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았던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사실상 타결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특검도입을 언급한지 5개월 만이다. 특별한 돌발 변수가 없는 한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가 합의한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그간 쟁점이 됐던 특별검사 후보군 추천 방식에 대해서는 유가족이 원하지 않는 인사를 여당이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별도 협약으로 보장하기로 합의됐다. 이는 애초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가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던 방안이다. 대신 여야는 세월호 특별법으로 구성되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을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추천한 인사가 맡기로 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는 기존에 새누리당이 거부감을 나타냈던 내용이다. 즉, 순전히 유가족과 새누리당의 입장에서 보면 각자 한 발씩 물러난 모양새가 된다.

▲ 새누리당 이완구·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지도부가 31일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세월호3법을 내달 7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하고 나서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서로 한 발씩 물러나서 합의를 했다고 하면 무조건 좋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애초에 이러한 양보가 가능했는데도 그간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합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여의도 정치는 거의 정치로 부를 수 없는 처참한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먼저 여당이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일정부분 양보할 것 같은 모양새를 비추다가도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식의 입장을 반복해서 피력해왔다. 오늘 합의한 내용은 지난 8월에도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여당은 그간 강경한 입장을 피력해오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상황이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러서야 양보를 했다.

여당의 이러한 ‘뻣뻣한 태도’는 청와대의 의중이 실린 것이라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 관련 여야 협상이 접점을 찾아가는 와중에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과도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협상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기도 했다. 2015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대통령이 국회 본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청와대의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청와대의 답답한 태도는 아마도 ‘밀면 밀린다’는 상황 인식 속에서 도출된 결론이었을 것이다. 야당이 사실상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천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세월호 특별법 이슈가 정치적 성격을 띄게 된 것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당 의원들이 ‘카카오톡’을 통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불러 일으킬만한 메시지를 유통시켰다는 혐의가 불거진 것에서 볼 수 있듯 여당 지지자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온갖 흠집내기를 통해 여론의 반전을 기도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에 호응한 종편채널의 역할이 주효했다. 이 덕분에 애초 동정적인 목소리가 다수였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 대한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국론이 분열하고 사회적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청와대로서도 흔쾌히 받아들일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식의 파열음은 통치를 이어가는 동안 언젠가 반드시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세월호 특별법을 적정 수준에서 타협하도록 하고 생색을 내는 게 정치공학적으로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지지자들도 “해줄만큼 해줬잖느냐”라는 반론을 제기하면서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세월호 특별법 정국의 종료를 더욱 쉽게 유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 대통령과 여당이 세월호 특별법 국면에서 양보다운 양보를 하지 않은 것은 양보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양보의 필요성을 만드는 것이 야당이 할 일인데, 야당 역시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했지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데에는 소홀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당시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덜컥 합의를 해 수많은 비판을 받았던 1차 합의안과 2차 합의안 등의 경우가 그렇다. 당시 합의안에 대해서는 야권 내에서도 볼멘소리가 많이 나왔는데 왜 박영선 당시 비대위원장이 그렇게 서둘러서 합의를 강행했는지 모르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즉, 시일을 좀 더 경과하면 국정감사나 예산안, 이번 경우처럼 정보조직법 등과 연계해서 협상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데 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협상에 나서 합의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제기됐던 것이다. 카드를 최소한 3장은 갖고 협상을 해야지 달랑 1장을 갖고 하니 그게 잘 될 리가 없다. 결국 박영선 당시 비대위원장의 이런 행보로 세월호 특별법 협상의 파탄과 국정감사 준비의 부실, 당 내 리더십의 붕괴 등이 모두 문제가 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오히려 야당보다 훨씬 정치적으로 유능했던 건 오히려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책위 측이었다. 지금 진보적 성향의 네티즌들의 일부는 유가족 측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집해 세월호 특별법 정국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있으나 이는 전체 맥락을 무시한 평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유가족들이 진상조사위원회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의 부여를 강조한 이유가 일종의 방어적 논리였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국정조사 등 수습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카카오톡’ 등 폐쇄적 형태의 SNS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전파됐다. 대표적인 것은 단원고 학생들에 대한 특례입학이다. 이에 대해 유가족 측은 공식적으로 그런 요구를 한 바 없고 본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진상규명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때문에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인 진상조사위원회에 대한 수사권, 기소권 부여를 공식적 요구로서 함께 결정한 것이다.

일각에서 반성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후 유가족들이 이 요구에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유가족들은 자신들이 공식적으로 결정한 것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지만 그에 준하는 다른 안을 제안해준다면 논의해보겠다는 입장을 수차례에 걸쳐 밝혔다. 심지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의 면담을 통해 유가족들이 제시한 인사 중 한 명을 특검후보추천위원으로 추천하는 안 등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이들을 야당의 바운더리로 포괄해 정략적 이해의 대상으로 삼아 협상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의 동력을 사실상 소멸시킨 대리기사 폭행 사건에 야당 정치인이 개입돼 있었던 사실은 실소를 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진보정당 등이 대중적 분노를 정치적 에너지로 전화시키지 못했다는 점 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 정국은 그야말로 여의도 정치의 무능을 재확인시켜준 그야말로 한국 정치사의 비극이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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