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뻐꾸기 둥지'의 뒷심이 무섭습니다. 전작 ‘루비반지’의 황순영 작가와 복수의 여왕 장서희가 손을 맞잡아 ‘대리모’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내세운 이 드라마는, 또 하나의 여주인공 이채영의 개연성 없는 복수 동기와 극을 이끌어가기에는 부족한 연기력으로 혹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KBS 일일극은 망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죠. '뻐꾸기 둥지' 역시 미흡했던 초반의 성적을 후반의 뒷심이 보완하며 일일 드라마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10퍼센트 내외로 시작했던 시청률이 어느덧 두 배 가까운 성적으로 자리잡았고, 최근 방송은 22.2%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마의 20% 영역을 뚫었습니다.

'뻐꾸기 둥지'가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대책 없는 악녀 이화영(이채영 분)에게 바보 같이 당하기만 했던 백연희(장서희 분)의 89회 만에 제대로 된 반격이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시청자가 기대했던 백연희의 활약은 별반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청자의 바람대로 이화영은 처절하게 몰락하고 있지만, 그건 백연희의 계략에 넘어갔다기보다 이화영 자신이 쳐놓은 너무 많은 거짓말과 사기에 스스로 몰락한 결과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오빠를 쫓아가게 만들어서 살인자라는 억지 복수 동기에 도무지 이화영에게 공감할 수 없었던 시청자는 하루빨리 판세를 뒤집는 백연희의 복수 과정이 진행되길 바랐습니다. 이화영의 개연성 없는 복수 동기와 말로만 복수를 다짐하는 백연희의 우둔함이 답답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뻐꾸기 둥지' 또한 ‘왔다! 장보리’가 그랬듯이 주인공의 되갚는 복수가 아닌 악녀 자신의 자멸이라는 엔딩으로 다가가려 하나 봅니다. 장보리가 너무 소극적인 것이 아니냐는 시청자의 의문에 “연민정 같은 인간은 굳이 장보리가 복수하려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멸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순옥 작가의 소망처럼 최근 이런 구조가 복수 드라마의 트렌드처럼 보이는군요.

오빠를 잃고 나서, 아니 그로부터 6년 뒤 나는 망가졌는데 홀로 반짝반짝한 백연희가 자신의 첫 남자를 대동하고 나타난 후로 이화영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그녀의 머리를 지배했고 부풀려진 망상은 나래를 폈습니다.

이화영에게 백연희는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가해자이자 이겨내야 할 라이벌이었고 급기야는 마주쳐선 안 될 도플갱어처럼 해석되었습니다. ‘백연희가 죽어야 내가 산다’라는 망상이 그녀를 지배하게 된 거죠.

남자와 돈, 심지어는 가족까지,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는 데 희열을 느꼈던 이화영에게 아들이라 굳게 믿었던 진우(정지훈 분)마저도 백연희를 굴복시키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자궁적출수술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백연희의 대리모가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둥지만을 제공했을 뿐이라더니 난자마저 내 것이라는 그 비뚤어진 정복욕.

친구 여동생의 부탁이라 망설였지만 차마 의사의 양심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안홍진(진명석 분)의 양심 고백이 발표됐던 날, 22.0%라는 자체 최고 시청률이 갱신되었습니다. 이화영의 몰락을 갈급했던 시청자의 반향이겠지요. 전리품을 빼앗기고 나자 이화영은 미쳐버렸고 이보다 더 추할 수 없다시피 망가져 나갔습니다.

밑바닥을 봤다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추락은 아직까지 남아있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넝마 같은 이화영의 심장을 급기야 조각내버린 최후의 일격.

‘의뢰인 이화영 (FM) & 의뢰인 이소라 (FM)는 생물학적으로 친자관계임을 반영하는 근거를 제공함.’

‘나 같은 아이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언니, 아니 엄마의 구박을 견디다 못해 아이 스스로 자책하게 시켰던 그 아이가 내 딸이라니. 이소라와 이화영이 모녀일 확률이 무려 99.999%. 소라가 그의 딸이라고 믿고 있는 전 남자친구 최상두에게 검사표가 조작된 것 아니냐고 현실 부정을 하던 이화영은 엄마 배추자(박준금)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됩니다.

딸이 아이를 낳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급기야 해외입양될 수도 있다는 위기 앞에서 자식의 핏줄을 도저히 내팽개칠 수 없었던 엄마가, 백연희와 아들의 자식인 척 본인의 호적에 올려 딸을 속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내내 백연희의 딸이라는 죗값을 물어 아이를 구박했던 이화영은 쓰라린 양심을 감당할 수 없어 내 자식은 진우뿐이라며 발악했습니다. 그 모습이 꼭 뻐꾸기가 물어다놓은 알을 내 새끼인 줄 알고 품었다 자기 새끼가 버려진 줄도 모르는 개똥지빠귀 같았죠.

이토록 처절하게 망가지는 이화영을 보는 쾌감은 오랜 숙변 해소의 희열과도 같았습니다. 그게 90회가 되도록 쌓여있었으니 시청자의 속이 오죽했을까요. 그럼에도 아직, 이화영을 온전히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작가는 반전을 넘은 무리수 전개를 시도합니다. 소라의 친아버지가 전 남자친구 최상두가 아닌 백연희와 공유한 남편, 정병국(황동부 분)이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전개에 시청자가 얼마나 경악했는지는 방송이 끝나고 한동안 ‘'뻐꾸기 둥지' 정병국’이라는 낯선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로 증명할 수 있겠죠. 궁지에 몰릴수록 거짓말을 늘어놓는 여자 이화영이 또 다른 계략을 판 것인지, 아니면 그녀 자신이 만든 망상으로 친아버지마저 바꿔치기 하는 판타지를 만들어낸 것인지, 혹여 정말 소라의 친아버지가 정병국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망상이 아니라면 이화영의 고백은 진실일 가능성이 높죠. 설마 이 판국에 어머니에게까지 거짓말을 하진 않을 테니까요. 허나 이렇게 된다면 소라와 진우는 배 다른 남매가 되는 셈입니다. 아니 굳이 따져 말한다면 생물학적으로 배가 다른 것도 아니죠. 소라의 아버지가 정병국이라는 허망한 사실 앞에 시청자는 개그콘서트 시청률의 제왕을 보는 것 같았다며 지나친 무리수 전개가 아닌가?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끝을 바라보는 시점에 몰락하던 이화영이 던진 최후의 일격이 정말 골수 시청자도 기함하게 한 엉터리 반전이 될지 아니면 이 드라마에서 시사하는 '뻐꾸기 둥지'의 상징적 의미가 될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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