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을 한해를 가장 뜨겁게 달군 게임이 무엇일까? 아무래도 천만 명이 넘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직접 즐겼고 게임 마니아가 아니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모두의마블’이 아닌가 싶다. 2013 한국 게임대상 지스타에서 모바일게임 부문 인기상을 받기도 한 이 게임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1982년작 국산 보드게임 ‘부루마불’을 원형으로 삼고 있다.

어디 가서 보드게임을 좋아한다고 하면 “부루마불 같은 거요?”라는 말을 들을 그 정도로 부루마불은 한국에서 보드게임의 대명사라 할 만하다. 그런데 부루마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국 보드게임 ‘모노폴리’를 베꼈고, 모노폴리 역시 다른 게임을 고스란히 베꼈다. 1930년대 미국에서는 모노폴리와 같은 형식의 게임들이 유행했는데 그 중 최초가 바로 엘리자베스 매기가 1902년에 만든 ‘지주게임(The Landlord’s Game)’이었다.

원래 지주게임은 토지사유제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 사상을 알리고자 만들어진 교육용 게임이었다. 매기는 1935년 지주게임에 대한 특허를 파커브라더스사에 500달러에 팔았다. 당시 파커브라더스는 찰스 대로의 모노폴리를 유통하기 시작하면서 독점적 판매권을 확보하기 위해 관련 특허를 사들이고 있었다. 이후 모노폴리는 수십 가지 판본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적으로 2억 5천만 개가 넘게 팔렸다. 이 모노폴리의 원작이 세월을 거치며 어떤 풍파를 겪어 왔는지 살펴보겠다.

▲ 2013년 한해를 휩쓴 모두의 마블


지주게임에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규칙이 있었다. 하나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사업 방식에 기초”하여 “토지 독점자가 모든 것의 절대적 통제권을 가지게 되는 이 체제의 논리적 귀결”을 보여줌으로써 “토지 독점자가 세계의 군주”라는 진실을 알리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즐기는 유일한 규칙이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단일세 규칙(Single Tax Rules)’으로 생필품에 대한 세금인 간접세가 면제되며, 철도·수도·전기 같은 공익사업이 공영화되고, 모든 지대는 개인의 금고가 아닌 국고로 납부되어 공공개발에 사용된다. 침범 시 감옥으로 보내지는 귀족 가문의 사유지는 정부에 몰수되어 “무상대학” 부지로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노동 기회의 원천인 토지에 대한 접근권이 모든 사람에게 있기에” 그 필요성이 사라진 빈민 구제소는 폐지된다.

▲ 지주게임(1904)과 모노폴리(2008)의 게임판

모노폴리에서 각 플레이어의 목표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을 파산시키는 것이다. 한편 지주게임에는 파산의 개념이 없었다. 대신에 “비용을 지불할 현금도, 대출을 받을 능력도, 저당 잡히거나 매각할 토지도 없는 사람”을 위한 빈만 구제소가 있어 돈이 없는 사람도 게임에서 낙오되지 않고 비굴하게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다시피 지공주의 사상을 구현한 단일세 규칙에서는 빈민 구제소의 필요조차 사라졌다.

1933년에 만들어진 모노폴리 초판에도 “모든 토지를 저당 잡히고 현금이 $100 미만인 사람에게 찬스, 보물상자, 세금 등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면제”해주는 구빈제도가 선택규칙으로 있었다. 다만 이것은 은행에 내는 돈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지불해야 할 지대는 면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파산을 조금 늦출 순 있을지언정 피할 수는 없다. 애초 모노폴리는 다른 모든 사람을 파산시키고 “최후의 독점자로 남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 아닌가! 파커브라더스가 출판한 1939년판 모노폴리에서는 이런 구빈제도마저 자취를 감췄다.

이후 표준으로 자리 잡은 모노폴리 애틀랜틱시티 판에서는 세제에 있어서 약탈적 자본주의의 요소가 더욱 두드러졌다. 일률적으로 재산의 10%였던 재산세가 “200달러 또는 재산의 10%”로 바뀐 것이다. 즉 재산이 2000달러 미만일 때는 10%의 고정세율이 적용되고 그 이상일 때는 200달러의 고정액을 내는 것으로, 누진세는커녕 과세금액이 늘어날수록 세율이 줄어드는 역진세인 것이다. 2008년 개정판에서는 이조차 계산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200달러 고정의 인두세로 바뀌면서, 부자에게나 빈민에게나 똑같은 액수의 세금을 거두는 잔혹한 세금제도가 자리 잡게 되었다.

▲ 안티모노폴리

게임의 규칙이 아닌 제목과 관련된 일화도 흥미롭다. 1973년 샌프란시스코주립대 경제학 교수 랠프 안스팍은 ‘안티모노폴리(Anti-monopoly)’라는 이름의 게임을 출판했다. 마치 독점이 바람직하다는 인상을 주는 주류 게임에 대항하여, 독점이 자유기업제도에 얼마나 해롭고 반독점법이 어떻게 이를 규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이에 모노폴리의 유통사인 파커브라더스는 그를 상표권 침해로 고소했다. 장기간 진행된 공판에서 안스팍은 모노폴리가 매기의 지주게임을 표절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법원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 1979년 항소심은 독점을 뜻하는 ‘모노폴리(monopoly)’가 일반명사이므로 상표권 침해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판결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뒤이은 법 개정으로 파커브라더스가 다시 상표권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양측은 1984년에 합의에 도달해 안티모노폴리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분쟁이 진행되는 동안 이 게임은 ‘안티(Anti)’라는 이름으로 유통되어야 했다.

이후 안스팍은 “한 좌익 게임이 거대 기업에 의해 어떻게 무자비한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탈바꿈되었는지”, “원작자가 파커브라더스에 의해 어떻게 이용되고 배신당하고 버려졌는지” 그리고 “이 사기가 어떻게 뇌물과 위증과 매수에 의해 은폐되었는지”에 대한 진실을 책으로 썼다.

▲ 추억의 부루마불

모노폴리가 부루마불을 거쳐 모두의마블이 되면서 규칙은 더욱 단순해지고 게임 시간은 크게 짧아졌다. 한자리에 앉아 얼굴을 맞보고 느긋하게 유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바삐 오가며 틈틈이 여가를 소비하는 현대 도시인의 삶에 게임이 적응한 것일 수도 있겠다. 놀면서까지 머리를 쓰기에는 일상이 너무 각박하지 않은가.

게이머의 입장에서 모두의마블의 등장과 인기는 호재인 동시에 악재이다. 보드게임이 모바일 기반으로 제작되어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쁘지만, 게이머들에게 오랜토록 사랑받는 게임들은 점차 사라지고 모두의마블처럼 전략적 마케팅으로 시장에서 반짝했다가 금세 묻히는 게임들이 게임계를 지배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반독점 게임이었던 지주게임이 모노폴리로 대체되어 게임 시장을 독점한 역설처럼, 놀이하는 인간들의 안식처도 현실의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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