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세월호 참사' 이후 추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무회의 통과에 맞춰 관련인사를 단행했다. 해외 순방에서 돌아온 지 불과 하루 만에 새로 생기는 국민안전처와 인사혁신처 인사와 함께, 공정거래위원장‧통일부 차관‧행정자치부 차관‧ 방위사업청장의 임명을 단행했다.

국민안전처는 세월호 참사 이후 범정부 재난관리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신설되었고, 인사혁신처 역시 같은 사건에서 드러난 ‘관피아’ 척결의 의지를 구현하기 위해 설립된 부서다.
국민안전처는 처장과 차관은 군 출신인 가운데 실무자급엔 소방공무원과 경찰공무원을 뒀다. 박인용 국민안전처장 내정자는 해군3함대 사령관과 작전 사령관을 역임하면서 해상작전 분야에 풍부한 전문지식을 갖춘 작전분야 전문가로 합참 차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성호 국민안전처 차관도 국방대 총장과 육군 3단장을 지내고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군인 출신이다. 조송래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장은 30여년간 소방공무원을 역임한 인사며, 홍익태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장도 30년 경찰공무원 출신으로 각각 이 분야 전문가들이라 한다.
한편 인사혁신처의 경우 삼성SDS 인사지원실장과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연수소 소장,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인사팀장(전무) 등을 지낸 이근면 삼성광통신 경영고문을 인사혁신처장으로 내정하면서 공직인사 혁신과 공무원연금개혁 등을 위해 민간기업 인사 전문가를 데려왔다는 대체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 APEC·아세안·G20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전 서울공항에 도착해 환영인사들의 영접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로서는 이로서 지난 7개월 동안의 세월호 정국을 빠져나왔다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인사가 단행되기 전날인 17일 <조선일보> 31면에 <'듣기 좋은 거짓말'이 現場 망쳐… 생존자 나오기 어렵다고 인정했어야>란 인터뷰 기사를 보면 과연 그래도 될지 의문이다. 이 인터뷰 기사에서 반 년간 민간잠수사 40명 이끌고 세월호를 수색한 백성기 잠수총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세월호 수색이 난관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 "세월호 참사로부터 얻은 가장 큰 교훈은 '힘들수록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 / "그렇지 않으면 최초의 거짓말을 발판 삼아 또 다른 사기극이 판을 친다"
<조선일보>는 그의 인터뷰를 ‘다이빙벨’을 비판하는 데에만 써먹는다. 백성기 총감독의 발언에는 "세상 모든 일이 처음이 중요하다. 언론과 공무원들이 사고 초기에 했던 '듣기 좋은 거짓말'이 현장을 망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마지막까지 힘들었다. 세월호 내부에 에어포켓(산소가 남아 있는 공간·air pocket)이 있다느니, 최대 72시간까지 생존이 가능하다느니 하는 건 다 거짓말이다. 공무원과 잠수사들은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살리지 못한 죄인들로 여겨지고 있었다"라는 것이 있다.
지나고 나니 그의 증언이 옳다. 더 구체적인 발언도 있다. 백성기 총감독은 외국의 ‘에어포켓’ 생존 사례에 대해 "그건 격실이 철재로 이뤄진 배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격실을 목재로 만든 세월호는 에어포켓이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잠수사들이 내쉰 공기방울로 천장에 한 줌의 에어포켓이 생겼지만 그것도 금세 사라졌다. 힘들더라도 사실을 말했어야 이후에 사고 수습을 어떻게든 할 수 있었는데, 처음에 했던 거짓말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라고 주장했다.
또 백성기 총감독은 ‘다이빙벨’ 이종인의 주장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사기다. 사기를 사기라고 말할 수 없게끔 몰아간 사기극이다. 그것 때문에 수색 시간을 손해 봤지만 차라리 그렇게라도 거짓이 드러나 다행이다. 당시 분위기는 다이빙벨을 투입 안 하면 나머지가 단체로 거짓말하는 걸로 몰려갔다. 그걸로 안 된다는 걸, 20시간 잠수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라고 비판했다.
▲ 17일자 조선일보 31면 기사
백 감독은 "당신이 만약 사고 대책본부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마음 아프더라도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만 인정했어도 사고 초기 공무원들이 당한 조리돌림 등 대혼란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백성기 총감독은 인터뷰 이후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미안하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2의 사고를 생각해서 인양은 포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어차피 인양도 잠수를 해야만 하고, 사고가 날 확률은 수색할 때보다 더 높습니다. 인양하러 들어갔다가 인명 사고가 나면, 그 아까운 목숨은 어떻게 하나요?"
우리는 비록 <조선일보>에 실린 인터뷰 기사라고 해도 사태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런 증언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하지만 ‘다이빙벨’이 여전히 진실을 추구했다고 어떤 사람들이 믿고 누군가는 이 믿음을 부추기는 현실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지만, ‘다이빙벨’이란 논리를 가능하게 한 ‘에어포켓’에 대한 믿음은 누가 유포했는지 혹은 누가 방관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방금 인용한 백성기 총감독의 발언에도 그것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주어’만 옮겨봐도 “언론과 공무원들”이다. “사고 대책본부장”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참사를 돌이켜보면, 정부는 ‘에어포켓’에 대한 추정으로 시작된 희망고문에 제동을 건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정부가 받은 비난, ‘다이빙벨’, 각종 음모론까지 바로 이 토양에서 자라났다. 아직 안 죽었다니 총력 수색을 요구했고, 총력 수색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으니 온갖 방법론이 활개쳤으며, 결국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살리지 않는 것’으로 상상하게 되니 일부러 침몰시켰다는 황당한 음모론으로까지 나아갔다.
세월호 참사에서 승객들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은 사고 당일 해경이 출동하고 나서 몇 시간 정도였을 것이다. 해경에게 사람을 구하지 못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점도 그 정도까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경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는데, 그 ‘책임’ 역시 ‘당시 역량으로도 할 수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한 책임’과 ‘그 순간에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없었던 책임’을 나눠 물어야 할 것이며, 후자는 해경 대원 개개인의 책임은 아닌 시스템의 책임이 될 것이다.
상당수 상식인들은 참사 초기부터 사람을 더 이상 구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직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책임 있는 이들이 그 사실을 확인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공적으로 발언하기는 어려웠다. 수많은 사람의 열망에 기대어 ‘다이빙벨’처럼 다소 엉뚱한 논리로 정부 구조활동을 비판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음모론도 생겼다.
정부와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그 부산물만을 꼬집는다. 물론 논점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고, 당시의 상황에 대한 반성적 성찰 없이, 여전히 ‘다이빙벨’에서 진실을 보려고 하는 진보진영 일각의 태도엔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애시당초 ‘다이빙벨’의 기반인 ‘에어포켓’론을 정부가 동조 내지 방관한 근원적인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당시 정부는 유가족들이 정부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는 상황을 적당히 ‘관리’하기 위해 그 ‘희망고문’의 시기를 연장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줬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진실은 드러날 일인데, 나중에 어찌 감당하려나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할 수가 있다. 그들은 그렇게 넘어가면 <조선일보> 등이 이에 대한 인지의 문제를 정부 비판의 논점으로 취급하지 않고 국민 비판의 논점으로 취급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더라도 진보언론이 논점을 정확하게 잡고 물고 늘어지기 보다는 그들이 만들어낸 허상과 우상에만 집중하리라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상호와 이종인이 영웅이 되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책임은 흘러가 버리고 있다. 개각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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