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153명은 11월 13일 나올 회사를 상대로 한 해고무효확인 소송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앞서 서울고법은 올해 2월 이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결정한 1심을 깨고 해고는 무효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2009년 5월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파업을 선언한지 2000일을 맞이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쌍용차 파업 2000일, 죽음의 문턱에 선 노동자들의 호소’ 기자회견을 가졌다. 대법원 판결 전 대법원 앞에서 ‘이천배’를 올리는 24시간 농성을 가진지 8일째의 일이다. 기자회견은 11일 오전 11시 대법원 앞에서 열렸다.
사회를 맡은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오늘 기자회견을 위해) 어렵사리 2009년에 쓰던 현수막을 찾아냈다. 지난 이천일 동안 우리는 현수막을 몇 개나 만들었을지, 그것들을 이어붙이면 길이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창근 실장은 이틀 후의 대법원 판결에 대해 확신하면서 “지금까지가 우리가 끌려온 날이라면 앞으로는 끌고 갈 날이 될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11일 오전 11시 대법원 앞에서‘쌍용차 파업 2000일, 죽음의 문턱에 선 노동자들의 호소’ 기자회견을 가졌다. ⓒ미디어스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이현수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대법원이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솔로몬의 지혜로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해고노동자인 유충렬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비지회부지회장은 “회사 측의 해고 근거에 대한 자료를 우리는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회계 부정과 같은 것을 밝혀냈다. 2000일 동안 취업이나 하지 투쟁을 하느냐와 같은 비아냥을 들었지만 해고된 게 너무 억울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성토했다.
이어서 발언한 해고노동자인 복기성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수석부회장 역시 “77일 옥쇄파업 이후 산업은행 앞에서 대한문 앞에서 있었고 또 이 대법원 앞에서 이천배를 하고 있다”라고 기나긴 투쟁의 소회를 밝히면서 “억울한 건 쌍용차에서 일한 날보다 해고되어 투쟁한 날이 더 길다는 것이다. 5년을 일했는데 7년을 거리에서 싸웠다”라고 호소했다.
희망버스가 한참 부산 영도를 향하던 2011년 여름 ‘85호 크레인 성당 주임 신부’라 불리웠고 2011년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16번째 죽음을 들은 이후로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했던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2000일이라는 말에 대해 함부로 덧붙일 수가 없다”면서 “그간 정치적 판결을 많이 해왔던 대법원인지라 불길한 예감이 든다. 쓸데없는 생각이었으면 좋겠다”라면서 이틀 뒤로 예정된 대법원 판결을 우려했다. 서영섭 신부는 “대법원 앞에 ‘자유 평등 정의’라고 크게 적혀 있지 않나. 정말 자유와 평등과 정의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려줬으면 좋겠다”라고 희망했다.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11일 오전 11시 대법원 앞에서‘쌍용차 파업 2000일, 죽음의 문턱에 선 노동자들의 호소’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을 취재하는 언론인들의 모습. ⓒ미디어스
마지막으로 발언하고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은 “그간의 세월에 대한 억울함 반, 13일 대법원 판결이 현명하게 나왔으면 싶은 마음 반으로 여기서 8일째 이천배를 하고 있다. 사실 이미 만배 이상 했고 조계사에서도 이천배를 할 생각이다”라고 그간의 투쟁 경과를 밝혔다.
김득중 지부장은 “이천배를 하고 있으니 조합원들에게 연락이 많이 온다. 패소하면 뭐 할거냐라고 묻기도 한다. 패소해도 행동할 수밖에 없다”라고 발언했다. 김 지부장은 “그간 회사는 앞으로는 대화하자면서도 뒤로는 현장 대응을 하고 우리들을 와해시키려고 했다”면서 “우리로서는 승소하든 패소하든 계속해서 행동해 나갈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기자회견문 낭독 후 이창근 실장은 특별히 카메라를 든 방송국 언론인들에게 “제발 오늘 내보내 주시라. 대법원 판결 나온 후에 자료화면으로 쓰시지 말고, 오늘 내보내 주시라. 대법원 판결문 아직 안 썼을 것이다. 오늘 내보내주셔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고통과 죽음의 시간은 ‘여기까지’
오늘 2014년 11월 11일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거부하고 파업을 선언한 2009년 5월 22일이 2000번 굴러 생긴 오늘입니다. 2000일 전 쌍용차 노동자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없이 해고되었습니다. 3000명입니다. 노동자 반쪽을 잘라낸 공장은 지금 이 순간 멀쩡하게 잘 돌아갑니다. 해외매각이 능사인냥 호들갑치던 정치세력은 두 번의 대선에서 참패하고 거짓 일자리와 복지를 주장하는 새누리당 장단에 추임새 넣는 고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는 진영 논리로 구분짓고 명명할 수 없는 국가정책의 파탄입니다. 그럼에도 쌍용차 해고자들의 눈물과 아픔을 앞세워 정치 공방의 창으로 사용하고 폐기처분 해버리길 몇 해동안 반복하고 있습니다. 도움 주는 손길의 고마움보다 돌아서는 뒷모습이 서늘할 뿐입니다. 그 모습 또한 익숙해져버린 2000일입니다.
내일 없이 오늘만 살아가는 해고 노동자들입니다. 한국 사회를 향해 던진 질문에 우리는 아직 어떤 해명도 듣지 못했습니다. 재벌과 자본의 이윤을 위한 자본의 무한 팽창에 질식할 것 같은 하루를 버티고 살아갈 뿐입니다. 그 사이 정리해고로 노동시장의 근간은 파탄직전이며 청년 실업은 광장처럼 넓어졌습니다. 비정규직은 대를 잇고 불안정 노동은 세대를 넘나듭니다. 척박한 황무지는 생기를 앗아갔고 활력을 주저앉혔습니다. 경쟁력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은 세로로 줄세워지고 불평등만이 가로로 넓게 펼쳐졌습니다. 폭력은 국가 뒤로 숨기일쑤였고 공권력은 최선을 다해 자기 이성을 상실해갔습니다. 해고는 점점 개인 탓으로 방향을 틀었고 비정규직은 노력하지 않는 자의 톨게이트가 돼버렸습니다. 법과 제도는 가진 자들의 편리한 수단이자 못 가진자들의 높은 벽이었습니다.
집권 여당의 몰염치는 대선 공약 불이행으로 배은망덕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폭력과 배반의 정치는 여의도를 숙주 삼아 오늘도 고단한 노동자 등을 밟고 섰습니다. 고통과 죽음의 시간동안 결심과 다짐을 벼린 2000일입니다. 회사와 정치권의 능멸과 조롱의 시간이 2000일을 넘어 쌓이면 쌓일수록 그들에게 돌아갈 치명상 또한 깊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해결도 없이 묻히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시킬 것입니다. 그동안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몸과 마음을 모아준 연대의 힘의 종착지를 확인시켜 줘야 할 의무 또한 우리에겐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2002일이 되는 내일 모레 11월 13일은 쌍용차 대법원 선고가 있습니다. 분수령일 수 있는 중요한 재판입니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나오던 우리는 이 질긴 시간에 대한 우리들의 행동을 결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시간 싸워온 기간으로 쌍용차 투쟁이 기억되길 거부합니다. 자본의 흥망이 노동자 손에 달렸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일깨울 것입니다.
2000일, 아직은 어떤 결론도 결정도 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의 이성적 파결을 기다리겠습니다. 2000일 동안 닿지 않던 내일, 꿈 꿀 수 있는 내일과 만나고 싶습니다. 정리해고가 또 어떤 무고한 이들에게 바통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으로 싸우겠습니다.
2014년 11월 11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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