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인 어제 열린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마지막 공개변론은 26일 신문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26일자 <조선일보>의 1, 2, 3면, <중앙일보>의 3면, <동아일보>의 1, 2, 3면에 해당 사안을 다뤘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경우 각각 3면과 6면에 다뤘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지면에서의 관심과는 달리 사설에서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경우 해당 문제에 대한 사설이 없었다. 26일자 <동아일보>만이 <통진당 해산여부, 대한민국 국민의 시각으로 결정하라>라는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감이 떨어지는(?) 사설을 썼다.
▲ 26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동아일보> 사설은 “황 장관은 ‘제궤의혈(堤潰蟻穴·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이라는 고사를 인용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정당의 탈을 쓰고 활동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통진당 해산은 단순히 한 정당의 해산이라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고,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변론이다. 박근혜 정부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헌재에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라고 썼다. 정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했다.
또 <동아일보>는 “어떤 자유민주주의 국가도 민주적 기본 질서를 파괴하려는 정당이나 정치세력까지 용인하지는 않는다. 헌재가 대한민국의 미래와 헌법가치를 지켜낼 수 있도록 통진당의 위헌 여부를 엄정하게 가려낼지 지켜보고자 한다”라고 사설을 끝맺으며 헌재의 통진당 해산 판결을 종용했다.
진보언론은 지면에서 이 사안을 상대적으로 작게 다룬 것과는 별개로 사설에서는 적극적으로 주장을 했다. 26일자 <한겨레>는 <민주주의 침해·훼손 더 우려되는 ‘정당해산 심판’>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사건은 애초 제기되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주장했다.
▲ 26일자 2면 기사
<한겨레> 사설은 “1960년 우리 헌법에 들어온 정당해산 제도는 정당해산의 길을 터놓기보다 ‘정당의 자유를 좀더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됐다. 1958년 자유당 정부의 진보당 등록 취소와 같은 사태를 예방하려는 조처였다는 것이다. 헌법 분야의 유엔이라는 ‘베니스위원회’도, 위헌정당 해산 제도는 ‘민주주의의 적’을 분쇄하려는 것이라기보다 다수 정파의 권력으로부터 소수 정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당해산 제도가 자칫 정치적 다수세력이 소수자를 억압하는 수단이 되면 민주주의 체제를 방어하기는커녕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되레 침해된다는 인식에서다. 그래서 정당해산 제도는 ‘집행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럼에도 정당해산을 요청하려면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베니스위원회는 강조한다. 다른 조처로는 위험을 막을 수 없는지, 그 정당이 헌정 전복을 위해 폭력 사용을 실제 추구하는지, 그 폭력이 실질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불러오는 것인지 등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라고 사안을 설명했다.
또 <한겨레> 사설은 “그 기준대로 통합진보당이 헌정에 대한 명백하고 실질적인 위험으로 입증됐는지는 의문이다. 법무부 주장을 봐도, 통진당 일부 구성원들의 행태와 발언은 실제 폭력과 전복의 위험이라기보다 한심하다는 조롱거리에 가까워 보인다. 통진당 핵심세력이라던 아르오(RO)도 법원에서 실체를 인정받지 못했다. 통합진보당 강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 용어라는 정부 주장 역시, 이런 용어가 오래전부터 두루 사용됐다는 점에서 억지에 가깝다. 그렇게 ‘종북’을 문제 삼으려 한다면 정당해산이 아니라도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터이다. 정치적 주장의 표현에 시비를 하는 것 자체가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일 수 있다”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 역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과 민주주의의 미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별개로, 해산심판 청구는 부적절하다고 밝힌 바 있다”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 26일자 한겨레 3면 기사
<경향신문> 사설은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헌법 제8조 2항)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그 존립과 해산 또한 선거를 통해 주권자가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럽평의회 자문기관이자 한국도 회원국인 ‘베니스위원회(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는 정당해산과 관련한 지침을 채택한 바 있다.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이 지침에 따르면, 정당해산은 민주적 헌법질서 전복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거나 폭력 사용을 주장하는 정당에만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구성원의 개별적 행위에 대해 전체 정당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또한 덜 과격한 조치로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경우 해산해선 안된다. 한마디로 정당해산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게 요체다”라고 설명했다.
또 <경향신문> 사설은 “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한 직접적 계기는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이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법무부 주장은 대부분 무너졌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의 대남혁명론을 따른다며 그 근거로 이 의원이 관여했다는 RO(혁명조직)의 활동을 들었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고 RO의 실체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내란선동 혐의는 개인적·우발적 행위이지, 정당 전체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다수 견해다. 결국 정부의 심판 청구는 정당활동 자유를 보장한 헌법정신과 국제사회의 공인된 기준 모두에 어긋나는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왜 지면 보도에선 법정 공방을 크게 반영하였으면서도 사설을 쓰지 않았을까. 아마도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어찌 나올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통합진보당에게 ‘종북’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긴 것일게다. 최근 정부가 제기하는 많은 소송이 유죄에 대한 확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안 드는 상대방을 괴롭히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되고 있다. 보수언론의 ‘뜨거운 지면’과 ‘썰렁한 사설’이 보여주는 것 역시 그런 진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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