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YTN 등 언론사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사 최초 노동조합은 어디일까? 1987년 10월 29일 독재정권 시절, ‘노량진 조기축구회’라는 가명으로 모여 창립대회를 가진 한국일보사이다.

올해로 창립 21주년을 맞는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사 지부(지부장 전민수)는 ‘해고 무효 끝장 투쟁’ 중이다. 2006년 9월 회사의 일방적인 제작국 분사로 인한 사실상 제작국 폐지와 구조조정 발표로 시작된 싸움은, 현재 노조와 회사 사이의 10여건에 달하는 법적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강제로 명예퇴직한 한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정리해고 및 징계해고 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 해고 무효 투쟁에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언론노조 한국일보 지부 사무실을 찾았다.

20년 명성에 비해 단촐한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를 반긴 전민수 지부장은 1988년 한국일보사 제작국 윤전부로 입사했다고 한다. 승소 축하 인사를 건네자 “이겼다는 실감이 잘 안 나요. 좋기는 많이 좋은데…”라며 멋쩍은 웃음을 건넨다.

- 이번 해고무효 소송 1심 판결이 ‘일부 승소’라는 보도가 나오던데.
= 전부승소는 아니지만 100% 가깝게 이긴 것이다.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법은 판결에서 회사가 2007년 1월 1일자로 통보한 정리해고 20명과 징계해고 3명에 대해 ‘무효’이고, ‘2007년 1월부터 판결일까지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 외 정직처분 무효가 기각됐다.

- 이번 승소에 대해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승리’라는 평가도 있다.
= 물론 회사의 항소 여부를 아직 알 수 없고 확정판결도 아니라서 섣불리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난 2년여간 장기투쟁을 진행해오면서 조합원들이 많이 위축됐는데, 이번 승소를 계기로 복직할 수 있다는 희망과 새 힘을 얻게 된 것이 기쁘다.

- 앞으로 남은 소송도 많다던데.
= 한 10여건 된다. 노조가 장재구 회장의 배임·횡령 고소, 해고 무효 소송, 한국인쇄(자회사) 근로자의 본사 소속 지위 확인 소송 등을 진행중이고, 회사는 역시 업무 방해를 이유로 한 퇴직금 가압류, 형사 소송 등을 계속하고 있다. 조합원들이야 하루빨리 복직해서 일하고 싶지만, 회사는 어떻게든 노조 탄압의 기조로 나서고 있으니…. 현재로는 조합원들과 함께 대법원 판결까지, 끝까지 가서 승리하는 수밖에 없다.

- 소위 ‘비합’시절, 언론사 최초로 노조를 설립한 곳이기도 하다.
= 독재정권 시절인 1987년 10월 29일,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 소년한국일보, 코리아타임스 등의 한국일보사 계열 기자들이 ‘노량진 조기축구회’라는 이름을 붙여 종로 서울YMCA 건물을 빌려 창립 발기인대회를 했고 당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 왔다.

- 20여년 역사에 비해 현재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 나중에 서울경제까지 포함해서 한국일보 5개 자회사가 같이 뭉쳐서 700여 조합원의 한국일보 노조를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90년대부터 조중동 중심으로 신문시장 구조가 재편되면서 사세가 기울었고, 2000년 4월 한국일보 편집국 조합원(기자)의 93%가 편집국 연봉제를 택하면서 대거 노조를 탈퇴했다.
이어 같은 해 일간스포츠와 서울경제가 별도 조합으로 분리해나가면서 조합원 수가 절반도 안되는 규모로 축소했다. 사측의 압박으로 코리아타임즈도 지난해 말 독자 노조를 설립했다. 현재는 소년한국일보와 한국일보 판매국 중심의 60여명 조합원들이 남아있다.

- 정권이 바뀌면서 YTN 등 일부 언론사 노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은데, 상대적으로 신문사 노조에 대해서는 덜 한 것 같다.
= 현재 해고 무효 투쟁 때문에 YTN 노조 등과 적극적으로 연대할 여력이 없어서 안타깝지만, 정부 정책이 언론노동자들의 반대에 부딪혀서 실패하는 정책으로 역사에 남을 거라고 본다.
오히려 YTN 노조 등의 투쟁을 보면서 한국일보사 지부가 그동안 조합활동을 더욱 열심히 했다면, 회사의 비리 사주와의 투쟁을 더욱 끈질기게 했다면, 대량 정리해고 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한국일보 노조의 재건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해고 무효’ 투쟁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 앞으로 준비중인 활동이 있다면.
= 작년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해고의 부당을 알리기 위해 150일간 1인시위를 진행했다. 참여했던 누군가는 ‘무관심 속의 1인 시위가 오히려 장기 싸움에 내공을 만들어주었다’고도 하던데…. 조합원들 생계 문제도 있고 해서 지금은 해고 무효 소송 등에 집중하고 있다.
8일 오후 회사와 2008 임단협 전체 교섭 1차 상견례를 가졌다. 회사와 대화 채널이 재개된 만큼 충분한 논의를 거쳐 복직 문제 등을 해결해 나갈 것이다.

노트북을 닫으며 전민수 위원장에게 마지막으로 한말씀을 부탁하자 “해고기간 동안 돈 한 푼 못 벌어도 뒤에서 지켜준 마누라님한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면서 “앞으로도 싸움이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계속 지켜줄 것으로 믿는다”는 부탁을 덧붙이며 다시금 예의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노조 탈퇴의 조건으로 회사에 임금 50% 인상과 연봉제를 제안하는 편집국 기자들, 제작국의 사실상 폐지와 대거 정리해고, 2년째 계속되는 20여명의 복직 투쟁, 회사가 조합원들에게 건 퇴직금 가압류 액수만 1인 평균 3500만원….

2008년 정부의 언론 정책에 맞서는 언론사 내부 구성원들의 각양각색 대응이, 왠지 한국일보 노조가 지난 20여년간 걸어온 길, 그리고 걸어갈 앞날과 무관해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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