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렁철렁 가슴이 내려앉을 때가 많다. 오늘도 울산 남구 황성동 석유화학공단 내 한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재난 때문에 ‘참사공화국’, ‘재난공화국’이란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얼마 전에도 판교 테크노벨리 축제를 보던 시민들이 환풍구가 붕괴되면서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하는 일이 있었다. 도대체 정부는 시민의 안전과 생명에 관심이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국정 감사에서 밝혀졌듯이 올해 3월 10일 규제 완화되어 ‘최대 관람객수 3000명 이상의 지역축제’에만 적용하도록 지역축제장 안전매뉴얼이 바뀌었고 지하철이 아닌 건물 환풍구 하중에 대한 기준은 없다고 한다. 도대체 정부는 안전에 대해, 재난에 대해 신경은 쓰고 있는 걸까.

국가안전처 신설이 재난안전대책이 될 수 있나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안전대책을 간헐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해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담화문에 큰 방향성을 담아 발표했다. 당시 핵심은 ‘국가안전처 신설 및 해경과 방재청의 해체’였다. 세월호 침몰은 선박과 승선 등에 대한 안전관리 규제완화로 발생한 것이기에 ‘규제를 암’이라고 선언하던 대통령마저 안전에 대해서는 규제를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규제완화의 기조는 안전대책만 비껴가기 어려운지 안전에 대한 규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사진=YTN뉴스 캡처)

대통령 담화를 바탕으로 내년 2월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이라는 종합적인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정부대책은 5월 19일 담화문, 8월 26일 5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국가 안전 대진단과 안전산업 발전 방안」 과 그 후 발표되고 있는 안전대책 관련 공식 발표 자료들을 보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년 발표될 정부 안전대책은 우리가 비판하고 우려하는 기조들이 사라진 것일 수도 있다.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려는 배경은 세월호 참사로 300여명의 목숨을 잃는 동안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컨트롤 타워가 없었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2013년 개정하면서 재난이 발생하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를 방재청이 총괄해오던 것은 사회재난은 안전행정부가 총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재난 경험과 전문성이 이관되지 않은 채 없는 행정관료가 중대본을 이끌면서 사고 대응이 제대로 되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정부는 이러한 비판을 방재청과 안행부로 이원화한 것만으로 바라보며 정부조직체계 개편이라는 대증요법을 내놓았다.

또한 컨트롤 타워의 문제는 대규모 참사에서 중앙정부가 책임을 지고 물적 인적 지원을 제대로 지 않은 점에 대한 문제제기였는데 재난관리의 단일 부서(국가안전처)라는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다. 일원화된 재난안전기구나 지휘체계의 강화가 통합적인 재난안전대책은 아니다. 재난구조에 있어 현장성과 전문성이 있는 단위와 사람에게 지휘권이 보장되지 않을 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있는 재난구조기관들의 협조가 원활히 되지 않을 때, 사고수습은 혼란을 겪는다. 정부는 국가안전처를 만들었으니 통합적 재난 안전관리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층층시하 보고체계만 늘어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현장 중심의 지휘권을 보장하고 효율성이 없는 보고체계를 일원화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특히 해경과 방재청을 해체하고 국가안전처 산하에 두는 것은 전문성을 약화시키는 방안이라 우려된다.

안전산업 육성안이 ‘안전대책’이라고?

그런데 정부 안전대책에 안전산업이 끼어들기 시작한 것은 참사가 발생한지 4개월이 되어서였다. 8월 26일 5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국가 안전 대진단과 안전산업 발전 방안」에서 안전산업 육성안이 다뤄진 후 안전행정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 각 부처에서 안전산업 육성안을 발표했다. 안전대책 회의라고 수차례 열린 각 부처의 회의에서 주로 안전산업 육성안을 논의한 셈이다. 9월 23일 관계부처 회의에서 발표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 기본방향 및 향후 추진계획」도 이러한 기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정부가 말하는 안전산업은 ‘안전’을 매개로 기업 돈벌이를 하려는 거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재난이 발생하면 정부지원 외 민간차원의 보상이 상호 보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다며 ‘민간 재난보험 상품을 개발’이라는 안전산업을 제시했다. 이는 재난의 결과와 회복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돈 있는 개인(기업)이 알아서 민간보험에 가입해서 해결하라는 주문이며 그를 통해 보험회사의 이윤도 챙겨주겠다는 뜻이다.

그 외에 내놓은 안전산업 육성안은 민간의 방재기능을 강화한다며 화재보험협회의 방재컨설팅 업무를 늘리는 게 포함됐다. 그동안 화재보험협회에 이관되었던 화재예방 안전점검 외에도 폭발‧붕괴위험까지 확대해서 맡긴다고 한다. 그런데 안전관리감독 업무를 민간 기구에 위탁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여객선에 대한 안전 관리가 민간으로 넘어가 선박안전점검은 한국선급이 하고 안전운항관리는 한국해운조합이 했으나 안전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점검 대상인 기업에게 점검업무 수수료를 받아야 하는 갑을관계에서 철저한 안전점검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의 이윤과 전직 관료들의 이해가 만나면서 해피아가 발생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지점이었다.

원격의료가 안전산업?

심지어 9월 19일 안전산업 육성 지원단 착수 회의에 관한 산업통상자원부의 발표를 보면 ‘원격의료’도 안전산업이라고 되어 있다. 원격의료는 의료법 개정의 쟁점으로, 재벌이 운영하는 삼성병원, 아산병원 같은 대형병원의 이익을 보장할 뿐 가까운 동네병원 이용을 약화시켜 병원 체계를 무너뜨린다. 결국 서민의 건강권을 침해할 문제가 있다. 그런데 그것을 안전산업이라고 제시했다.

반면 안전에 대한 기업의 관심을 높인다는 명분을 세우며 기업이익을 채우는 안으로 대책을 내놓았지만, 기업이익을 위해 안전을 소홀히 했던 기업의 책임을 묻는 방안은 전혀 없다. 2008년 이후 사고가 발생하면 직접적인 안전 관리자와 함께 기업주를 처벌하던 양벌규정이 완화되어 기업주들은 법에 규정된 안전상 조치를 형식적으로 따르기만 해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또 현행법으로는 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에 대한 살인죄 및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도 없다. 가능한 죄목은 횡령, 탈세, 배임혐의 뿐이다. 그래서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기업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것도 대책에는 빠져 있다.

노동안전은 빠지고 규제완화는 그대로

그리고 정부의 안전대책에서는 노동안전(산업안전)이 없다.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의 권한과 위험물질이나 설비에 대한 노동자의 알 권리와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시민들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다. 2012년 발생한 구미 불산 누출사고로 노동자만이 아니라 인근 주민까지 피해를 입은 것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세월호에서도 노동자들이 위험을 경고했으나 기업주가 이를 무시하고 배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데도 출발시킨 게 드러나지 않았는가.

재판에서 승선한 노동자들은 “짐을 너무 많이 실으면 배가 위험하다. 더 실으면 배가 가라앉을 수 있다” 는 경고를 했고 ”참사 한 달 전 조타기가 고장 났으니 고쳐달라고 두 번이나 청해진해운에 요구했지만 묵살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출항할 수 없다. 조타기를 수리할 때까지 대기하겠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청해진 해운은 세월호를 출항시켰고 배는 침몰했다. 노동자 안전과 시민 안전, 재난 안전은 톱니바퀴처럼 이어지는 것이어서 어느 한 곳이 보장되지 않으면 참사를 예방할 수 없다.

게다가 세월호 사고의 원인이었던 과적은 여전히 육지 화물운송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나 이에 대한 대책도 없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4월 22일 국무회의는 아파트 '수직 증축'을 허용하는 규제완화를 결정했다. 수직 증축은 무게 중심을 불안정하게 하고 철근 구조물의 내구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이명박 정부 때도 허용되지 않았던 안전관련 규제를 푼 것이다.

세월호 200일, 우리의 할 일

▲ 내일(11월 1일)이면 세월호 참사 200일이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세월호 특별법은 여전히 제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광장 단식농성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200일이 되었지만 정부는 진상규명도 안 하고 이렇듯 안전대책도 제대로 세우지 않고 있다. 도리어 돈벌이를 만들 궁리만 하고 있다. 이렇게 거꾸로 갈 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지치지 않고 정부와 기업이 우리의 요구를 들을 때까지 안전에 대해 요구하는 일이다. 안전은 누군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은 공공성이 보장되고 위험에 대한 알 권리, 정보접근권이 보장될 때 만들어진다.

재산의 안전만을 지키려는 자본주의적 안전 담론에 대해 비판하고 실천하는 일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다. 이윤을 위해서는 안전과 관련한 비용을 절감하는 게 우선순위인 지금의 구도를 바꾸어야 한다. 비용 절감과 기업 이윤을 위해서라면 인구들이 죽도록 방치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생명에 무능한 정치’에 저항하는 일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그럴 때 안전과 인간의 존엄이 만날 수 있다.

또한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 제대로 될 때 안전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바꾸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은 하나의 안전대책의 수립으로 나갈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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