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헌법재판소가 작심하고 칼을 빼들었다. 선거구간 인구 편차를 3 대 1까지 허용하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제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이는 2016년 총선이 2012년 총선과 같은 방법으로는 치러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후 정치권을 중심으로 소선거구제, 중대선거구제, 정당명부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여러 가지 제도에 대한 논의가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이 논의의 정치적·정략적 함의를 알기는 쉽지 않다. 이에 <미디어스>는 각 선거제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3회에 걸쳐 정리해보도록 한다.
지난 기사에서 한국의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를 기반으로 전국단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다소 혼합되어 있다” 정도로 표현할 때, 이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것이 현시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따져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현행 소선거구제의 단순조정을 원하지 않는 이들의 문제의식이 뭔지를 살펴보자. 먼저, 현행 소선거구제 하에서 조정된다고 할 때는 크게 두 가지 극단적인 길이 있다. 하나는 현행 54석의 비례의석의 비율을 유지하면서 246석의 지역구를 뜯어 고쳐 헌법재판소의 요구를 수용하는 일이다. 이 작업을 하다 보면 앞서 말했듯 수도권과 충청지역의 의석수는 늘어나고 영호남과 강원지역의 의석수는 줄어든다. 이는 해당 지역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부분이다.
여기서 줄어드는 지역의 이해관계를 꺾지 못할 경우 소선거구제 하에서 영호남·강원의 의석은 현행대로 유지되고 수도권과 충청지역의 의석수가 늘어나는 방식으로 조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수도권과 충청지역의 의석수가 늘어나는 만큼 비례대표 의석수는 줄어들게 된다.
가령 현행 공선법에 따른 최소 선거구인 경북 영천의 인구는 10만 3,000여 명으로, 최다 선거구인 서울 강남갑(30만 6,000여 명)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헌재의 결정에 따른 조정대상 예상 선거구를 보면 상한 인구수 초과 선거구가 37개, 상한 인구수 미달 선거구가 25개다. 말하자면 최악의 경우 25개를 위해 37개를 쪼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같은 권역에 초과 선거구와 미달 선거구가 공존하는 곳도 상당수 있으므로 그러한 ‘최악’은 발생하기 어렵다.
▲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30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선거구 획정과 관련한 공직선거법 25조 등의 위헌확인 헌법소원 사건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더라도 편의적인 지역구 구획의 우려와 더불어 여야 합의와 내부 진통 속에 지역구 의석수가 20여개 늘어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 경우 비례대표 의석은 54석에서 30여석으로 전락하게 되어 그 취지를 상당 부분 상실되게 된다. 특히 2001년 헌법재판소가 1인1투표제로 인한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 배분 방식은 위헌이란 결정을 내린 후 2002년 선거법 개정 이후 2004년 총선부터 시행된 '1인2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취지가 상당 부분 퇴색된다.
이것은 원칙적으로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고, 군소정당들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특히 새누리당보다는 정치개혁의 명분을 쥐고 가야 할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지역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지역구 숫자를 최대한 통제하며 비례대표 의석을 유지할 수 있는 ‘묘수’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국민들이 국회의원 정수 증대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고, 어떻게든 ‘300명’이란 제한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제안들의 이름이 다음과 같다.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도농별복합선거구제…….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했는데도 명료하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여기서부터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를 기반으로 전국단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다소 혼합되어 있다”는 우리의 정확한 사정에서부터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줄기를 잡으면 결코 어려운 논의가 아니다. 하나하나 매듭을 풀어보자.
먼저, 여기서 선거구와 관련된 것과 비례대표제와 관련된 것을 나누어보자. 그래야 상황이 정리될 수 있다. 일단 선거구에 관해선 소선거구제-도농별복합선거구제-중대선거구제로 나뉜다. 소선거구제는 현행 제도이기 때문에 개혁을 말할 때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례대표제와 관련해선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가 나온다.
선거구에 관해선 도농별복합선거구제만 설명하면 된다. 도농별복합선거구제는, 작은 단위의 농어촌 지역의 대표자를 표의 등가성을 훼손하지 않고 선출하기 위한 방책이다. 사실 10만명이 사는 지역농촌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싶은데, 표의 등가성을 훼손하지 않으려 한다면 역시 답은 의원수를 늘리는 것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병석 전 국회부의장, 이상민 법사위원장, 박범계 의원 등 충청권 의원들이 3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선거구획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령 10만명의 유권자가 한 지역을 대변하려 한다면 유권자가 4000만명인 한국 사회의 지역구 의석은 400개면 된다. 사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제헌의회의 경우 2000만 유권자에 200여명의 의원이 있었고 이들은 스스로를 ‘십만 선량’이라 불렀다.
그러나 우리는 앞서 국민정서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에 ‘고육지책’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도농별복합선거구제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가령 인구 10만의 농촌과 인구 30만의 인근 도시가 있다. 이를 20만, 20만씩 억지로 지역을 구획해 대표자를 선출한다면 30만 도시와 성격이 다른 10만 농촌 사람의 의중을 대표하는 이가 선출되지 못한다. 이 경우 10만 농촌은 소선거구로, 30만 도시는 중대선거구로 하여 10만 농촌에서 1인의 대표를, 30만 도시에서 2인 정도의 대표를 선출하도록 하면 등가성의 문제를 헌재가 요구하는 만큼 해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까다롭지 않다는 것이 이 제안의 취지다.
하지만 취지는 그렇더라도, 방금의 예시에서는 여전히 의석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도농별복합선거구제로의 전환을 꾀하려 한다면 인근 농촌을 어떻게 통합하고 도시지역은 어떻게 나누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제도의 취지가 지역구 의석의 확대를 최대한 억제하는 데에 있는지, 아니면 지역주의를 약화시키기 위해 영호남에서 상대 당파의 의원을 상대적으로 많이 배출하는데 있는지에 따라 운용의 묘가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비례대표제의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뭘까? 그 핵심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다. 현행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전국단위 선거였다. 즉, 1인2표 선거에서 정당에 기표하면, 정당의 지지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고 누구에게 의석을 주는가는 사전에 각 정당이 내세운 후보명부에 따라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현재 한국의 정당 명부식 방법은 정당이 순번으로 명부를 제출하면 유권자는 정당에 대해서만 지지를 표시할 수 있는 구속 명부식(혹은 폐쇄형)이다. 그런데 아예 정당 투표를 할 때 유권자가 각 정당 명부를 보고 정당 명부의 선호 후보에게 투표하는 비구속 명부식(혹은 개방형)도 있다. 아직까지 이런 수준의 논의까지는 없지만, 비구속 명부식(혹은 개방형) 정당 투표는 유권자에게 주어지는 투표지는 다소 복잡해지더라도 2012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와 같은 것을 어느 정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하태경·김영우 의원 등 새누리당 초재선 개혁모임 `아침소리' 소속 의원들이 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모임을 갖고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등 정치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것을 권역별로 바꿀 때는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56석 비례대표를 권역별로 인구 비례를 통해 적당히 의석을 배분한 후, 정당투표의 효력을 권역별로 인정하게 된다. 지난 대선의 유권자를 참조하면 권역별 유권자 비율은 수도권 50%, 경남 15%, 경북, 충청, 호남 각 10%, 강원 3%, 제주 1% 정도가 된다. 최근 충청이 호남을 추월했는데도 현행 선거구에서 지역구 의석은 호남에게 뒤진다는 것이 충청권의 불만이다. 권역별 기본 1석은 반드시 있다고 봐서 제주에 1석, 강원을 2석 배정한다 치면 대략 수도권 28석, 경남권 9석, 충청권 6석, 경북권 5석, 호남권 5석, 강원권 2석, 제주 1석 정도로 배분해볼 수 있다. 수도권도 서울 경기 인천을 나눠서 배정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문제이므로 지나쳐 보자.
이렇게 될 경우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적인 텃밭인, 그래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경북권이나 호남권에서 지역구 5석이 사라지더라도 권역별 비례대표로 그 몫을 채워줄 수 있는 결과가 발생한다. 또 이 경우 상대적으로 과거보다 전국 단위 인지도가 있는 인물에게 주어지는 비례대표의 몫이 사라진다 투덜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늘어난 수도권의 지역구의 지역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장려하면 될 일이다. 정당투표 역시 막연한 투표에서 지역별 대표 인물을 출마시키면서 전개되는 치열한 전투가 될 수 있다. 심지어 군소 진보정당 역시 지역별로 지지율이 고르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권역별로 나뉘면 수도권, 경남권, 호남권에서 각 1석씩을 얻어내는 전략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석패율제는 무엇일까. 이 제도는 선거구가 중대선거구보다는 소선거구일 때, 또 비례대표가 전국단위 비례대표보다는 권역별 비례대표일 때 더 어울리는 제도이다. 다만 이 제도는 직접적으로는 지역구 출마와 비례대표 후보의 복수 출마가 가능하냐와 관련이 있다. 알다시피 현재의 제도는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후보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일본식으로 디자인하면 지역별 지역구 후보 중 일정 수준 지지율을 넘었으며 가장 지지율이 높은 낙선자 중 1~2인을 권역 비례대표로 부활시킬 수 있다. 권역별로 할당된 비례대표 중 어느 비율을 지역구 낙선자에게 배당할지는 정하기 나름이다.
혹은 이를 비례대표 비구속 명부식(혹은 개방형) 정당 투표와 결합하여 애초에 비례대표 후보 명부를 지역구 후보를 포괄하여 작성하고, 정당 투표와 지역구 투표를 포괄해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 순으로 비례대표 당선자를 배정하는 아이디어까지 가능하다.
▲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가 지난 10월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헌재의 선거구획정 판결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선거구제로는 소선거구, 도농별복합선거구, 중대선거구가 있다. 이에 각각 전국단위 비례대표를 결합시키거나, 권역별 비례대표를 결합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각 제도마다 석패율제를 쓰거나 안 쓰는 일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300명 정수를 유지하는 수준에서, 지금의 아이디어를 제도적으로 결합한 경우의 수는 3×2×2=12가 된다.
문제는 이 경우 진보정당의 입장에서는 ‘중대선거구제'가 최선의 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례대표 비율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중대선거구제는 외견상 강세지역에서 약세정당 후보를 당선시켜 지역주의를 해소한 듯한 느낌을 주지만 제1당과 제2당의 ‘나눠먹기' 식 선거를 강화시켜 양당제를 유지하는 수단이 된다는 비판도 있다. 이른바 ‘일본식 중대선거구제'의 폐해다. 국회의원 300명 정수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라면, 진보정당들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선거구제 개편은 차라리 소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비구속 명부식 정당 투표 및 석패율제 도입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함께 ‘중대선거구제'를 말하더라도 지향하는 바가 전혀 달라진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말하는 ‘중대선거구제’는 300명 정수를 늘리지 않는 수준에서 내세우는 아이디어 중 하나이며, 제 진보정당이 말하는 ‘중대선거구제'는 국회의원 정수를 대폭 늘려 비례대표의 비중을 지역구와 1대1 수준, 혹은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늘리는 전제 하에서 설계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에서는 현행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손해는 아니라는 인식이 있으므로 어떻게 바꾸든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제 진보정당의 입장에서는 어설프게 바꿀 경우, 특히 비례대표의 비중이 줄어들 경우 오히려 타격을 입는 상황이 되어 필사적이다.
그렇다면 주로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에서 제시하는 비례대표 비중이 늘어나는 제도는 어떻게 설계되어 있으며 그 이점은 무엇일까. 이제 매우 복잡한듯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크게 복잡하지는 않은 정당명부제의 영역으로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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