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국 사회는 여론지형으로 본다면 근 이십년 동안 가장 안정적인 ‘보수의 전성시대’다. 문자매체에선 ‘조중동’의 ‘한경프오’에 대한 우위가 여전히 공고하고, 영상매체에선 지상파는 순치되었으며 종편은 ‘썰렁 현란 요란 야단’ 저널리즘으로 ‘진보’를 ‘친북’으로 규탄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현재 한국의 보수 진영에는 이명박 정부 시대의 박근혜는커녕 김대중 정부 시대의 이회창만큼의 영향력을 갖춘 리더도 없다. ‘반기문’ 열풍은 야권의 대안부족 뿐만 아니라 여권의 대안부족도 보여준다. 포장하자면 춘추천국시대겠으나, 냉정하게 말하면 ‘호랑이 없는 정치골 여우들의 각축’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대표로 선출된 이후 ‘무대’(‘무성 대장’의 준말)라 칭해지는 특유의 리더십으로 ‘한 칼’을 보여줄 듯했다. 하지만 자신 이외의 구심점을 용납하지 않는 완강한 대통령과의 대립은 그의 입지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다. 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적자’라고 볼 수 있는 그의 처신은 90년대가 아닌 2010년대 한국 사회에선 다소 위태로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 많이 낳은 순서대로 비례대표 주겠다”는 발언에 드러나는 감수성에 학을 뗄 이들은 소위 ‘진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적어도 그런 종류의 ‘마초성’에 질색할 정도로는 변화해왔다.
그 ‘무대’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영입해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에 앉힌 상황은 정치권에선 소위 ‘문무합작’이라 불린다. 대통령과 각을 세워 불안해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비박’을 규합시키기 위해 단행한 ‘신의 한수’다. 그러나 김문수 위원장은 본인도 ‘대권 행보’를 해야 할 처지다. 김무성 대표와 별도의 계산을 하며 발언을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인생 내내 줄곧 ‘변방’에서 ‘중심’을 노려온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중심’을 ‘화공’으로 불태울 ‘동남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문수와 홍준표, 두 사람은 야권의 포퓰리즘을 비판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포퓰리즘을 만들어내고 편승하려 한다. 일견 포퓰리즘에 부응하면서도 현실 권력의 우군을 만들어내기 위한 ‘뒤집기’를 감행한다. 포퓰리즘은 대체로 무언가 힘있는 것을 때려 부수는 것을 욕망하나, 권력을 잡기 위해선 부수면서 만들어가야 하고 함께 만들어가야 할 동료를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이 12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보수혁신특별위원회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문수가 기대고 있는 것은 ‘반여의도 포퓰리즘’이다. 국회의원의 특권을 때려부수고 싶은 대중의 욕망에 부응한다. 자신의 개혁안에 대한 반발을 ‘기득권의 저항’으로 규정한다. 개혁가들이 자신에 대한 정책적 반대자들에게 흔히 붙이는 ‘딱지’다.
그러나 김문수가 마냥 현직 국회의원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김문수 위원장은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 대해 “비례대표를 줄이고 농촌 지역구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본인이 그렇게 비판하던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비호하는 입장이다. 그에 대한 명분이 ‘농촌 지역구 보호’다.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가 인구가 많은 영남이 기반인 새누리당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고려했을 것이다.
이에 반해 홍준표는 정확히 김문수가 포퓰리즘을 사용하는 공간에선 포퓰리즘을 공격하고, 김문수가 포퓰리즘을 사용하지 않는 공간에서 포퓰리즘을 사용한다.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 자문위원이기도 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의 혁신안을 "노동운동을 할 때나 하던 생각"이라 폄하한다.
홍준표 지사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른 세비 삭감에 대해 "국회의원을 일용직 노무직처럼 회의 한번 빠지면 얼마 (돈) 빼겠다, 그건 째째한 것"이라고 비꼬았다. 그는 "(회의에 불참하는 국회의원은) 무노동 무임금이 아니라 다음 번 공천이나 (선거에서) 낙선을 시켜야 하는 것"이라며 "국회의원이 국가 지도자급인데 일당받는 노동자로 발상한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 10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경남지역 학부모·교육단체 대표 10여 명이 기자 회견을 열어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 결정을 철회하고 내년도 예산을 편성해 학교 급식을 정상화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지사의 발언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일단 ‘무노동 무임금 원칙’은 노동운동가의 발상이 아니라 자본가의 발상이다. 노동운동가라면 파업을 해도 임금이 지불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일용직 노무직처럼” 관리하려는 건 자본가이지 노동운동가가 아니다. 그래서 홍준표의 발언이 노동자를 비하했다는 정치성을 제껴놓고 보더라도 그의 발언은 앞뒤가 안 맞는다. ‘노동운동가’ 논변을 굳이 쓰고 싶겠다면 차라리 노동자들의 파업이 투쟁의 일환이듯 국회의원이 회의를 열지 않는 것도 정치투쟁의 산물이며 업무일 수 있으므로 업무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세비 차압은 부당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홍준표 지사는 파업의 권리를 존중해선 안 되는 정치적 입장을 지니고 있기에 국회의원을 노동자에 비해 ‘특권화’시키는 길을 택했다.
이 부분에서 홍준표 지사의 입장은 대중들의 국회의원에 대한 반감을 대변하지 못한다. 오히려 국회의원의 직능적 특수성을 내세우면서 그 반감을 비껴나가려고 한다. 비록 논거에 설득력이 없지만, 국회의원들의 심경을 대변했다.
홍준표 지사가 때려 부수려는 것은 다른 영역의 것이다. 진주의료원 폐업과 무상급식 예산 거부가 보여주듯 야권이 내세운 복지정책을 해체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오세훈처럼 섣불리 승산없는 싸움을 걸어 자기 자신과 진영에 해를 입히지도 않고,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바닥나는 시점에 갑자기 ‘말을 뒤집고’ 감사를 핑계로 예산 집행을 거부한다. 그는 ‘무상복지 포퓰리즘에 대항하는 전사’라는 이름의 ‘포퓰리즘적 전사’가 된다.
김문수와 홍준표가 기대고 있는 포퓰리즘은 각기 한국 사회의 현실을 드러낸다.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정치’가 자신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정치인’에게 소모되는 ‘비용’은 ‘아까운 것’이 된다. 김문수가 기대는 포퓰리즘이 바로 이 영역에 있다.
▲ 여야 혁신위원장들이 12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정치개혁, 어떻게 이룰 것인가'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정치똑바로특별위원장, 통합진보당 오병윤 원내대표. (연합뉴스)
한편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정치’가 자신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줄거란 ‘약속’에 대해서도 ‘냉소’한다. ‘약속’하고 실행해봤자 ‘예산’이 부족해지면 ‘철회’될 거라고 믿는다. 홍준표가 기대는 포퓰리즘이 바로 이것이다. 중앙정부의 잘못된 예산 조정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어려워진 것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복지 때문에 국가재정이 악화되었다’는 홍준표의 말을 직감적으로 믿는다.
이것이 여권의 전략이라면 이를 맞받아치는 야권의 전략은 무엇일까. 국회의원 정수 축소나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를 주장한 안철수 의원처럼 ‘우리편 김문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좀더 중요한 대응은 홍준표의 ‘도전’에 어떻게 ‘응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넘어, ‘부자 감세 서민 증세’를 실현하는 보수정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 “서민까지 증세를 하면 국가가 시민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활동을 펼칠 때다.
모든 영역에서 포퓰리즘적인 정치인도 불가능하고, 모든 영역에서 포퓰리즘을 반대하는 정치인도 불가능하다. 김문수와 홍준표의 포퓰리즘이 보수 쪽에서 각기 다른 영역을 대변할 때, 야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은 어떤 식으로 대중의 열망을 부여잡고 시대정신을 설파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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