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저녁, 한화 이글스의 오랜 팬인 기자는 술에 취해 있었다. 사실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 아니다. 친한 친구의 생일잔치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축하의 메시지가 휴대폰 문자와 페이스북 등에서 답지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기사를 확인한 기자는 비명을 질렀다. 술자리에서 기자는 “지금부터 모든 차를 내가 산다”고 선언했다. 생일을 맞이한 친구는 야구를 모르는 다른 친구들에게 “이제 이 친구는 월요일까지 계속 기분이 좋겠군요”라고 설명했다.

준플레이오프가 끝나면 뭔가가 발표될 거란 짐작은 했지만, 예상한 건 ‘야신의 귀환’이 아니었다. 기자가 아는 스포츠언론 종사자들은 일찌감치 한화 이글스의 다음 감독을 내부자 누구로 점쳤다. 복수의 구단의 감독이 갈려 나갈 것 같던 시즌 중간엔 ‘야신’이 한화로 올 거라는 기대를 하기 어려웠다. 시즌 후 몇몇 구단 감독이 결정되고 한화 이글스 팬덤이 ‘지피셜’에 흥분했을 때 기자도 함께 흥분했지만, 이리저리 찔러서 확인해보니 여전히 상황은 비관적이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링크). 김성근이 복귀하지 못할 거라고 점쳤다. 그러나 인터넷의 한화 이글스 팬덤은 포기하지 않았고, 원하는 것을 쟁취했다. 비록 그것이 한화 그룹 오너의 화통한 성격에서 나온 결단일지라도 폄하될 수 없다. ‘보살’ 팬덤은 구단에게 ‘행복추구권’을 요구했다. 기자가 쓴 기사는 다행스럽게도 결과적으로 ‘거대한 역레발의 주술’이 되었다. 비록 한화 이글스 팬덤의 거대한 노력에 모래 한 알 얹은 것에 불과하겠지만, 예측이 틀린 것이 훨씬 더 즐거운 상황이 되었다.
▲ 다음 아고라 김성근 감독 청원 서명 화면 캡처 사진
이런 과정을 거치며 ‘기자’와 ‘관계자’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해본다. 이것들이 작동하는 구조는 정치영역이나 스포츠영역이나 흡사하다. 자유기고가 시절 정치비평을 할 때는 모든 걸 혼자서 추론한 것처럼 썼다. ‘관계자’에게 듣고 확인한 사안이라도 그렇게 썼다. 그러다보니 뻔히 다 확인한 사안인데도 상대방이 부인하고 ‘소설’이라고 비난하는 황당한 상황에도 처했다.
기자가 되고 나니 반대로 스스로 생각한 것도 남의 말을 빌려서 써야 했다. ‘관계자’나 ‘전문가’의 발언이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은 기자가 자기 생각을 남의 코멘트를 빌려 한다고 비판한다. 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기자는 ‘기자수첩’ 류가 아닌 다음에야 기사를 그렇게밖에 쓸 수 없다.
또한 관점을 전적으로 배제한 기사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 기사는 ‘검색어 기사’에 많이 나온다. 검색어와 누리꾼 반응을 붙이는 기사, 그런 기사도 사람들이 싫어하긴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욕망과 기대는 종종 모순적이다. ‘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한 균형의 노력은 그래서 언제나 아슬아슬하다.
몇몇 스포츠언론의 기자들이 한 국가대표팀 축구선수를 팀워크 붕괴의 주범으로 지목했을 때, 팬덤은 기자들이 ‘소설’을 쓴다고 비판했다. 한 스포츠 칼럼니스트가 그 선수의 페이스북 서브 계정을 캡처해서 까버리는 일을 벌이고 나서야 축구 팬덤 전체가 그 한 선수를 비판했다. <미디어스>에서 어쨌든 간에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는 그 칼럼니스트의 행위를 비판하자 어제까지는 ‘기레기’를 욕하다 그 선수를 욕하기 시작한 팬덤은 이제 그 칼럼니스트를 영웅시하고 새로운 ‘기레기’를 욕했다.
▲ 한화 이글스 팬들이 만든 영상물에 등장하는 한화 사옥 앞 김성근 감독 청원 일인시위의 모습 (유튜브 화면 캡쳐)
‘기자’는 ‘관계자’에게 듣는다. 그러나 ‘관계자’는 단수가 아니다. 서로가 듣는 게 다를 수 있다. 거기다 보도하는 단체의 의중을 대변하는 경우도 있고, 기자 자신의 생각을 밀어넣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기자’는 ‘소설’을 쓰는 장난질을 칠 가능성도 있지만, 자기 딴엔 확인된 사안을 썼는데 ‘소설’이라 욕을 먹기도 한다. 어떤 부분에선 통념보다 정확한 내부사정을 듣지만, 모든 영역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기자’도 많은 부분에선 대중의 통념보다 나을 바 없는 정보만을 가질 뿐이다. 심지어 이는 ‘관계자’ 역시 마찬가지다.
스포츠 문제에 관한 한 <미디어스> 기자는 ‘팬’과 ‘기자’의 사이에 있다. 스포츠 언론 보도도 매체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끔’만이다. <미디어스>의 규모 탓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다른 ‘팬’과 마찬가지로 뉴스나 게시판을 보며 추측하다가, 기사를 쓸 수 있을 정도의 큰 난리가 나면 스포츠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에게 취재를 하게 된다.
기자는 순진하게도 2012년 김응용 감독의 선임을 반겼다. 나중에서야 현장과 스포츠언론 기자들은 그의 성공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른 것 같다.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다. 마음 편하게 최초의 포스트시즌 ‘엘넥라시꼬’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 '야신'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의 사령탑으로 프로야구 그라운드에 복귀한다.한화는 25일 김성근 감독을 계약금 5억원과 연봉 5억원 등 3년간 총액 20억원에 제10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일구상 시상식에서 건배 제의를 하는 김 감독이다. (연합뉴스)
김성근 감독은 언제나 부임 첫해부터 성적을 냈다. 또 단지 그가 위대해서만이 아니라, 지난 2년 동안의 한화 이글스의 운용이 너무나 참혹했기 때문에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떤 지인은 "십 년 동안 한화 이글스를 냉담했는데, 이제 한화 이글스 유아용품을 사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첫 해엔 5~6위 정도에 만족하자고 다짐했다. 4-5위 ‘와일드카드’제가 도입될 거라는 기사를 읽기 전에는 말이다. 어쩌면 좋을까, 기자는 그만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과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이 맞붙는 내년의 와일드카드전을 상상해버리고 말았다. ‘야신’은 그렇게 전체 야구팬의 마음 속에 설렘을 가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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