에 널부러진 이그를 상하 반전이 된 상태로 보여줍니다. 즉 조금 전에 내레이션에서 들었던 것처럼 이그가 바로 그 타락천사의 신세가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까지 가하자 그에겐 뿔이 돋아납니다.

사실 <혼스>가 가진 이야기의 본질은 좀 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신앙을 고취시킬 목적으로 삼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이그는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잃은 인물입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고 십자가 목걸이까지 걸고 있던 착한 여자친구가 왜 죽어야 했는지 분노하며 신을 경멸하기도 합니다. 이건 비단 이그만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우리가 신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품게 되는 연유와 그대로 닮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을 섬겨야 한다는 고지식한 설교를 따르는 대신, 이그는 매우 인간적(?)으로 증오와 분노를 토하는 바람에 악으로 돌변합니다. 심지어 청교도적인 금욕주의를 주장하고 싶었는지 "증오보다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말도 합니다. 여자친구의 십자가 목걸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와 결말까지 보면 <혼스>는 분명 종교적 세계관에 근거한 영화입니다.

<혼스>는 이런 목적을 가진 이야기에 뿔이 난 남자를 등장시켜 새롭게 꾸몄다는 것에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그것도 종교적인 내용을 그대로 풀면 거부감이 컸을 텐데 장르적으로 상쇄시키며 풀어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아야의 연출은 자신의 특기를 살리지 못한 채 멜로와 스릴러 그리고 공포라는 세 장르 사이에서 중심을 전혀 잡지 못하고 주저앉았습니다.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의 스릴이나 미스터리는 온데간데없고,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것과는 달리 <혼스>에서는 발칙하고 기발한 면모도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를 주도하는 건 여자친구와 이그의 관계지만 초반에 잘 일궜던 설정을 버려두고 이것에 천착하고 있으니 재미를 얻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이그의 마지막 선택은 사랑이 인간을 악으로 물들인다고 하는 것 같은데, 정작 그것이 이 영화까지 자멸시키고 말았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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