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열흘째인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제전자센터 휴대전화 상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 20일에 맞춰 기획기사가 나올 정도로 말이 많다. 경향신문은 21일자 1면 머리기사 <단통법 ‘전국민 호갱화’/ 정부·업계 불신만 키워>에서 “단통법이 시행된 지 한 달도 안돼 ‘동네북’ 신세가 됐다”며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이고 보조금 지급을 투명화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으나 소비자들은 보조금만 줄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월과 5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조사한 평균 불법보조금이 57만9천 원, 61만6천 원이었으나 현재 미래창조과학부가 조사한 ‘단통법 시행 후 가입자 1인당 평균 보조금’은 15만 원 수준이다. 전성기(?)에 비해 줄어든 것은 분명하다.

상황을 정리해보자. 2G에서 4G로 넘어오면서 요금은 계속 올랐다. 가계 소비지출에서 통신비가 자치하는 실질 비중은 2003년 5.3%에서 2012년 6.56%까지 늘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통신전망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가구당 이동통신요금 지출액(구매력 기준)은 월 115.5달러로 비교대상 19개국 중 가장 높았다. 영국(52달러)의 두 배가 넘었다. 물론 경쟁도 있었다. 이동통신사는 고가의 스마트폰과 LTE요금제가 안착할 때까지 ‘출혈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담합 내 경쟁’이었다. 피튀기며 싸웠다는 결과가 SK텔레콤 50%, KT 30%, LG유플러스 20%다. 변화는 업다.

담합의 효과는 이동통신사에 돌아갔다. 1위 SK텔레콤의 매출액은 2003년 9조4594억 원에서 2013년 12조8604억 원으로 3조 원 이상 증가했다. 장기간 영업정지 이후 점유율 50%를 지키기 위해 마케팅비를 늘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은 2분기까지 무선통신사업에서만 7888억3100만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비법은 LTE다. SK텔레콤의 ‘가입자당 매출(ARPU)’은 지난 2012년 1분기 3만2200원에서 2014년 2분기 3만6천 원으로 4천 원 가까이 올랐다. 금융권에서는 “2015년 말 SK텔레콤 ARPU는 3만9576원에 달해 11년 만에 4만 원대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SK텔레콤 2014년 2분기 투자보고서 중 가입자당 매출 관련 내용. (자료=SK텔레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부는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줬다. 이동통신사들은 인터넷과 IPTV, 그리고 이동통신서비스를 결합해 팔았다. 가계통신비가 크게 오르기 시작하자,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가계통신비를 ‘문제화’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가 꺼내든 것은 알뜰폰이다. 2011년 7월 사업을 시작한 알뜰폰은 올해 가입자 400만을 앞두고 있고, 이동통신시장의 10% 이상을 점유할 전망이다. 그런데 이동통신 3사는 이미 알뜰폰 사업에 뛰어들었고,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지금 알뜰폰은 사실상 이동통신 3사 가입자 중 ARPU가 낮은 가입자, 즉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저가 고객’을 흡수하는 시장으로 안착하는 중이다.

그 동안 정부의 통신요금 정책은 이동통신사 간 담합과 기술관료의 저항에 부딪혀왔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꺼낸 것이 ‘단통법’이다. 이동통신사와 휴대전화 제조사의 보조금(판매장려금)을 투명하면 보조금 차별도 없애고 출고가 인하도 유도해 통신비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정부는 이동통신사와 제조사의 보조금을 각각 공시하는 분리공시제도를 이 법에 포함할 계획이었는데, 지난달 시행을 며칠 앞두고 정부는 돌연 입장을 뒤집고 분리공시제도를 삭제했다. 정부와 국회는 “영업비밀인 보조금을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글로벌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삼성전자에 굴복했다.

정리하자면, 삼성이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라면 이통사는 밀당 파트너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22일 “(단통법의) 구체적인 효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내버려둘 수는 없다”며 “정부와 기업 등이 협조해 소비자에게 피해가 안가도록 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도 소비자들과 좋은 관계를 갖고 긴 호흡으로 비즈니스를 해야지 소비자 이익을 빼앗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액면 그대로 보면 이통사와 제조사에 대한 압박으로 보이지만 정부가 시행 한 달이 채 안 된 법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양희 장관의 촉구는 사실상 ‘읍소’에 가깝다.

▲ 2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유플렉스 앞에서 열린 단말기 유통법 대폭 보안 및 단말기 가격 거품 제거 촉구 공동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법 개정 필요성을 지적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를 비롯한 당직자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보조금 분리공시제 도입 및 기본요금 폐지를 포함한 통신비 대폭 인하 등을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결국 삼성이 원하는 대로 판이 깔렸다. 이동통신사는 겉으로 불만을 드러냈지만 이후 보조금을 얼렸다. 일종의 시위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6일 KT가 배포한 자료를 보면, 일 번호이동 평균 건수는 단통법 시작 전 8월 1만6천 건, 9월 2만여 건에서 시행 뒤인 10월 9067건으로 줄었다. 사실 분리공시는 이동통신사에 큰 쟁점은 아니었다. 스마트폰 이용자 4천만, LTE 가입자 3천만을 만든 이동통신사에게 단통법은 5G가 상용화될 때까지 숨을 고를 적기다. 이통사는 이제 단통법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다. 최근 이동통신사의 단통법 관련 보도자료는 대부분 법의 긍정적 효과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애초 삼성이 결사반대하던 단통법이었지만 이제는 이통사도 환영하고 있다. 단통법은 이통사의 대정부 협상력만 높이고 있다. 정부가 규제하려던 사업자들이 단통법을 환영하는 상황은 단통법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한 달이 채 안 됐지만 정부는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반쪽짜리 단통법의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가 입고 있다. 약정이 만료됐지만 휴대전화를 바꾸거나, 통신사를 갈아타지 못하는 이용자가 늘고 있다. 보조금은 이용자가 부담해야 할 통신요금에 포함돼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만 그 동안 이용자의 통신비를 보조하는 역할도 해왔다. 지금 모든 이용자는 호갱님이 됐다.

일각에서는 보조금 불법기준을 현행 30만 원에서 더 높이자고 주장하지만 큰 의미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동통신사와 제조사가 동시에 보조금을 얼렸기 때문이다. 결국 답은 원가 공개 압박일 수밖에 없다. 이동통신사가 원가를 부풀려 막대한 영업이익을 챙겨왔다는 정황과 증거는 이미 충분하다. 원가자료를 일부라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압박한다면 이동통신사는 통신요금을 내릴 수밖에 없고, 제조사는 출고가를 낮출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장애물은 삼성과 기술관료다. 그 동안 이통사 담합과 제조사 독과점 이익에 협력한 기술관료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카드는 딱 한 장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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