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대책과 공무원 조직 개편을 위해 각각 신설하기로 한 국민안전처와 인사혁신처 인사를 18일 단행했다. 두 부처는 19일인 오늘부터 업무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인사에 대해 환영의 의사를 표시한 언론은 사실상 <중앙일보> 밖에 없었다. 19일 <중앙일보>는 처장과 차관이 ‘군 출신’으로 내정된 국민안전처 인사에 대해선 논하지 않고 <민간 출신 인사혁신처장, 눈치 보지 말고 일하라>란 제목의 사설에서 신임 인사혁신처장을 독려했다. 이근면 내정자가 ‘삼성 출신’임을 알뜰 살뜰하게 배려하는 듯한 사설이다.
▲ 19일자 중앙일보 2면 기사
<중앙일보> 사설은 “정부의 발표 중 눈길을 끄는 건 인사혁신처장(차관급)에 관료 출신이 아닌 민간인을 기용한 대목이다. 초대 인사혁신처장에 지명된 이근면 전 삼성광통신 대표이사는 ‘삼성맨’이다. 삼성코닝·삼성SDS·삼성전자 등에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주로 인사 업무를 도맡았던 인사통이다”라고 소개하면서, “이 처장 내정자의 발탁은 참신한 시도다. (...) 이런 상황에서 공직 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책임을 맡게 된 이 내정자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크다”라며 호평을 남발했다. 기업 출신이 공무원 조직 개혁의 수장이 된 것에 대해 한 가닥 우려라도 전하며 균형을 맞출 만도 한데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다.
그러나 <중앙일보> 사설 역시 국민안전처 인사를 칭찬한 것은 아니란 사실을 감안하면, 이날 언론들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지 않고 이번 인사개편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고 봐야 한다. 일단 사설 제목들부터 그랬다.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사설 제목부터 <신설 조직 맡은 생소한 人物들에 대한 걱정>과 <국민안전처 장차관, 모두 軍 출신으로 채워야 했나>일 정도로 국민안전처 인사는 평가받지 못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박인용 안전처 초대 장관 내정자와 이성호 차관 내정자의 역량은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초대 장·차관을 모두 군 출신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안전처가 제 기능을 다하려면 구난(救難)·구조(救助) 활동의 체계화는 물론 재난 예방과 새로운 유형의 재난에 대한 대비 단계까지 가야 한다. 군 출신이라고 해서 이런 일을 못하란 법은 없겠으나 장·차관을 모두 군 출신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말이 나중에 나와서는 안 된다. 안전처가 안전 문제 하나만은 확실히 다져놓았다는 평가를 듣지 못하고 안전처를 왜 만들었느냐는 말을 듣게 되면 안전처와 함께 정권도 위기에 몰릴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 19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동아일보> 사설은 좀더 신랄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도입에서 “초대 국민안전처 장관으로 내정된 박인용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설명은 찬사 일색이다”라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현대 사회에서 안전 문제를 다루는 정부 측 최고책임자는 구조 구난뿐만 아니라 각종 재해에 대해 안전 관리를 치밀하게 수행하고, 가용 자원을 유기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지휘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해군 출신의 박 후보자가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빈발하는 대형 사고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특히 <동아일보> 사설은 “국민안전처의 장관과 차관이 모두 군 출신으로 채워진 것은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한 재난 대응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더욱이 국가의 외교 및 안보 사령탑(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안전 사령탑을 모두 군인 출신에게 맡긴 셈이 됐다”라고 비판하면서, 보수언론으로선 이례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은 ‘안보와 안전도 구별하지 못하는 상식 이하의 인사’라고 비판했다”며 야당의 비판까지 끌어다 쏘아붙였다.
<동아일보>가 이럴진대 중도‧진보언론들의 반응이야 명약관화했다. 19일 <한국일보>는
<'공룡조직 군사작전' 우려 앞서는 국민안전처>란 제목의 사설에서 “조직개편 과정에서도 누차 지적됐지만, ‘재난대응 체계의 통합’이란 취지에 걸맞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과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관련 조직을 한데 모아 덩치만 키운 꼴이 됐다. 더구나 장관-차관-차관급2본부 등 ‘옥상옥(屋上屋)’ 구조로 대형재난 발생시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을 악화시킨 부처-기관 간 엇박자가 조직 내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라며 조직개편 자체를 먼저 비판했다.
▲ 19일자 한국일보 3면 기사
이어서 <한국일보>는 “일각에서는 세월호 사고 직후 우왕좌왕하느라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 참사로 이어진 주 원인으로 지적된 만큼 ‘작전’에 능한 군 출신을 기용해 일사분란한 대응체계를 갖추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렇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국가재난관리는 사전 예방과 대비, 재난 발생 후 대응과 복구 등 4단계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각 단계별 유기적 연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난안전 컨트롤타워’라는 간판이 무색하게 대응에만 치우친 절름발이 조직으로는 재난관리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얘기다”라며 이번 인사를 비판했다.
같은 날 <한겨레> 역시 <‘군 출신 만능주의’ 인사를 우려한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장차관을 모두 예비역 장성으로 채우는 걸 보면서, 군 출신을 중용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아 몹시 우려스럽다”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번 인사를 넘어 인사 일반의 문제를 지적했다. <한겨레> 사설은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유난히 군 출신 인사들의 기용이 많은 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인사 직후에 ‘또 군 출신이냐’는 반응이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터져나오는 건 의미심장하다. 최근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우리 외교가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를, 외교안보정책 사령탑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군 출신 인사가 계속 맡는 데서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현 정부 들어 육군 참모총장 출신을 청와대 경호실장에 기용한 것도,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군부 실력자를 경호실장으로 쓰던 관행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야 대통령은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군 출신을 쓰지 말라는 게 아니라, 군 출신을 써야 마음이 놓인다는 생각이 문제다. 그게 바로 ‘군사문화’에 젖은 리더십의 속성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 19일자 경향신문 3면 기사
이어서 <한겨레> 사설은 “국민안전처란 거대 부처를 새로 만든 것은, 세월호와 같은 예기치 못한 참사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미래의 재난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최근 군에서 잇달아 터지고 있는 상식 이하의 사건·사고를 보면, 군 출신 인사가 복잡다기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재난에 얼마나 잘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설마 재난 대응을 군사작전 하듯이 밀어붙이면 된다고 청와대는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비판했다.
또 <한겨레>는 <중앙일보>가 찬양하고 다른 언론들은 제대로 비판하지 않은 인사혁신처 인사에 대해서도 “인사혁신처장에 삼성 출신의 인사전문가를 기용한 것도 적절치 않다. 청와대는 ‘공직사회 인사혁신을 이끌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지만, 효율성·실적을 최우선에 두는 기업 인사와 정책 수행의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공공부문 인사는 다른 점이 많다. 더구나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가장 공정해야 할 ‘인사’를 책임지는 자리에, 선거운동을 도운 재벌기업 출신 인사를 기용한다면 앞으로 누가 공직 인사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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