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인간시대>, 다큐멘터리 <사랑> 시리즈, <아마존의 눈물>, <북극의 눈물> 등의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에게 사랑받고, 30년 가까이 MBC의 ‘공영성’을 뒷받침했던 교양제작국이 오늘(24일)부로 사라진다. 내부에서 ‘공영방송 포기 선언이 아니냐’는 우려가 짙고 국감장에서 ‘공영성 후퇴’ 질타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MBC가 교양국 폐지를 강행한 이유는 결국 ‘수익성’ 때문이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MBC 사옥 앞에서 교양제작국 해체 반대 피케팅을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MBC는 24일자로 조직개편을 시행한다. 개편 방향은 △미디어 환경변화 대응 강화 △수익성 중심 조직으로 개편 △기능 조정에 따른 조직 효율화 등 크게 3가지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수익성 중심 조직으로의 개편’이다.

이번 개편으로 각 본부에는 ‘사업’ 혹은 ‘마케팅’이라는 이름이 붙은 수익성 강화 목적의 부서들이 생겨났다. 편성제작본부 산하 라디오편성기획부는 ‘라디오편성사업부’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사업기능이 추가됐다. 드라마본부 산하 드라마프로듀싱부는 ‘드라마마케팅부’로 확대 개편되면서 프로그램 부가사업 기능이 부여됐고, 예능본부에는 제작사업 강화를 위한 ‘예능마케팅부’가 신설됐다. 미디어사업본부에는 아예 회사의 보유자산을 개발하고 관리하기 위한 ‘자산개발국’이 등장했고, MBC 뉴스를 책임지는 보도본부에도 뉴미디어뉴스 사업기능을 담당하는 ‘뉴스사업부’가 생겼다.

MBC는 수익성 중심 조직으로 개편하겠다고 천명하며 △수익 창출 조직 확대 △제작 연계 마케팅 강화 △수익 및 경쟁력 저하 조직의 축소 △자산 활용 수익 기능 강화 등을 세부 목표로 설계했다. 얼마나 돈을 벌어들이느냐는 잣대는 어느 부서를 더 키우기도 하고 아예 없애버리기도 했다.

드라마본부에는 월화드라마를 담당할 드라마4부가 신설됐으나, 교양제작국은 폐지된 후 그 기능이 예능1국과 콘텐츠제작국으로 분산 이관됐다. MBC는 예능1국에 제작4부를 신설해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고, 외주 업무를 담당했던 콘텐츠제작국 안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MBC 교양제작국은 수익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조직이라는 이유로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MBC가 가는 길, 자발적 민영화”

공공재인 전파를 쓰는 지상파 방송사, 특히 ‘공적책무’를 지닌 공영방송 MBC가 교양제작국을 없앤다는 소식에 MBC 안팎이 들끓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이성주, 이하 MBC노조)와 시사교양PD들은 24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오전 8시 50분까지 서울 마포구 상암MBC 건물 안팎에서 항의 피케팅을 벌였다. 조직개편안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백종문 경영기획본부장은 경영센터 1층 로비에서 피케팅 중인 노조원과 PD들과 마주쳤으나, ‘교양국 해체 철회’를 촉구하는 이들의 외침에도 아무런 말없이 지나쳤다. 안광한 사장은 23일부터 출장 중이다.

▲ 상암MBC 경영센터 1층 로비에서 MBC노조와 시사교양PD들이 피케팅하고 있는 모습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앞서 MBC노조는 23일 성명을 내어 “이번 국정감사에서 교양제작국 해체에 대해 공영성의 포기에 대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며 사측의 교양제작국 해체 강행을 비판했다.

MBC노조는 “주 시청 시간대 오락 프로그램의 편성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방문진(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지적에 대해 교양 프로그램 강화를 약속한 것은 누구였느냐”며 “이제 MBC는 더 이상 공적책무를 지닌 ‘공영방송’이 아닌가. 이쯤 되면 사측은 ‘공영방송 포기 선언’도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밝혔다.

MBC노조는 특히 조직을 혼란에 빠지게 할 대규모 조직개편을 감행하면서 노조와의 노사협의회조차 거부한 채 일방 통보를 해 온 점, MBC를 관리감독하는 최고의결기구인 방문진 이사회와 사전협의도 거치지 않은 점 등 조직개편을 추진해 온 과정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국PD연합회(회장 박건식)도 24일 성명을 내어 “MBC는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조직개편을 단행하겠다고 한다. 조직개편은 망치로 새로운 집을 짓겠다는 것이지만, MBC가 지금 사용하는 망치는 집을 짓는 망치가 아니라 집을 부수고 있는 망치”라고 말했다.

한국PD연합회는 그동안 MBC가 교양PD에게 징계를 남발하고 시사교양국을 시사제작국, 교양제작국으로 나눠버리는 등 지속적으로 탄압해 온 점을 들어 “경영진은 이제 교양PD들의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교양국을 해체하고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고 한다. 손발 자르고 입 틀어막은 후에 왜 걷지 못하고 말을 못하느냐고 비난하는 것이 타당한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직개편이 파업에 주도적으로 나선 교양PD들을 공중분해시키기 위해 나온 정치적 보복이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PD연합회는 “MBC 경영진은 MBC를 지탱하는 근원인 공영방송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고 공영방송을 지탱하는 근원인 교양국과 교양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며 “지금 MBC가 가고 있는 길은 ‘자발적 민영화’에 다름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MBC는 오늘(24일) 중으로 등기임원이 참여하는 MBC이사회를 열어서 조직개편안 시행을 의결하고, 이에 따른 인사발령을 낼 것으로 보인다. MBC는 내달 중순께 시행되는 프로그램 개편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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