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187명 중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이 끝났다. 대법원은 해고를 무효라 판결했던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하는 최악의 결론을 도출해냈다. 대법원 판결은 2009년 6월 8일에 이루어진 정리해고에 대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해고회피노력을 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로서 2심 판결로 하나의 돌파구를 찾는가 했던 쌍차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지난 11월 11일 쌍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거부하고 파업을 선언했던 2009년 5월 22일을 기점으로 한 정리해고 투쟁 2000일 기자회견을 진행한 바 있다. 11월 3일부터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열흘 동안 대법원 앞에서 24시간 진을 치고 하루에 2천배씩 올리는 시위를 벌였으나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17일 오전 10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긴급하게 열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 판결 관련 긴급좌담회> 참석자들은 해고노동자들 앞에서 활발하게 발언하기엔 마음이 무거운 눈치였다. 그러나 이내 대법원 판결과 정리해고가 너무나 쉬운 한국의 여러 제도들에 대한 성토가 시작되었다. 좌담회엔 임상훈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위원장,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 김경율 참여연대 공인회계사, 김수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 그리고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이 참석했다.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최근 대법원 판결 경향 때문에 사실 머리로는 기대를 크게 할 수 없었다. 판결이 나기 전 두 번은 좋은 꿈을 꿨고 두 번은 나쁜 꿈을 꿨다”라며 기대와 우려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던 대법원 판결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김태욱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 내용에 대한 참석자들의 질문에 대해 “법리적인 측면에선 대법원이 기존의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해서 해석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이번 판결에서 특별히 더 나쁘게 나아간 부분은 없다”고 답했다.
또 김태욱 변호사는 “말이 대법원은 법률심리라고 하지만, 많은 경우 대법원은 사실인정의 문제도 다룬다. 그리고 판단 근거도 몇 줄밖에 쓰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대법원이 임의적으로 판단하는 게 너무 많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김 변호사는 파기환송심에 대한 대응 방안에 대해선 “말씀드리는게 어떤 의미에선 해고노동자 분들에게 희망고문이 될까봐 주저스럽다”면서도 “대법원이 평가를 내린 부분을 우리가 환송심에서 다시 다룰 수는 없다. 다만 내세운 주장들에 대해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거나,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판단하지 않았던 새로운 주장을 제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파기환송심에서 판결이 뒤집혀지는 사례가 아주 없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 17일 오전 10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긴급하게 열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 판결 관련 긴급좌담회"에서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김태욱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문에 ‘경영판단’이란 문구가 나온다. 이 서술은 이 문제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한단 의미로 사실상 사법부가 판단을 안 하겠다는 뜻과 다름없다”고 지적하면서, “애초 회사 측의 논리가 긴박한 경영위기나 해고대상자 지정 자체가 경영판단의 영역이란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사법부가 정리해고 요건을 판단하는 일 자체를 포기하고 사용자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기는 조류를 드러내는 것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다만 김태욱 변호사는 “최근 조류가 그렇지만 해고대상자 선정 문제에 대해선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진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경율 참여연대 공인회계사도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김경율 회계사는 “회사 측 대리인들의 진술은 매번 바뀌었고 일관되지도 않았다. 법적 효력이 없는 ‘서명 없는 조서’를 회계법인이 증거로 제출하자 기가 막혀서 금융감독원에 확인을 했더니 자신들은 서명 있는 조서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후 회계법인은 다시 자신들은 서명 있는 조서를 금감원에 제출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의 전후맥락엔 이와 같은 거짓말이 가득차 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이들이 적법했다고 인정했다”고 개탄했다.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사법부의 문제를 벗어나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대단히 미흡함을 지적했다. 박은정 정책국장은 “사업장에서 일정 비율 이상 정리해고를 실시할 경우 그 계획을 고용노동부로 신고하는 시행령이 있다. 그래서 다들 그 시행령을 회피하는 비율로 정리해고를 한다. 고용노동부엔 해마다 15400명 정도를 정리해고하는 신고서가 접수된다. 하지만 실제로 해고되는 이들은 10만여 명이나 된다”라고 지적했다.
박은정 정책국장은 “경영상 이유, 라는 권리는 헌법에 나오지도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권리를 막을 다른 권리가 없는 실정이다”라면서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다루는 14개 사업장의 정리해고 문제가 모두 대법원까지는 갔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다못해 인권위가 정리해고에 대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지만 고용노동부가 거부한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박 국장은 “정리해고 실시 이후 여건이 나아지면 해고자에 대한 재고용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지만 재고용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큰 문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서 박은정 정책국장은 “곧 정리해고 제도 개선 투쟁을 위한 11~12월 일정을 잡기 위한 민주노총 상집회의가 열릴 예정이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 17일 오전 10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긴급하게 열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 판결 관련 긴급좌담회"에서 김득중 쌍용자동차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2심에서 3심까지 2~3년 걸릴 줄 알았다. 우리가 알아본 바로 1심과 2심 판결이 뒤바뀌었거나, 비용이 많이 들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경우엔 그 정도 걸린다고 들었다. 그래서 2015년 혹은 2016년에 판결이 날 걸로 예상하고 투쟁을 준비 중이었다. 11월에 갑자기 판결 날짜가 잡혀서 열흘 동안 이천배 투쟁을 시행했다. 대법원 앞에 붙어 있는 ‘자유, 평등, 정의’란 말이 눈에 밟혔다”라고 담담하게 밝혔다.
하지만 김득중 지부장은 “지난 토요일 평택 공장 앞에서 문화제를 진행했다. 이제 6번째 겨울을 맞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겨울이다”라면서 “정리해고 남용 및 악용이 쌍용자동차만의 문제는 아니란 생각으로 그간 40일 넘게 단식하거나, 송전탑에 100일 넘게 올라가거나 하는 식으로 투쟁해 왔다”라며 향후 투쟁 방향에 대한 고민을 시사하기도 했다.
임상훈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장은 “이제 법원 판결이 나왔으니 사법적 문제에만 집중하지 말고 다양한 방식의 해결방안들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고용노동부를 압박한다든지, 또 사측에 약속을 지켜라 압박한다든지, 그리고 투쟁하는 이들에 대한 지원도 다시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5년, 6년을 넘어 10년도 버틸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정우 전 쌍용자동차지부장은 “어떻게 조직해서 어떻게 싸워야 좋을는지를,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나 쌍용자동차지부에만 맡길 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고민하고 제안해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하늘에 갈거냐, 곡기를 끊느냐, 아님 어딜 점거하느냐를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극한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삼보일배 같은 걸 해서는 뭐가 잘 안 된다. 다른 대응이 가능하다면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조언해주셨으면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대법원 판결의 편향성을 어떻게 시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노동법원 설립, 대법관 성향 다양화, 로펌과 고용노동부 금융감독원 등에 대한 견제 감시 등의 대안을 나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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