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 10월 31일 대한변호사협회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소속 변호사 7명에 대한 징계를 신청했다고 5일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가 징계 신청을 한 변호사는 권영국(51), 김유정(33), 송영섭(41), 이덕우(57), 김태욱(37), 장경욱(46), 김인숙(52) 등이다.

검찰의 징계신청 이유는 이들 변호사들이 의뢰인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하거나 질서 유지에 나선 경찰관을 폭행했다는 것이라 한다. 검찰은 '해당 지방검찰청검사장은 범죄 수사 등 검찰 업무 수행 중 변호사에게 징계 사유가 있는 것을 발견하면 대한변협에 그 변호사에 대한 징계 개시를 신청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는 변호사법 97조2항에 의거, 해동 변호사들의 징계를 신청했다. 대한변협은 위원 20여명 규모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해당 변호사 7명을 상대로 진상 조사를 벌이고, 조사위의 보고를 받은 상임이사회가 징계수위를 결정하게 된다.
지난 10월 28일 애초 <동아일보> 보도로부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 명명된 ‘유우성씨 무고 사건’의 증거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국가정보원 직원 4명 등 6명에게 1심 유죄가 선고된 바 있다. 다음날인 10월 29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이 재판을 언급하지 않았다.
같은 날 <중앙일보>가 <간첩 증거조작 유죄, 낡은 수사관행 버려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국정원은 이번 판결을 대공수사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비판한 것과도 비교되는 일이었다. 당시 <중앙일보> 사설은 “이제 더 이상 간첩 혐의자의 자백이나 제보자의 진술에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 법원도 증거가 없으면 간첩사건에서 유죄를 내리는 경우가 드물다. 심지어 자백을 다 받아 놨는데 수사 절차상의 흠결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기도 한다.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은 북한 보위부 직파간첩 혐의로 기소된 홍모(40)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이유는 홍씨가 작성해 제출한 의견서와 반성문이 적법 절차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안기부가 했던 일이지만 과거 간첩사건은 무더기로 무죄가 선고돼 국가에서 지급한 배상금만 791억원에 이른다”라며 세태를 설명하기도 했다.
▲ 6일자 한겨레 1면 기사
<중앙일보> 사설이 언급한 홍모씨 사건은 검찰이 변호사 징계를 신청한 것과 관련성이 크다는 것이 언론들의 해석이다. <중앙일보> 사설이 지적한대로, 혐의자의 자백이나 제보자의 진술에 의존하는 후진적이고 인권 침해의 우려가 매우 높은 대공수사는 민변의 몇몇 변호사들의 공로로 인해 번번히 재판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 징계신청은 공안부 검사들이 민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이에 대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6일자 사설은 이들이 최소한의 수치심은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의심케 한다. 국정원과 공안부 검사들의 부실함을 드러낸 판결에 침묵했으면 끝까지 침묵해야 할 터인데, 적반하장으로 민변을 성토하는 사설을 쓴다.
<조선일보>는 <民辯 변호사들 막가는 행동은 변협이 제동 걸어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검찰이 징계가 필요하다고 본 민변 변호사 7명 가운데 5명은 지난해 서울 대한문 앞의 쌍용차 해고 반대 시위 현장에서 '집회 방해로 체포하겠다'고 경찰관들을 위협하며 수십m 끌고 다닌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사람들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나머지 2명은 여간첩 이모씨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 관련은 무조건 부인하라'고 종용하거나, 세월호 관련 집회로 구속된 진모씨가 검찰에서 자백하려 하자 조사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진술을 거부하도록 유도한 경우라고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민변 변호사들이 간첩 사건 수사·재판이 있을 때마다 끼어들어 진실 규명을 방해한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몇 해 전 왕재산 간첩단 사건 때는 민변 변호사가 사건 핵심 증인을 찾아가 묵비권을 행사하라고 종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사 중인 검찰 수사관에게 '너 이름이 뭐냐'고 반말을 한 경우도 있었다”라면서 그간의 사례를 제시한다. 이 사례들을 어떻게 봐야 할는지는 <조선일보> 사설이 아니라 <한겨레>나 <경향신문> 사설을 봐야 알 수 있다.
▲ 6일자 조선일보 사설
<한겨레>는 6일 <민변에 대한 검찰의 ‘치졸한 보복’>란 제목의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검찰의 징계사유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검찰이 내세운 징계 사유부터 말이 안 된다. 검찰은 장경욱 변호사와 김인숙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거짓 진술과 묵비권 행사를 강요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술거부권의 고지는 수사관이나 판사·검사도 해야 하는 당연한 법적 절차다. 의무도 아닌 권리를 강요했다는 비난도 상식 밖이다. 헌법상 기본권인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는 불리한 진술을 거부하거나 묵비할 권리, 잘못된 진술을 번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변호인이 피의자·피고인에게 알려주고 이를 행사하도록 돕는 것이 당연히 포함된다. 그런 기본권을 행사하게 했다고 징계하자는 것은 사법질서 자체를 부인하는 일이 된다.

집회의 질서 유지에 나선 경찰관을 폭행했다는 변호사 5명의 경우도 검찰의 억지이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관련 집회에서 이들 변호사가 연행된 사건은 이미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드러났다. 당시 진상조사에 나선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적법하게 열린 집회를 경찰이 방해한 것이 오히려 집회방해죄에 해당한다며 현장 책임자 징계와 형사처벌을 주문했다. 위법한 공권력 집행에 대한 저항은 무죄라는 법원 판결도 있다. 그런데도 검찰이 집회 방해를 막던 변호사들을 되레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한 것은 공소권 남용이다. 그도 모자라 징계까지 요구했으니 아예 입을 틀어막겠다는 게 된다. 당연한 기본권 행사를 ‘공권력 무력화’나 ‘법 집행 방해’ 따위로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변호사 징계로 피고인 조력권까지 막겠다는 검찰>란 제목의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6일자 한겨레 2면 기사
“변호인 조력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아무리 중범죄자라 하더라도 불리한 진술을 거부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는 있다. 이를 의뢰인에게 알려주는 것은 변호인의 당연한 책무다. 이것을 수사 방해로 모는 것은 월권이다. 간첩사건 공문서 조작으로 망신을 당한 검찰이 사건 변론을 맡은 민변에 보복성 화풀이를 한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농성장 철거를 방해했다며 변호사를 기소한 것도 모자라 형이 확정되기도 전에 징계 요구라니 가당치도 않다. 농성장 철거 방해를 둘러싼 공무집행 방해 혐의는 최근 법원에서 무죄가 난 터다. 이중처벌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망신이라도 주고 보자는 뜻인가.”
민변 변호사에 대한 검찰의 고발 사유를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수사 취지에 반하는 지침은 ‘거짓 진술 강요’로 보는 듯하다. 영화 <부당거래>식으로 말한다면 “너, 범인해라”는 ‘참 진술 유도’요, “솔직히 말해봐. 너, 범인 아니잖아”는 ‘거짓 진술 강요’라는 식이다. 영화 <부당거래>에선 그래도 검찰이 ‘가오’를 잡기 위해서라도 조작수사의 전모를 밝혀내려는 역할을 했는데, 현실의 검찰의 수준은 그 이하다.
적법하게 열린 집회에 대한 공권력의 집회방해를 지적하고 이에 저항한 것에 대해 ‘질서 유지에 나선 경찰관을 폭행’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들에겐 공권력의 의미가 공공질서 수호와 법치주의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국가기관의 소속유무에 있는 것일까?
여기까지만 짚어 봐도 한국 보수세력의 한심한 현실이 충분히 드러나지만, <동아일보>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간다. 6일자 <동아일보> 사설 <대한민국 법과 경찰을 능멸한 민변의 조국을 묻는다>를 보면 <조선일보> 사설 제목에 나오는 ‘막가는’이란 형용사가 마땅히 이들을 지칭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단 제목부터가, 민변더러 제 조국을 ‘북한’이라 고백하라고 윽박지르는 내용 아닌가.
▲ 6일자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 사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검찰이 일부 변호사의 수사와 사법 방해 행위 같은 조직적인 공권력 무력화 기도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힌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느낌마저 든다.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보위부 직파 간첩사건’에서는 피의자들이 민변 변호사들을 만난 뒤 핵심 진술을 번복해 잇따라 무죄가 선고됐다. 간첩 혐의자도 적법 절차에 따른 조사와 재판을 받아야 하지만 민변이 간첩 혐의를 벗기기 위해 거짓 진술까지 유도했다면 국법 무시를 넘어 국가안보 저해 행위다”. 검찰이 증거 없이 윽박질러 진술을 확보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진술을 번복하게 한 민변이 문제라는 것인가?
이어서 <동아일보> 사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88년 설립돼 인권과 법치주의 신장에 기여했던 민변은 2002년 민변 출신 노무현 씨의 대통령 당선 뒤 국가보안법 폐지에 힘쓰는 등 정치단체처럼 세력화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2006년 일심회 간첩사건과 2011년 왕재산 간첩사건 때도 장 변호사는 수사 방해에 가까운 변호 활동으로 논란을 빚었다”. 굳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변 출신임을 환기한다,
또 2002년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에 힘쓰는 등 정치단체처럼 세력화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1988년 설립 이후 2002년까지 민변은 “인권과 법치주의 신장에 기여”하면서 국가보안법엔 무비판적 입장이었을까? “인권과 법치주의 신장”을 원하는 이들이 찬성할 수가 없는 법이 국가보안법일진대, <동아일보>의 주장은 적대파의 ‘타락’을 ‘소설화’하기 위한 ‘뇌내망상’에 가깝다.
공권력은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자 상식이다. 독재권력의 문화적 유산이 아직도 남은 공권력이 그 의무를 게을리 하는 것을 고발한 민변의 활동을 고발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태도는,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묻게 만든다. 특히 최근 <조선일보>에 비해서도 여지없는 극우적 시선을 드러내는 <동아일보>의 모습은 박정희와 전두환에게 가장 껄끄러운 존재였던 그 신문의 역사에게까지 환멸을 느끼게 만든다. ‘역사’란, 그렇게 덧없는 것이었던가.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